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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소설 '토지' 속 배경, 평사리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하동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 지난 글에는 십리벚꽃길과 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냈는데, 오늘은 하동의 또 다른 명소인 평사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인 평사리는 왜 하동의 명소가 된 것일까.
평사리 들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스타웨이 하동
"와. 저것 봐! 들판이 완전 넓어!"
"그러네. 정말 넓긴 한데 산과 강이 감싸고 있어서 그런지 되게 아늑하게 느껴진다."
하동 평사리가 유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드넓게 펼쳐진 평사리 들판과 그런 들판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지리산, 섬진강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다. 박경리 작가가 평사리 들판의 모습 때문에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되고, 자연스럽게 평사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난 것이다.
평사리 들판을 한 눈에 내려다 보기 위해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소성에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 스타웨이 하동이라는 전망대 겸 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고소성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평사리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스타웨이 하동에 들어서서 길을 따라 걸어가면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게 된다.
이 전망대에서 보는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의 모습은 자연이 만들어낸 명작을 보는 것 같았다. 지리산이 평사리 들판을 휘둘러 감싸안고, 들판의 끝에서 섬진강이 유유히 흐른다. 그리고 군데군데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이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이 모습을 보면서 왜 박경리 작가가 이곳을 '토지'의 배경으로 선택했는데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평사리의 고즈넉한 작은 호수, 동정호
스타웨이 하동에서 평사리 들판을 바라보면 들판 초입에 작은 호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호수 가운데 만들어진 빨간색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에 전망대 위에서부터 일단 눈길이 호수로 향한다. 이 호수가 바로 동정호이다. 동정호는 규모가 그렇게 큰 호수는 아니다.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데, 이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크기는 작은 편이다.
우리는 빨간 다리에 홀린 듯이 동정호에 도착했다. 동정호 주변을 걷다보면 주변에서 물소리, 새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어느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확실히 자연이 만들어낸 소리에는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힘이 들어있다. 짝꿍은 동정호 한 켠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는 섬나라에서 자란 영향일까, 짝꿍은 물을 정말 좋아한다. 어디를 가도 물소리가 들리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궁금해하면서 찾아 다닌다. 그래서 나와 짝꿍이 동정호에 홀린 것인지도 모른다.
동정호는 작지만 아름다웠다. 산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평사리 들판은 넓게 펼쳐져 있다. 스타웨이 하동에서 내려다본 평사리 들판을 눈높이에서 바라보니까 훨씬 더 넓게 느껴진다. 그리고 동정호 주변에는 우리를 사로잡았던 빨간색 다리와 행랑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악양루가 있다. 동정호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그림 한 폭을 그려내고 있었다.
소설 속 '토지'가 재현된 곳, 최참판댁 촬영지
"시간여행하러 가볼까?"
"시간여행? 어디로?"
"일단 가서 보자. 분명히 좋아할 거야."
나와 짝꿍은 동정호에서 불과 5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최참판댁 촬영지로 향했다. 최참판댁 촬영지는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 마을이 재현된 곳이다. 등장인물에 맞게 마을을 꾸며놓았고, 실제로 드라마 '토지'가 촬영된 장소이기도 하다. '토지' 외에도 꽤 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을 만큼 최참판댁 촬영지는 옛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는 곳이다.
외국인인 짝꿍은 '토지'라는 작품을 모르고, 박경리 작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했다. 박경리 작가나 '토지'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이곳을 가는 것이라서 짝꿍이 얼마나 흥미로워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다. 짝꿍은 과거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짝꿍이 자라온 곳의 문화와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인지 짝꿍은 촬영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구경하고 관찰했다.
옛날 서민들이 살았던 마을을 벗어나 조금만 올라가면 소설 속 최참판이 살았던 기와집이 나온다. 기와집에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마당의 크기를 보면서 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당 한 가운데 외로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기와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규모의 최참판댁 기와집은 정말 멋있게 재현해 놓았다.
최참판댁 촬영지에서 우리는 시간여행을 하고 왔다. 나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보았던 모습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철도 없고 걱정도 없었던 그 시절, 할머니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나의 어린 모습을 잠시나마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짝꿍에게 해주었고, 짝꿍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인의 어린 시절로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 언제나 그립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그 때 이런 집에서 내 손을 잡아주던 할머니처럼 지금은 짝꿍이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이렇게 하동에 대한 여행 이야기를 마친다. 가기 전에는 반신반의하던 짝꿍이 하동에 완전히 빠져들 정도로 아름답고 편안한 곳이었다. 짝꿍과 함께했던 하동에서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출처 | [방랑곰의 브런치북] <매거진: 국제커플이 담아내는 대한민국> https://brunch.co.kr/@dyd4154/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