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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죽음으로 지휘봉 놓고… 스승 죽음으로 지휘봉 든 구자범 마에스트로
게시물ID : art_278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웅아중견수
추천 : 5
조회수 : 9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28 18:59:15
http://news.donga.com/3/all/20160312/76952644/1



구자범(46)은 3년 전까지 지휘자였다. 전도가 유망한 지휘자였다. 연세대 철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그는 25세의 늦은 나이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만하임 음대 대학원 사상 처음으로 전 과목 최고 성적을 받고 졸업했다. 그 뒤 하겐 시립오페라극장 지휘자, 다름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 차석 지휘자를 거쳤고,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 지휘자로 발탁됐다. 한국인으로는 정명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자 이후 두 번째로 유럽의 정상급 오페라극장을 지휘한 것이다. ‘절대음감의 천재 지휘자’ ‘정명훈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 정상급 지휘자’ 등의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2013년 6월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일부 단원과의 갈등 끝에 한 단원이 경기도에 구자범을 모략하는 진정을 제기한 것. 곧바로 그 단원이 진정을 취하했지만 단원들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날 정도로 파장이 커졌다. 일부 단원이 그의 엄격한 연습 때문에 불만이 많았고 그에 대한 음해를 했다는 것이 뒤에 밝혀졌다. 하지만 그는 사표를 제출했고, 올해 초까지 부산에 머물며 클래식과는 담을 쌓아왔다.

―3년 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왜 그만두었나.

“내 첫사랑이었던 전처가 2012년 말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죽었다. 전처가 죽은 날 신기하게 죽음을 다룬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란 곡을 지휘했다. 그날 따라 지휘에 사용할 연미복을 세탁소 실수로 찾지 못해 평소 입고 다녔던 검은색 옷을 입고 지휘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연주회 뒤 전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몇 달 동안 지휘를 하지 못했다.



2013년 5월 작은 연주회 도중 한 여성 단원이 연주를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그 단원에게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그동안 그를 곱지 않게 보던 일부 단원이 징계를 받은 단원을 부추겨 진정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부도덕한 지휘자로 몰렸다. 단원들이 탄원서를 제출하고, 음악계에서도 성명을 발표하는 등 그를 옹호했지만 그는 이미 부도덕한 인물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 뒤였다. 한번 추락한 명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어 조작 등 그를 비방했던 단원들은 이후 경찰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기다려 준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난 팬들에게 가짜를 보여줄 수 없어 지휘를 안 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진짜를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지휘를 한다. 3년간 아무것도 한 것 없는 나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지지해준 점에 대해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 못하겠다.”

이제 그는 팬 곁으로 돌아온다. 돌아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는 ‘복귀’가 아닌 ‘지휘봉을 다시 든다’고 말했다. 그가 떠난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었고, 지휘가 싫어 떠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귀이든, 지휘봉을 다시 들든 그는 조만간 다시 지휘대에 선다, 봄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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