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2011년 수능을 마치고, 그는 어머니와 서울나들이를 간다.
5000원짜리 학생커트만 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10만원이 넘는 가격의 미용실에 데려갔다.
청담동이라 좀 비쌌나보다.
내년 1월1일에 예정되어있는 뉴질랜드 어학연수에 대비해 썬글라스도 맞추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행복한 추억이다.
0.1
2012년 1월 1일이 밝았다.
그는 뉴질랜드로 떠났다.
거기서 외국인 친구들과 술도 배우고, 혼자 여행도 해보고,
학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생활한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어머니는 꽃꽂이를 하셨는데 전지가위로 손을 다치셨단다.
그래도 인대는 안다쳐서 다행이었다.
그는 놀랐다.
먼곳에 있는 엄마가 다쳤다고 하니 갑자기 엄마가 그리워졌다.
오유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룹이있었다.
그 사람들께 어머니께 문자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수많은 문자가 어머니께 전송됬다.
어머니는 행복해하셨다.
그러나 그는 다른 표현을 하고싶었다.
부족했던 모양이다.
디씨인의 고백이라는 영상이 떠올랐다.
디씨인이 뉴옥에서 행인들에게 부탁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담아 영상편지를 보냈었다.
그는 어머니께 비슷하게나마 해보기로했다.
첫 사람에게는 10분정도걸렸다.
어지간히 영어를 못했다보다.
수능은 영어 잘쳤는데..
처음으로 부탁할땐 10여분이 걸렸다.
두번째 사람은 5분도 안걸렸고,
세번째부터는 약 1분정도면 충분했다.
한시간이나 걸린사람도 있었다.
이집트에서 뉴질랜드로 이민온 사람이었는데,
이집트인은 그에게 정직함과 선함에 대해 설교했다.
더불어 연락처를 남기며 곤란한일이 생겼을때 연락하라고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 30여명분의 메시지가 담긴 스케치북과 사진(카메라)을 준비했다.
(후에 그의 형이 카메라를 잃어버린다)
메시지만 받으러 돌아다닌게 아니기때문에, 많은 메시지를 받지는 못했다.
2달간의 어학연수(라고쓰고 여행이라고 읽는다)는 끝이났다.
어머니는 그 어떤 선물보다 기뻐하셨다.
그는 뿌듯했다.
--0.2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지방의 대학교에 입학한다.
의학전문대에 가겠노라고 큰소리를 떵떵친다.
그리고 그에게 첫 여자친구가 생긴다.
누군가 그랬다.
첫 애인은 쌍놈년이라고.
그의 통장잔고가 10만원 미만으로 떨어지자 어떻게 알았는지
헤어졌다.
그러나 그는 잡고 늘어졌다.
첫 연애상대였던만큼 그는 놓치고싶지 않았던모양이다.
잡고 늘어진만큼 그의 자존심은 점점더 바닥을 향해 뚝뚝 떨어질 뿐이었고,
어느순간 그의 여자친구가 원한게 무었이었는지를 깨닫은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알수없었다.
낮아진 자존감과 그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하는지 혼란스러울뿐이었고,
그 둘중 어느것도 표출하지 못한채
점점더 나락으로 떨어져갔고, 당연히 성적도 바닥을 쳤다.
그렇게 몇주일이 지나고
학교에서 그는 어머니를 부른다.
'엄마 나 델러올수있어? 힘들어서...'
엄마는 즉시 아들을 데리러왔다.
그는 포근함을 느꼈다.
어머니가 태우러온것 자체도 그의 힘을 북돋았고,
운전하는 어머니 옆 조수석에 앉아있는것만으로도 우울함이 덜해졌다.
운전하던 어머니에게 그는 털어놓았다.
이러이러한 일이있었다.
배신감이 느껴지고 화가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런사람때문에 너의 가치를 해하지 말아라.
그사람때문에 우울해하기에는 넌 너무나 값진사람이다."
그는 고통을 쉽게 잊을수 있었다
자존심도 회복되었다.
0.21
그는 휴학했다.
0.3
두달후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0.4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다.
뒤늦게 안 그는 소리내어 울었다.
0.5
지역 정모에 나갔다가
생각이 깊은 형을 만났다.
0.9
그의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암판정을 받으셨다.
위암이라고 한다.
1.0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그는 어머니 곁에 없었지만, 그의 형이 119를 불러 어머니를 응급실로 옮겼다.
소식을 듣고 그도 응급실에 왔다.
급성 맹장염이겠지,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일인지 파악도 재대로 하지못한 그는
서울대학병원으로 어머니를 옮겨야한다는 말을 듣는다.
얼핏 암이라고 한다.
에이 아직 초기겠지.
어머니는 강한모습을 보이셨기때문에
그나, 그의 형은 어머니는 당연히 이겨낼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이신 그의 아버지,
서울대병원의 교수이신 그의 큰아버지
두분다 표정이 좋지 않으셨다.
악액종이라는 처음듣는병이다.
3기라고 했다.
검색해도 나오지않았다.
세계에서 100케이스도 안되는 매우 희귀한 암이라고했다.
1차 수술을 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좋아하는모습은 다들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악액종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수있는 암이 아니라고,
그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뱃속의 점막에 암세포가 생겨,
지속적으로 장기에 암이 생긴다고했다.
암때문에 죽던지,
계속 암을 잘라내다가 말라죽던지.
둘중 하나라고 들었다.
사실 그는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1.1
집안은 침울해지고,
그는 서울로 도피했다.
서울에 학원을 다니겠다고 짐싸들고 서울로 간다.
장장 7개월동안.
그의 어머니는 5개월동안은 응원해주시더니
그이후로 2개월동안은 빨리 내려오라고 성화셨다.
1.2
2013년 4월
그는 집에 내려왔다.
간간히 집에 볼때마다 엄마가 야위는걸 봐왔지만,
봐도봐도 익숙해질수 없는 엄마였다.
꿈같았다.
거칠거칠해진 그의 얼굴피부에
어머니는 손수 당신의 화장품을 발라주셨다.
이런거라도 해줄수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셨다.
1.3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입원했다.
항암제를 맞으시며 그의 어머니는 고통스러워하셨다.
항암제는 약 30시간에 걸쳐 투약되었고
입원기간은 3일이었다.
하루는 입원해서 준비하고 나머지 이틀동안 맞았다.
1.4
항암치료간의 기간은 2~3주였고,
그 기간동안 그는 집에서 게임을하거나 어머니 옆에서 뒹굴거렸다.
어머니는 창가에 앉아 잡지나 책을 보셨다.
평생 듣지않던 노래도 들으셨다.
형의 헤드폰을 끼고.
조수미/박정현이 부르는 -나 가거든-
이었다.
1.5
어느 항암치료 전날이었다.
그는 눈물로 어머니께 사죄했다.
그간 속썩인거 죄송하다고.
어머니는 안아주시며 용서해주셨다.
그러면서 영상을 보여주셨다.
11월24일씀.
내일은 엄마 생일이다.
엄마를 잊어서는 안될것같다.
너무 늦었으니 나중에 써야지
--
사실 엄마 너무 쉽게 잊는것같아서
너무 잘 살아가는것같아서.
엄마 빈자리 너무 빠르게 채워버린것같아서
썼는데.
다행인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