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는 이성을 "참" 을 구하는 것에만 종속시켰다. 진선미로 따지면 진 말이다. 하지만 이성적 인간은 무엇이 자기에게 실리적 이익이 있는지, 즉 "좋은지" 판단하는 것 또한 포함한다. 즉 대부분의 무신론자는 이성에 대한이해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신을 믿는 것 무신론자의 이성적 판단은 완전한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굉장히 편협한 사고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을 믿는 다는 것이 물론 증명 없이 감정에 치우쳐서 믿는 것 일수도 있지만, 인간의 실존적 상태, 죽음 앞에서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의 인간에게 신앙은 "좋은"것이다. 즉 이성으로 신을 인정하는 것이 꼭 증거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태에 따른 자연적 갈망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것에 뛰어듦으로 인해서,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이 열리는 셈이다. 무신론자는 관찰자로써 이성의 가치는 증명에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것의 근거는 무엇인가? 인간은 스스로의 삶에서 절대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고 관찰자의 자세로써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 할 수도 없다.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곧 내가 반응해야 하는 것들이고 곧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피할수 없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을 관찰자로써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내가 그 사건안에 이미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삶이란 피할수 없는, 방관할수 없는 "일어남" 이며,그것을 외면하던지 적극적으로 반응하던지 나의 책임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 될 뿐이다. 이러한 인간에게 이성적인 관찰자로써 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비 이성적인 것이며, 오히려 인간성에는 이성보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즉 인간이 감정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더 깊히 연관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 지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어떻게 현상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지표이며, 이성은 그것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즉 감정이 없다면 이성은 애초에 쓸모가 없는 것이며, 진정한 인간성은 직관적으로 인간의 실존을 인간의 인식에 현상시키는 감정이라 할 수 있겠다.
고로 무신론자는 신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기 보다는 왜 신에 대해서 반감을 느끼는지, 그것의 이유는 무엇인지 탐구하는게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