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자이언 캐니언 입구에 이르렀다. 하늘엔 여전히 구름 한 점 없었다. 텅 빈 하늘은 푸르다 못해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자이언 캐니언 입구는 기묘하게 헐벗은 산과 그 밑에 옹기종기 모인 동네의 푸른 숲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산의 규모에 비해 주차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미 주차선이 그려진 모든 곳은 먼저 온 차량들로 빼곡했다. 미국은 주차선이 그려져 있지 않은 곳에는 차가 한 대도 주차된 곳이 없다.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입구 여러 곳을 몇 차례 돌고서야 겨우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입구에서 다소 올라간 곳이었는데 주차장 바로 앞이 셔틀 버스 정류장이었다.
자이언 캐년은 웅장한 산을 끼고 계곡으로 되어 있는데 코스는 모두 9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각 구간마다 셔틀버스가 정차를 했다. 마지막 9구간은 트래킹을 하는 구간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걸리는 길인데 계곡물을 철벙거리며 걷는 그 길이 일품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긴 시간을 그곳에만 할애할 수가 없어 그저 그림의 떡으로만 남겨두고 7구간에서 내려서 한 구간씩 거꾸로 내려오면서 경치를 감상하기로 했다. 7구간은 <weeping rock>라는 곳이었다. 이름 그대로 눈물 바위가 있는 곳이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오솔길 같로 들어섰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 덕분에 그늘이 시원했다. 사막 지역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런 곳이 아마도 오아시스인 모양이라고 지례짐작을 하고 아들 뒤를 따랐다. 얼마간 올라가다보니 거대한 바위가 안으로 움푹 파 들어가 있었고 그 위에서 물방울이 수도 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하. 바위가 울고 있었다. 메마른 땅을 적시려 바위는 억겁의 세월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따가운 햇살아래서 울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은 뭇 생명의 젖줄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바위가 울어야 계곡이 산다. 바위가 울자 계곡에 숲이 생기고 숲이 생기자 온갖 생물들이 모여들었다. 숲은 그 스스로 요란했다. 멀리 노루가 멀뚱거리며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다람쥐가 쪼르르 산길을 달린다. 저 아래 계곡 물에는 더위를 이기지 못한 여행객들이 몸을 담그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바위가 우는 덕분이 아닌가. 자연은 그래서 경이로운 법이다.바위는 눈을 드는 곳마다 엄청난 크기로 우뚝 솟아있었다. 시야는 결코 바위산을 피할 수 없었다. 바위산이 주는 위압감은 대단했다. 계곡은 바위산 아닌 곳이 없었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금방이라도 바위가 굴러 내릴 듯 아찔하다. 산길을 조심하기엔 눈이 제 할 일을 잊어버린 듯했다. 저절로 먼 산으로 고개를 돌리도록 했다. 바위 산의 장엄함에 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거 고개만 끄덕이며, 자연의 웅장함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이 전부였다.
“우아! 대단하다.”
아마 그 말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눈물 바위에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5구간이었다. 그 다음으로 <zion lodge>라는 곳이었다. 이름의 의미를 알고 싶어 인터넷을 들여다보았다. zion은 시온 산 즉 성지의 언덕이라는 뜻이 있단다. 그러니까 이곳이 성스러운 성지 같은 곳인 모양이었다. lodge는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머무는 시골의 오두막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니 zion lodge는 시온 산에 기도를 하러온 사람들이 머물던 오두막 또는 산장이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그래선지 그곳은 제법 너른 공간과 휴게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어디서나 보는 일이지만 그곳도 먹거리를 파는 곳에는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더러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바깥의 나무 그늘 밑에 둘러앉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인들은 그저 틈만 나면 먹는 모양이었다. 지금껏 음식을 파는 곳은 어디나 빈자리가 남아있는 곳을 거의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따가운 햇살이 잔디 위에 가득 퍼졌다. 그늘이 별로 없었으나 그 많은 사람들이 그늘을 차지하기 위해 눈치를 보는 일이 없었다. 백인들은 그늘보다 햇볕을 받기를 좋아하고 유색인종은 햇볕보다 그늘을 선호하는 탓일 게다. 세상일이라는 건 모두 조화 속에 이루어지기 마련인 모양이다. 숲 아래로 정겨운 개울물이 흐른다. 개울물에는 아이들이 발을 담그고 노는 모습이 보였다. 옛날 어린 시절에는 더운 날이면 하루 종일 동네 어귀의 개울에서 멱을 감으로 놀던 생각이 났다.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물론 어렵던 시절이라 시계가 없기도 했다. 그러니 시간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끼니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밥 때가 되면 언제나 어머니가 집 앞에서 목청껏 이름을 부르셨다. 그 소리에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몸을 씻고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각자의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개울물을 건너 숲으로 들어서니 엄청난 높이의 절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기세로 우리를 위협했다. 올려다보니 그야말로 아찔했다. 수직을 넘어 아예 앞으로 더 기운 듯 했다. 앞서 간 이들이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며 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원한 계곡의 개울물에 취하고 어른들은 장엄한 산에 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