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스프링스로 가는 길
아들 집에서 한 주일을 쉬다가 오늘 길을 나서기로 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ㅡ
미국 공군사관학교가 인근에 위치한 곳에 '신들의 정원'과 ‘바람의 동굴’이라는 멋진 경치를 보려고 가려는 것이다.
아들은 오늘 강의가 있어 아침에 서둘러 학교로 갔으므로 우리는 아이가 돌아오는 대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오늘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잠을 자고 내일 오전에 ‘신들의 정원’을 가기로 한 탓에 우리는 아들이 오기 전에 여행 준비를 해두었다.
아들은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곧바로 서둘러 차에 짐을 싣고 길을 나섰다.
볼더에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덴버에 닿는다. 덴버 외곽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덴버 외곽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다. 볼더에 처음 올 때 들렀던 한식집의 바로 옆집인데 중국음식을 하는 집이다. 그곳에는 한식집과 중식집이 나란히 있었는데 모두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아들 내외가 가끔 한국 음식이 생각나면 덴버에 나오는 길에 들르는 곳이라고 했다.
그곳은 한국인들이 제법 모여 사는 모양으로 음식점뿐만 아니라 우리네 재래시장에서 볼 법한 간판이 여럿 눈에 띄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식당을 차리고 혼수점을 냈을까. 그 옆으로는 노래방도 있었다. 제법 한국인의 흥을 돋우는 구실을 톡톡히 할 것 같다. 배달의 민족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흥이 많은 가무의 민족이 아닌가. 모처럼 얼큰한 짬뽕 맛을 보았다. 늘 육류를 마주하다 칼칼한 국물이 목젖을 휘저으니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역시 나는 이것저것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토종의 범주를 한 치도 벗어남이 없다. 그야말로 단일민족의 후예다운 순혈임이 분명했다. 하기는 요즈음은 아무도 단일민족을 입에 담지 않는다. 한동안은 민족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규정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었으나 그 민족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들도 이제는 더 이상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다문화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민족이라는 말은 특정 집단의 이데올로기로 가두어진 느낌이다.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입에 담는 민족이라는 말 뒤에는 ‘우리끼리’라는 말이 덧씌워지기도 했었다. 그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저쪽의 말’이다. 아직도 그 말은 반도의 저쪽에서는 유효하다.
짬뽕 한 그릇의 양이 상당했다.
우리의 냉면 그릇만한 곳에 가득 담겨 나왔다. 미국인들이 먹는 양이 많은가? 생각해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한국 사람들일 텐데 굳이 음식 양을 많게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많은 양 탓에 아무리 먹어도 여전히 냉면 그릇만한 대접에 붉은 국물이며 면이며 해산물이 가득한 것 같았다. 미국은 음식을 먹다 남으면 거의 대부분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가지고 간단다. 햄버거나 스테이크나 피자 같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데 한식은 대부분 국물이 있는 음식들이다. 그런 것을 남았다고 포장해서 가져갈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여행 중이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가 될텐데. 기왕에 그럴 것이면, 미리 음식을 주문한 사람에게 그 양을 물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로 두어 시간을 달려 마침내 우리의 목적지에 이르렀고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여관을 찾았다.
Innㅡ
학창시절 배운 대로 하면 여인숙 또는 여관인데 시설은 여느 호텔에 못지않았다. 식당, 휴게시설 그리고 심지어 실내 수영장까지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줄 모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이 호텔은 전국을 대상으로 체인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그러니 그저 우리의 소규모 여관이나 여인숙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도 굳이 비싼 돈 주고 호텔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싶다.
하루를 달려왔으므로 피곤할 법도 한데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전혀 피곤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일 이른 아침 러시아 월드컵 축구 시청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
미국은 지역 예선 탈락으로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중계방송이 영 시원치 않다. 우리의 경우 월드컵과 같은 이벤트가 벌어지고 우리나라가 참가하면 하루 종일 보여주고 또 보여 주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그러니 경기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볼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엔 옅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모처럼 보는 구름이다. 볼더에서는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늘 따가운 햇살이 가득했었고 나는 거리 나들이에 나설 때는 가로수 그늘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을 지경이었다. 늘 반바지를 입고 다녔더니 종아리가 까맣게 타버렸다. 오늘은 정말 바깥나들이에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호텔에서 아침을 간단히 하고 다시 차를 달렸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자주 보였다. 그런 곳은 우리들의 아파트 분양처럼 주택 공급자가 한마을을 지어서 분양을 한 것이란다. 땅이 넓은 곳이라 우리처럼 하늘로 치솟는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모두가 단독 주택 형태이다. 그러니 우리의 시골 마을처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정감이 있어 보였다. 이러한 공동주택은 우리의 아파트처럼 단지 내에 다양한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고 모든 시설은 공동관리 된다.
얼마간 가다가 아들은 먼 곳을 가리키며 그곳이 미국공군사관학교란다. 너무 먼 곳이라 전혀 낌새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지만 아들이 공군사관학교 출신이라 왠지 공감이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공군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쫑긋해진다. 그것이 아들과 관련이 있건 없건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그저 공군의 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분노한다.
얼마를 더 갔을까 아들이 오른쪽 멀리를 가리킨다. 그곳에는 붉은 빛을 띤 돌산이 보였다. 그곳이 오늘 우리가 가려는 ‘신들의 정원’이라는 곳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