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더 읽기 : ② 미소가 가득한 사람들
미국은 역사가 일천한 나라이다. 이 광활한 땅에 사는 사람들도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모여든 이민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인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이 처음 이 땅에 정착했을 때는 그들에 앞서 이 땅의 원래 주인들이 있었다. 인디언들이다. 그들은 인디언들과 사투를 벌이며 자기들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 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일부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서부로 향했던 것이다.
일확천금이 그들의 꿈이었지만 한편으로 그 일확천금을 지키는 일도 획득 못지않게 중요했다. 늘 나의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총기는 내 일상을 지켜주는 유일한 무기가 되었다. 총기 휴대는 내 생명에 대한 확실한 안전보장 장치였다. 사실 그런 세상은 늘 불신으로 가득 찬 곳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상대방에게 내가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림으로써 상대방이 내게 적의를 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없다는 의사표시가 바로 가벼운 미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속담에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 속담은 이 땅을 떠나 낯선 미국 땅에서 제 행세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것도 수출 품목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간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는 잊어버리고 지금은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는 일단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누가 대 뒤통수를 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미소로 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소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한다. 백화점의 점원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그런 상업주의적 미소를 제외하면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서로 옆 사람을 쳐다보는 일도 없다.
<콜로라도대학교 볼더의 미식축구팀 상징인 버펄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남의 일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른바 불간섭주의다. 괜히 끼여 들어봐야 화를 당할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끼여들지 않으니 배려는 남의 일이다. 배려가 차단되면 양보는 더더욱 개입할 여지가 없게 된다.
양보? 복잡한 전철에서도 먼저 앉는 게 상책이다. 그 자리에 나보다 먼저 누군가가 앉으려 하면 일단 가방이라도 던지고 봐야한다. 적의가 넘실댄다. 그런 곳에는 미소가 자리할 여지는 전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미소며 가벼운 인사말은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의 몫이다.
그들이 어렸을 적에는 그런 인사가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우리는 미소와 따뜻한 배려 그리고 양보를 점차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기우였으면 한다.
볼더 중심가 마트를 들어서려는데 한 중년 부인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비켜선다. 나는 이곳 사람들 흉내를 내어 문을 열고 그분에게 손짓으로 먼저 들어갈 것을 권했다. 그 분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thank you’라는 짧은 말을 아주 기분 좋게 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you’re welcome!!”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나도 슬슬 현지화가 진행 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