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통 문화 / ② 정지신호 : <STOP>
그런가 하면 골목 곳곳에 또는 골목에서 큰 길로 나오는 길목에서 반드시 눈에 띄는 교통 표지판이 있었다. 표지판은 붉은 색 팔각형인데 그곳에 <STOP>라고 쓰여 있다. 말하자면 골목에서 나올 때, 동네에서 큰 길로 나설 때와 같은 경우 운전자 앞 도로에서 좌우로 운행 중인 다른 자동차가 있는지, 건널목을 건너는 또는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는지를 반드시 살피도록 하기 위해 아예 운행 중인 자동차를 멈추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정차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은 달리 신호등이 없다. 따라서 직진 차량이나 우회전 차량은 반드시 멈추고 주위를 살핀 후 가야할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
처음 샌프란스시코에서 아들네 식구를 만나 관광을 위해 아들과 차를 차고 가는데 아들은 큰 길로 나서면서 <STOP> 표지판 앞에서 일단 차를 정차했다. 앞에는 분명 차도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운전 습관에 길들여진 내가 아들에게 앞에 아무도 없고 차도 없는데 왜 세우냐고 물었더니 이곳에는 반드시 그래야 한단다. 내 경우를 비추어 봐도 우리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고 별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대체로 그냥 지나치는데 이곳에서는 모두가 철저히 법을 준수하고 그 영향을 아들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군부대내 관사에서 생활을 하는 아들 집을 가끔 들리려 가는데 그 부대 내의 도로 바닥에도 비슷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사거리 앞이거나 주변에 관사와 같은 동네가 있는 곳(이 경우 그곳에서 다른 차량이 나오거나 아이들이 달려 나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이나 다른 부대 앞 같은 곳에서 주의를 하라는 뜻으로 도로 바닥에 흰색으로 잠시 정차를 하고 가도록 표시를 해 놓았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상당히 불편했다. 그래야 겨우 3초 정도일 텐데도 그 3초를 못 견뎌 했던 것이다. 아들은 그런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탓인지 이곳의 교통 문화에 금방 적응한 듯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이었으므로.
앞에서 잠깐 말한 것처럼 이곳 현지 사람들은 이런 정차 표시 앞에서는 그저 좌우를 한번 살피는 것으로 별 눈치도 없지 자동차가 있거나 없거나 길을 건넌다. 그래도 우리처럼 자기 차 앞에 사람이 지난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을 하거나 불쾌하게 여기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운전자들은 대부분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바라보고 있으며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와 함께 미소를 보내준다. 그러니 길을 건너는 보행자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미소를 보내준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악의 없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건 서부 개척 시대를 살아남은 미국인들의 독특한 생존방식에서 연유된 듯하다.
또 하나, 관심을 끈 것은 자전거 전용 도로였다. 국토가 넓은 나라라 하천 고수부지 같은 곳을 따라서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져 있은 그 경우는 대체로 운동, 산책 등을 위한 것이다. 자전거 타기를 일상화하려면 도심 어느 곳이든 자전거로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도로의 일부를 자전거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았다. 도심을 벗어나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지역의 주택가 주변 2차선 도로의 경우 1차선은 자동차 전용도로, 갓길은 갓길 주차 허용 구간, 그리고 1차선과 갓길 사이에 남게 되는 자투리 좁은 길은 자전거 전용도로였다.
그러니까 자동차과 자전거가 동일하게 한 차선씩 나누어 쓰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 우선의 문화가 정착된 우리나라는 교통 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기껏 예산을 들여 마련해 놓은 자전거 전용 도로를 슬그머니 없애 버렸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나 그 중 자전거 전용 도로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하고 부분 부분이 잘라져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인 듯 했다. 말하자면 자전거 전용 도로가 도심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지역 일부에만 만들어진 전시효과적인 정책 집행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전거를 가지고 시내를 나가면 대부분의 구간은 인도로 자전거를 끌고 가거나 자동차 도로로 운행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교통 흐름의 방해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충분히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동차 운전자의 불편을 감수하고 자전거 통행을 위해 도로의 일부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내 관심을 끈 것은 일방통행 도로였다. 이러한 도로는 사실 볼더보다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심에서 더 많이 보았다. 그곳은 도심의 대부분의 도로가 일방통행로였는데 모든 차량이 한 방향으로만 가니 마주 오는 자동차에 대한 주의를 별도로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과거 양방향 2차선이 일방통행로로 바뀌게 되면 4차선 도로가 되는 셈이니 교통 흐름이 원활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다만 우리와 같이 초행길인 경우 목적지에 정확히 이르지 못했을 때 정확한 위치를 찾기에 다소 곤란을 겪을 수는 있겠다. 싶었다. 도로의 맞은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멀리 한 두 블록을 돌아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요즈음은 매우 똑똑해진 네비게이션을 잘 활용하면 별 문제는 없어 인다. 어떻든 그런 것을 제외하고는 일방통행로는 꽤 좋은 제도라는 생각이 되었다.
수년전 인천의 복잡한 도심 한 곳에서 이면도로를 일방통행로로 하고자 했으나 그 도로에 접해서 삶을 이어가는 상인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익이 공익에 우선하는 사회이므로 가능한 일이겠다. 내가 조금 양보하고 사회가 훨씬 편리해진다면 그러한 양보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말로만 ‘양보가 미덕’이 아니라 양보가 생활이 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천 송도신도시는 처음부터 계획되니 도시라 도로가 넉넉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곳이 일방통행로로 되어 있어 도로가 한층 여유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