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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미국을 엿보다(40) /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의 방과후 수업
게시물ID : travel_275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막인생
추천 : 0
조회수 : 6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6/12 22: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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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대학교 볼더의 방과후 수업을 지켜보다가
 
오늘은 혼자서 대학교를 다시 가보기로 했다. 어제 갔던 곳을 제외하고 대로 건넝 있는 또 다른 곳을 중심으로 돌아볼 요량이었다. 어제 대학 길 건너 언덕을 오를 때 티켓을 파는 곳을 그냥 지나쳤었다. 무슨 일로 티켓을 판매할까? 아들은 그곳이 공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도 아직 한 번도 안 가 보았단다. 공부에 전념하느라 그랬으려니 하지만 그래도 그 말을 들으니 코끝이 찡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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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대로 표를 파는 곳이니 무슨 경기장이 있겠거니 하고 말았던 곳을 제일 먼저 찾았다.
마침 문이 열려 있어 안을 들여다보다가 살그머니 들어가 보았다. 어디선가 바닥에 공을 튀기는 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저만치 아래가 농구장이었고, 내가 서 있는 곳은 관중석의 제일 상단이었다. 농구장의 규모가 엄청났다. 무슨 대학교에 미식축구장이 있지를 않나 농구장이 있지를 않나. 그저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농구장의 관중석은 아무리 적게 어림해도 우리나라 프로 농구 경기장의 관중석보다 많을 듯싶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농구장을 내려다보면 마치 무슨 지하 동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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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장에는 여고생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지도교사의 지도 아래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다. 누가 전직 교사가 아니랄까봐 한참 동안 학생들의 수업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교사의 말에 충실히 따랐으며 장난을 하는 학생이나 쓸데없이 떠드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지도교사의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쉬는 시간은 엄격히 전광판에 시간을 표시하고 시간이 다 되자 교사는 한 치의 틈도 없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각자 공을 들고 슛 연습과 드리블 연습을 하던 학생들이 각자 제 자리에 돌아왔다. 특별히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공 튀기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별 말이 들리지 않았다. 교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공을 바구니와 넣고 다시 제 자리로 오라는 지시를 한 모양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자기의 공을 바구니에 넣고 제 자리로 돌아왔으나 학생들의 행동이 다소 굼떠 보였는지 교사는 다시 공을 가지고 제 자리로 오라는 지시를 내리는 듯 했다. 학생들은 아무 말 없이 교사의 호룰기 소리에 마주어 재빨리 움직였다. 더운 날씨에 불필요해 보이는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것에 짜증을 낼 법도 한데 학생들은 아무도 지시에 불만을 품거나 어슬렁거리지 않았다. 사실 그게 학생일 텐데도 그 마저 신기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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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행동은 자유 분망해 보였으나 수업은 매우 집중도가 높아보였다. 모두가 지도교사의 지시로 골밑 슛 연습을 하는데 아무도 딴 짓을 하거나 장난을 치는 학생은 없었다. 분명 방학 중이라면 우리로 치면 방과후 학교 같은 개념의 수업일 텐데. 그 학생들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이 땅의 학생들이 오버랩 되었다. 미국의 학생들이 규칙을 배우고 협력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어른들의 정치논리에 휘둘려 자기 앞의 선배와 다른 역사를 배우고 더러는 패거리나 떼거리 문화를 배우고 있는 것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교단에는 그런 패거리 문화를 향유하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판이니 말이다. 이런 문화는 자기들만이 선이라는 패거리 문화에 갇히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적폐라는 말은 실은 가진 자의 오만이 만들어낸 말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적폐라는 말을 몰랐을까? 아니면 그 말을 미처 생각을 못했을까? 그는 누구보다도 긴 세월동안 음습한 감방 한 구석에서 쓰디쓴 쓸개를 씹고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적폐보다는 화합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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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청산이 패거리 문화의 전유물이라면 화합이야말로 인류보편의 가치일 테니까. 학생들이 배워야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가진 자의 오만으로 역사를 난도질 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런 역사라면 어쩌면 수년이 지난 후의 학생들은 또 다시 난도질된 역사를 배우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역사적 사실은 하나일 텐데도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제멋대로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그 제멋대로의 시선에 의해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합의이다. 합의는 특정 세력만의 합의를 말함이 아니라 보편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합의가 이제껏 없었으므로 세력의 교체는 앞선 세력의 역사 부정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조차 합의라는 말을 외피로 두르고 말이다.
한 때는 다시는 바꾸지 못하도록 대못 질을 한다고 했지만 그 대못도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에게 있어 역사란 보편성을 떠난 단순한 승자의 전유물인 듯하다. 학생들은 그 전유물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배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학교 안에서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이 사라져 버린 지는 참으로 한참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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