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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미국을 엿보다(31) / 마침내 로키산맥을 넘어 볼더로
게시물ID : travel_274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막인생
추천 : 0
조회수 : 58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5/16 00: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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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마침내 로키산맥을 넘어 볼더로
 
비행기 탑승을 위해 차례를 기다려 공항 심사대에 들어섰더니 배낭에 넣어둔 컴퓨터는 들고 타는 것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정밀 검사를 다시 해야 했다. 인천공항에선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아들 부부가 저만치서 웃고 있었다. 아들이 미리 일러주었는데도 내가 깜빡한 때문이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전자제품에 대한 경계심이 큰 것은 워낙 테러에 대한 공포가 큰 때문인 모양이다. 그들에게 9.11 사건은 잊을 수 없는 공포일 테니까. 뭐가 어찌 되었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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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비행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이제 두어 시간 후면 아들 녀석이 소꿉장난하는 곳에 이를 것이다. 나는 아들 부부를 보고 군대에서 내무 사열하는 당직사관 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들 부부는 그런 나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 나보다 더 크게 웃는다. 얼마나 갔을까?
비행기가 얼마간 하늘을 날자 로키산맥에 이르렀다. 로키산맥은 정상부근에 만년설을 이고 있었다. 분명 산 아래에는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는데. 수년전 서유럽을 여행할 때 알프스 산위의 만년설이 떠올랐다. 얼마나 산이 높으면 한 여름에도 눈이 그대로일까 싶었다. 그때 만년설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직접 보고 만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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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반쯤 녹은 듯한 눈일 뿐인데도 참으로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만져보았던 것이다. 잠깐 동안 비행기가 로키 산맥을 넘어서자 그 너머로 넓이를 가늠하기 힘든 광활한 평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마치 텔레비전의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아프리카 초원의 평원 같았다. 혹시 하는 생각에 시선이 닿는 평원의 모든 곳을 샅샅이 훑었다. 어디라도 얼룩말이며, 들소들이 있을 턱이 없겠지만 그만큼 평원은 넓고 눈부셨다. 시선의 그 끝에서 점점이 집들이 나타났다. 이곳 역시 샌프란시스코처럼 숲과 집들이 서로 사이좋게 섞여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를 처음 내려다보며 도시가 어디로 사라져버린 줄 착각을 할 정도였다. 모든 도시는 숲과 함께 어울려 있었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구호가 한동안 어디에나 써져 있었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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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사람들은 제 욕심을 위해 자연을 마구 파헤쳤다. 자연은 후손에서 빌려서 쓰는 것이라는 묘한 말을 하기도 했지만 개발 논리는 언제나 그런 황당해 보이는 말을 앞서가고 있었다. 걸핏하면 그린벨트가 해제되었다. 이곳에서는 그런 구호가 따로 필요치 않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연의 친구였다. 다람쥐가 사람에게 다가오고 이름 모를 새들이 공원의 비둘기 흉내를 내며 미련을 피운다. 사슴이 도로 옆 가로수에서 한가롭게 배를 채우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기세 좋게 도로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입맛을 다시며 되새김에 열중하고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이런 광경을 바라보고 있거나 사진을 찍거나 할 뿐 결코 다가가지 않는다. 그야말로 사람은 자연보호이다. 그걸 굳이 구호로까지 만들어 놓고도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어딘가 좀 이상해 보인다. 구호가 뒤로 밀리고 자연 파괴가 다반사라면 자연보호는 누가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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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평원 위에 30~40가구 정도 되어 보이는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의 동네가 사방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남미의 나스카 문화의 흔적을 보는 듯했다. 덴버였다. 우리의 아파트처럼 건설업자가 주택을 개발해놓고 분양을 한 것이란다. 이제 얼마 후면 아이들이 생활하는 집을 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고 사는지ㅡ
거의 세 시간 가까운 비행 끝에 덴버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는 제일 먼 제주도까지도 고작 한 시간을 조금 넘길 뿐인데 이곳에서는 주 하나를 넘어가는 데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니 정말 큰 나라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비행기는 계류장 진입차례를 기다리느라 오랫동안 대기를 했다. 우리 같으면 비행기가 멈추기 무섭게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하는데 이곳 탑승객들은 이미 익숙한 듯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옆 사람만 겨우 들을 만하게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하며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 탓에 기내는 참으로 조용했다. 분명 이곳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거친 사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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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을 빠져나오자 아들은 자기 차를 인근 사설 주차장에 주차를 해 두었다고 그리고 가잔다. 공항 앞 도로에는 사설 주차장과 공항을 왕복하는 셔틀버스가 정차해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비행기 조종사까지도 그랬다. 우리처럼 공항 근처 또는 고속철 역 주변 공터에서 허가 없이 운영을 하는 그런 주차장이 아니었다. 사설 주차장은 매우 규모가 컸으며 기업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주차 요금은 지붕이 있는 주차장과 지붕이 없는 노천 주차장이 차이가 있었다. 한 낮의 열기가 너무 덥다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늘 그렇듯이 선택의 각자의 몫이므로 자기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여 주차를 하면 된다.
공항 사설 주차장에서 우리는 마침내 아들의 차에 올랐다. 이제 아들 집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이다. 덴버 시내를 빠져나오면서 저녁 요기를 위해 덴버 근교의 한인 식당을 찾았다. 불고기를 주 메뉴로 하는 식당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식당과 똑같이 형태로 상차림이 나왔다. 대체로 외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더라도 현지인의 입맛을 고려해서 상차림이 다소 낯설어 보이는데 이곳은 철저히 전통 한식을 고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현지인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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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식사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한국 음식이 그리운 한국 사람들이었다. 덴버에는 한국 사람들이 꽤 많이 사는 모양이었다. 한식당 덕분에 불고기와 함께 한 주일 만에 야채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한식당 바로 옆집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이라고 했다. 다음에 볼더를 나설 때는 그곳을 들러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얼마간 너른 들판의 고속도로를 달려 볼더에 도착했다. 별로 크지 않은 그러나 매우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아들 내외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주변은 온통 푸른 잔디로 가득한 그야말로 푸른 초원의 집이었다. 푸른 초원 위의 집. 문득 유명 가수의 출세작인 유행가 가락이 생각났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임과 함께 한 백년 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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