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 공항으로 가는 길(1)
한 주일 동안 미국 서부 관광을 마치고 오늘 비로소 아들이 사는 볼더로 가는 날이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곳을 보았다. 더러 생소한 것들로 인해 새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도 했다. 패키지여행으로는 경험할 수 없었음직한 작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와 그 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샌프란시스코의 부두,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러시안 힐, 남녘 석양빛에 멋진 실루엣으로 제 몸을 수줍게 드러내었던 금문교, 그런가 하면 톨레스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순(耳順)의 문턱을 넘은 내게 참된 휴식이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 주는 듯 했다. 그런가 하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만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오클랜드 언덕 위 민박집으로 귀가할 때는 또 어땠는가? 붉게 물든 샌프란시스코 만의 노을은 몽환적 서사로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지금은 늘 잿빛 하늘이라 잊고 지냈던 어릴 적 그 멋진 하늘 풍경을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음껏 즐긴 기분이었다.
그런가 하면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웅혼한 계곡과 그 속에서 순수를 간직한 채 모습을 드러낸 웅장한 폭포며 초원들, 온갖 고래들이 철따라 몰려든다는 몬테레이 만에서의 집채만 한 몸체와 보잉기의 꼬리날개를 연상케 하는 혹등고래의 꼬리가 은빛 물결을 가르고 솟구쳐 오르다 바다 속으로 사라져갈 때는 흥분을 넘어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어제는 캘리포니아 1번 국도를 마음껏 달리며 그 중간 중간의 해안 절경을 눈에 담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동해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데도 이국땅이어서 그런지 새로운 것 같았다. 사실 해외여행에서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눈에 띄는 모든 것이 다 신기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지만 막상 집에 돌아와서 보면 사진 속 풍경들의 태반은 우리네 뒷동산하고도 별 차이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절경에 쑥 빠져들었다.
어떤 곳은 우리의 동해안과 제주도를 한 곳에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으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인구에 비해 참으로 넓은 땅을 가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었으므로 거칠고 빈 너른 땅들은 태초의 날것 그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푸른 목초지 옆으로 주인도 없을 법한 거친 황무지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네 집으로 가려면 산호세 공항으로 가서 그곳에서 덴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단다. 그리고 그곳 덴버에서 다시 자동차로 한 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야 비로소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기숙사에 이르게 된다. 땅이 넓은 나라여서 그런지 주에서 주를 건너가는데도 비행기로 몇 시간씩 걸리니 마치 미국 내에서의 여행도 외국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사실 미국은 각각의 주가 매우 독립적이어서 우리의 도와는 그 개념이 다르다. 연방정부는 국방과 외교에 관해서만 전권을 가질 뿐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주정부와 주 의회의 몫이란다. 말하자면 철저한 지방자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법은 주 의회에서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내용에 대해서도 주에 따라 법이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마약이 합법으로 인정되는 주가 있는 곳도 있다니 말이다. 처음에는 자동차의 번호판이 모두가 제각각인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흥미로웠다. 각 주는 자동차 번호판에 고유의 문양을 그러넣었다. 어떤 주는 번호판에 주 이름을 써놓기도 했다. 이 또한 주에서 제정한 법에 따른 것으로 사실 이상하거나 신기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무엇이든 획일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살다온 내게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새삼 지방자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알려주는 것 같았다. 우리의 경우 지방자치를 한다고 해도 중앙 정부는 어떻게 하면 지방 정부를 자기네들의 영향력 하에 묶어둘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 중앙 정부의 각종 규제도 그 하나일 것이다. 선거 때는 규제를 철폐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막상 당선이 되고나면 오히려 규제의 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러한 인식으로는 진정한 자치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런 탓에 지방자치를 시행한지 제법 되었지만 아직도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내다본 풍경은 이제까지와는 또 달랐다. 고속도로 주변은 민둥산 같은 산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아마도 목장인 듯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본 미국 서부 지역은 산 군데군데 높이 자란 침엽수를 제외하고는 야트막한 관목이 더러 있을 뿐 대부분은 마소먹이의 풀이 전부였다. 목초지의 풀들은 신기하게도 온통 누런빛이었다. 지금이 6월이니 풀은 당연히 찬란한 초록빛을 띠고 있어야 할 텐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산을 이곳처럼 개간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환경단체가 들고 일어나고 이상한 단체들이 여기에 보조를 맞추고 나라는 아수라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사드배치보다 더 했을지도 모르지ㅡ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과민 반응은 지난 정부까지의 경우이다. 지금은 그런 일들에 대한 관심은 모두 개점휴업이거나 짐짓 모른 체한다. 혹시라도 그와 비슷한 일을 벌이더라도 그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 정부의 일들일 때만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될 뿐인 듯하다. 최근에는 격동의 시기 그 중심에 섰던 작고한 인사에 대한 훈장 추서에 대해 딴지를 거는 판이다. 그들의 의도에 대해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 결국 과거 환경단체들을 포함한 이러저러한 단체들이 정부 정책에 쌍심지를 돋으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어찌 보면 환경문제 같은 것은 외피에 불과하고 이를 빙자한 저항으로 읽히기도 한다.
지금 전국은 에너지 자원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풍력 발전 또는 태양광 발전을 위해 땅이 마구잡이로 이곳저곳 파헤쳐지고 있지만 어떤 환경단체에서도 무분별하게 국토를 파헤치고 자연을 훼손한다고 시비하지 않는다.
그런 환경단체의 누군가가 지금 우리가 지나는 이곳을 보면 무슨 말을 할까 모르겠다. 결국 환경단체라는 곳도 일찌감치 순수를 벗어나 모종의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 없다.
한때 4대강 개발에 대한 극렬한 반대가 스멀거리며 잔상으로 떠오른다. 하루아침에 권력을 잃어버린 한때의 권력자들은 거세된 채 그런 상황에 대해 짐짓 외면하거나 모른 체 시비하지 않는다.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것들을 보면 더러 우리는 이증잣대가 당연시되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끗발이나 군중심리가 상식보다 우선하는 사회가 그런 사회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보니 ’세월호‘ 사고로 명을 달리한 학생들이 고마웠던 건 아닌지. 그들이 고맙다는 말이 그들로 인해 반사이익을 보았다는 말로 들리는 건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