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게시판과 종교게시판의 교류 2단계입니다.....
1단계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이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phil&no=2732&page=1&keyfield=&keyword=&mn=&nk=&ouscrap_keyword=&ouscrap_no=&s_no=2732&member_kind= 종교게시판에도 가끔 놀러와달라는 게시글에 감명받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재밌네요.
우선 제 글은 각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리저리 짱뽕하고 끼워맞춰서 쓴 뒤에 제 의견을 코멘트함으로서 완성시킵니다.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해주시지 않았으면 하고, 이 글에 나오는 각 철학자들의 주장을 정확하고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원서나 2차 서적을 참고해주세요.
대표적으로 이번 글에 나오는 비트겐슈타인은 원래 상식적 세계관을 공격하지는 않습니다만(그저 언어의 사용에 대해서 말할 뿐입니다), 저는 그 주장을 확대 해석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는 글이지 논문이나 학술지가 아니에요 ㅠㅠ
덧글에 불가지론과 무신론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끄적여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흔히 철학에서 정의하는 신인 "초월적이고 완벽한 절대자"를 의미합니다. 어떤 종교에서의 특정한 신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신 같은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격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을 최소한으로 정의한 다음 이 주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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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불가지론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흔히 종교 논쟁에서 많이 쓰이는 것 같은데, 유신론이나 무신론과는 다른 제3의 길처럼 표현되더군요. 또는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자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 "저는 불가지론자에요."라고 말하기도 하죠.
종교 논쟁에서 불가지론은 기본적으로 이런겁니다.
"우린 신의 존재나 기적, 또는 영혼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신론자들의 주장처럼 그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굉장히 합리적이고 옳바른 이야기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을 지켜야하는 것이지요.
저번 글에서 저는 신의 존재를 믿어야하는 이유를 신을 믿으면 좋은가? 안 좋은가?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굉장히 타당한 주장의 덧글들이 달렸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것이 있기 때문이어야지, 그것을 믿으면 좋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적어도 우리의 이성으로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또는 참인지 거짓인지 절대로 알 수 없는 명제에 관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할까요?
천재찡인 칸트 형은 이성의 한계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서양 철학이 추구하는 이성을 통한 진리의 탐구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그 한계를 분명하게 하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결국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의 한계를 이성으로서 밝혀냈습니다. 이건 굉장히 재밌는데요. 어떤 도구의 한계를 바로 그 도구를 통해서 밝혀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장은 쉽게 말하자면 이성은 선험적인 것은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성이라는 것은 표상과 개념만을 대상으로 다룰 수 있는 도구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과를 보면 그 사과를 머릿속에서 표상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과들을 보면 그 사과들의 표상을 '사과'라는 개념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실에 있는 것 뿐입니다. 사과나 야구공처럼요.
하지만 대표적으로 신의 존재, 영혼의 불멸성, 사후세계 같은 부분은 이성으로 다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험할 수 없고 그렇기에 표상할 수 없거든요.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기 때문에 증명 자체가 불가능하고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문제는 확실해졌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요?
여기서부터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하면, 있다고 믿을 수도 있고(종교 논쟁에서의 유신론) 없다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종교 논쟁에서의 무신론) 믿는다는 표현이 부담스러우시다면 굳게 가정한다라고 말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불가지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 그것에 관하여 무슨 믿음이 필요하고 가정이 필요하냐고. 그냥 모른다는 결론에서 끝을 내야하고 우리는 침묵을 치켜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타당한 주장입니다.
있으니까 믿고 그래서 좋은거지. 좋으니까 있고 그래서 있다라는 주장은 분명 선후관계가 잘못 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불가지론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우린 모른다.'로 논의를 끝내기에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불가지론을 종교적인 잣대에만 가져갔기 때문에 분명 문제 없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종교적인 명제가 아닌 다른 선험적인 명제들에도 가져가면 이는 불안해집니다.(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안해진다.)
데카르트가 방법 서설에서 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의심해보기로 하고, 불가지론의 입장을 취해서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어 보겠습니다. 간단한 사고 실험입니다. 상상력이 분명 필요하고 그리고 그런 세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재밌습니다.
우선 수학의 기본 공리들을 생각해봅시다. '1=1'이나 '점은 면적이 없는 지점이다.'라는 두 명제가 있습니다. 둘 중 어느 명제든 그것이 진짜라고 증명할 수 있나요? 분명 수학적 공리들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선험적인 명제들입니다. 그저 우리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로서 그것이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플라톤의 비유처럼 우리가 현실에서 삼각형을 그리면 그 삼각형은 수학적 삼각형이 아닙니다. 각도도 정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선에 두깨가 존재하니까요. 그렇다면 수학적 공리들을 모른다고 말하고 침묵해야합니다. 그리고 공리들을 전제하고 쌓여진 모든 수학적 사실들 역시 무너트리고 모른다고 말하겠습니다.
흄의 지적처럼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떨까요? 인과 관계라는 것은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과 관계는 선험적입니다.
당구를 칠 때에 어떤 공이 다른 공에 부딪쳐서 그 공을 움직이게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는 증명할 수가 있지요? 그저 우연히 그 공이 그 지점까지 가고 그 지점에 있던 공이 우연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을 수도 있는데요?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모두 우연일 수도 있는 노릇 아닙니까?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잇을까요? 매일 그렇게 떠올랐지만 당장 내일부터 서쪽에서 떠오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저 지금까지 동쪽에서 떠올랐을 뿐이고 그것은 모두 우연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불가지론자들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모를 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물리법칙과 우주 상수가 그저 우연히 그러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주가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으며 모르기에 침묵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 우리가 적어도 지금까지 참이라고 알고 있었던 감각은 어떨까요? 데카르트 형이 방법서설에서 말하셨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그저 악마가 만들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감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감각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는 모두 기계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당장 5분 전에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땅 속의 화석과 도시, 자를 때가 다 되어가는 머리카락과 구멍난 양말 모두가 단 5분 전에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우리는 반박할 수 없습니다. 그건 모릅니다.
이런 식으로 사고 실험을 계속한다면 그럼 무엇이 남을까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에 순수한 불가지론자의 세계관은 신을 모르고, 어떠한 가치의 존재도 모르고, 수학도 모르고, 우주의 존재도 모르고, 어떤 법칙도 모르고,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팔다리로 느끼는 어떤 감각도 진짜라는 것도 모르는 세계관입니다. 절대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계관. 저는 이런 세계관을 좀 개념이 다르지만 카오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문제는 이런 불가지론의 세계관이 앞에서 말했듯이 굉장히 타당하고 합리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건 분명 모르는 겁니다.
즉, 극도로 타당하고 합리적이라면 카오스 안에서 사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불가지론자들에게는 분명 비합리적이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상식(흄의 말로는 습관)을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내가 존재하고 우주가 존재하고 나는 그것을 감각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게 상식이니까요. 아직 신의 존재를 그 상식 안으로 집어넣어야하는지는 판단을 하지 못했습니다만(대충 결정을 해두긴 했습니다.) 적어도 일정 부분 굳게 가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