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1번국도, 빅서(Big sur)
캘리포니아의 해안도로를 내달리는 길은 자연 경관이 몹시 빼어났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해안.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이곳 빅서를 선정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멋진 해안을 구불거리며 달렸다. 따가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바람이 해안도로에 가득했다. 얼마간 길을 달리다보니 교각의 높이가 엄청난 거대한 다리가 나타났다.
마치 우리나라의 치악산 부근의 엄청난 높이의 다리 같기도 했다. 빅스비 브릿지라는 다리란다. 다리는 계곡 사이에 걸쳐 있었는데 오른 쪽으로 바다에 연해 있었다. 이 다리는 자동차 광고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다리 입구에 주차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리의 웅장함도 웅장함이려니와 주변 풍경과 잘 어울려 광고 촬영을 왜 이곳에서 했는지를 알 것도 같았다. 다리 위를 폼 나게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 그저 다리 입구에서 이리저리 살피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시 얼마를 가다 길섶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우리를 먼저 반겨준 것은 뜻밖에도 다람쥐였다. 다람쥐는 내가 알기로 사람 인기척만 나도 황급히 줄행랑을 치는 매우 겁이 많은 짐승이다. 그러나 이곳의 다람쥐는 배포가 보통이 아니다. 오히려 다람쥐가 슬금슬금 내게로 다가왔다.
“헤이, 뭐 먹을 것 좀 있어?”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다람쥐의 대담한 뜻을 알아차리지 못해 그저 신기해서 다람쥐를 가까이 하며 사진을 찍었으나 다람쥐는 이내 내가 가까이 가 봐야 먹을 것도 안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 했다. 흘낏 나를 쳐다보더니 휭하니 달아나 버렸다. 그럴 줄 알았으면 땅콩 몇 알을 미리 준비해 오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다람쥐는 공원이며 학교 등 잔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든 어른이든 아무도 다람쥐를 헤치는 사람은 없었다. 말하자면 이곳의 다람쥐는 우리의 비둘기 같은 존재로 보였다. 이들은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대용량 이미지입니다.
확인하시려면 클릭하세요.
크기 : 1.26 MB
다람쥐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그곳에서 바다가로 걸어 내리자 별천지가 나타났다. 야트막한 구릉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꽃이 지천에 가득했다. 마치 유채꽃밭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러 곳이 있다니. 구릉 위의 노란 꽃들은 바닷바람에 이리저리 힘겹게 흔들리고 있었다. 구릉의 끝 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절벽 아래로 바닷물이 거센 바람을 안고 일렁이고 있었다. 그 위에 파란 하늘이 얹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은 듯싶었다. 절벽을 가로지르는 멋스런 다리, 그리고 그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계곡물과 조그만 폭포도 모두가 잘 어울렸다. 그 절벽 끝으로 해안가 오솔길이 멋스럽게 구불거리고 있었다. 오솔길은 이곳 해안가 풍경의 백미였다. 띄엄띄엄 사람들이 오솔길을 느린 걸음으로 즐기고 있었다. 오솔길에도 바닷바람이 가득했다. 어느 순간 제주도의 올레 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바람은 바다 쪽에서 절벽을 타고 올랐다. 절벽 아래로는 파도가 끊임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풍경이 질리지가 않았다. 좀체 자리를 뜨기가 어려웠다. 그곳에서 종일을 앉아있어도 싫증을 느낄 것 같지가 않았다.
문득 지난해 해파랑 길을 걸으면서 실컷 본 동해의 절경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절경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해안은 아름다웠다. 이곳의 바닷가도 그랬다. 바다는 이곳이나 그곳이나 매한가지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하늘엔 햇살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해가 나올 때는 햇살이 따갑다가도 해가 사라지면 음산함을 느낄 지경으로 날씨를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의 여행을 즐거웠다. 게다가 모처럼 아들 내외와 함께 하는 가족 여행이라 힘든 줄은커녕 그저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