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1번국도, 카멜 바이더 씨
멋진 고래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어제의 그 여관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주변이 조용해서 하루를 묵기에는 꽤 괜찮은 곳이었다.
“내일은 멋진 드라이브를 한 번 해보려고.”
“갑자기 웬 드라이브?”
“캘리포니아 1번 국도가 참 멋있어. 도로 변에 풍경이 좋아서 일부러 한 번쯤 가 볼만 해.”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소 여유롭게 여관을 나와 캘리포니아 1번 국도로 들어섰다. 아침은 아점으로 가는 중에 하기로 하고.
국도의 시작은 별 볼 거리가 없었다. 그저 산들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지난번 요세미티를 갈 때처럼 길 양 옆으로 목초지와 농가가 듬성듬성 보였다. 그러다 이내 차는 해안을 끼고 돌았다. 바다가 언뜻 보이기도 하고 숨기도 했다. 따가운 햇살이 달리는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차양을 드리웠는데도 차가 해안의 산허리를 돌 때마다 햇살은 차양을 비집고 들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려 우리는 아점을 하기 위해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그곳에 유명한 맛 집이 있단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니 아들 내외는 뭘 그런 걸 다 물어보냐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 있단다. 하기는 요즈음이 어떤 세상인데. 우리가 들어간 도시는 카멜이라는 곳인데 사실 도시의 규모는 잘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찾아간 동네는 <카멜 바이더 시> 다운타운이란다.
맛 집이라는 곳으로 갔더니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미국인들은 아점을 특별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저 느리게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활기찬 아침이 아니라 여유로운 아침.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아점을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한 맛 집을 찾았었는데 그곳에서도 줄이 길어 결국 포기하고 말았었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맞은편 아담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식당 내부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마치 동화의 한 장면에 빠져든 것 같았다. 식당은 실내뿐만 아니라 안뜰에도 식탁을 내놓았고 그 자리에는 이미 이곳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실 우리는 그런 자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따가운 햇살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햇살을 즐기므로 그런 자리가 제격인 모양이었다. 어떻든 우리는 실내 한 귀퉁이 에어콘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 종업원이 메뉴판을 식구 수대로 놓으며 밝은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이내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음식을 천천히 고르라는 것 같았다. 아들 내외가 음식을 이것저것 고르는 동안 나는 음식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꽃들로 잔뜩 장식을 해놓아 음식점 전체가 화원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다시 조금 전의 그 종업원이 와서 음식 주문을 받았다. 종업원과 아들 내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나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오기 전에 나름대로 틈나는 대로 열심히 영어회화 공부를 했으나 그건 모두 허사였다. 실전을 동반하지 않는 영어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을 뿐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우리 식으로 하면 ‘뭘 드시겠어요’ 하는 정도일 텐데도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음식주문은 아들 내외가 알아서 시키는 대로 먹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사실 말을 알아들었다고 하더라도 음식 메뉴를 고를 수도 없었다. 메뉴판에 적힌 음식의 종류는 수도 없었고, 음료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그 중 어느 것이 무슨 맛을 내는지, 그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한국에서는 메뉴의 가짓수가 많은 음식점은 잘 가지 않는다. 그런 집은 대체로 음식 맛이 별로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내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어떻든 이름도 모르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일어나니 배는 가득했고 머리는 맑아져 있었다. 그래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인 게야.
우리는 느긋한 걸음으로 소화도 시킬 겸 음식점 주변의 카멜 시내 풍경을 감상하려 골목을 누볐다. 방금 음식을 먹은 음식점만 예쁜 것이 아니라 길거리의 모든 집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다. 온통 동네가 일산의 플로방스 마을을 넓게 펼쳐놓은 것 같기도 했다. 일산처럼 언덕 한 귀퉁이 마을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그런 느낌이었다.
도로는 자동차를 세울 수 있는 곳과 세울 수 없는 곳을 도로 경계석에 표시를 해 두었는데 붉은 색이 칠해진 곳은 차를 주차나 정차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주차가 가능한 곳은 흰색이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무인 주차요금 징수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러한 표시나 무인 주차요금징수기는 어디 도시나 있었다. 아무도 관리하는 이가 없는데도 모두들 정확히 주차할 곳에 차를 세우고, 무인 주차요금징수기에 요금을 내고 영수증을 출력했다.
그리고 그 영수증을 주차한 자동차 앞 유리 쪽에 놓아두면 그것으로 끝. 아마도 수시로 주차요금을 제대로 내고 주차를 했는지를 확인하는 순찰을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왜 이런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일자리 때문에 그런가? 그러지 않아도 요즈음은 그 놈의 일자리 때문에 난리라니까 말이다. 도로변에는 심심치 않게 여러 곳에 갤러리가 보였는데 어떤 곳은 자기네 마을 풍경을 수채화로 그려 전시한 곳도 있었다.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카페며 음식점이며, 갤러리들이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각 건물은 서로 주인이 다를 텐데도 각각의 개성 넘치는 집들의 절묘하게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거리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도 우리는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그저 감탄사 연발이었다.
낯선 도시인데도 아름다운 집을 구경하려고 도로를 이리저리 넘나들어도 전혀 교통사고 염려가 없었다. 언제나 도로는 보행자가 우선이니까 말이다. 우리처럼 길을 건너는 사람을 쏘아보거나 심지어 상스러운 소리를 내뱉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운전자는 길을 건너는 사람을 발견하면 아예 저만치서 먼저 정차를 하고 길을 건너도록 손짓으로 유도했다. 아름다운 집들을 실컷 구경을 했는데도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시간이 넉넉하다면 어느 집이건 찻집에 들어가 한껏 여유를 부리며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도 아니라면 좀 더 많은 골목을 종일 쏘다니고도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