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등고래를 만나다
이제부터는 고래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로 바다 위의 작은 변화에도 우리는 수시로 배 양쪽을 오가야했다. 거의 몬테레이만의 끝자락에 이르자 마침내 이곳저곳에서 고래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등이 물 위로 드러나면 뒤이어 엄청난 크기의 꼬리가 수면위로 솟구쳐 오르다 수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엄청난 크기의 꼬리가 미끄러지듯 자맥질을 하는 모습은 탄성조차 잊게 만들었다.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고래로부터 100m 안으로의 접근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라고는 고래가 알아서 우리 배 가까이로 와 주는 일인데 그건 우리의 몫이 아니라 고래의 몫이다.
어떻든 먼 거리 탓에 고래 투어는 감칠맛만 남겨 아쉬움이 가득했는데 비로소 애타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은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 고맙게도 고래 한마리가 우리들의 배 근처에서 크게 물살을 가르며 자맥질을 했다. 그 나마도 순간적이어서 재빨리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면 카메라에 담는 것이 어려웠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나 같은 아마추어에겐 그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몇 장을 간신히 찍을 수는 있었다. 등이 보이는 것과 꼬리가 보이는 것들이었다. 어디에서 고래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바다에서 솟구치는 장면을 포착하는 것은 그야말로 로또 복권 당첨보다 어려운 일인 듯했다. 어떻든 그렇게라도 고래를 보았고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으니 고래에게 감사할 일이다. “나 여기 있어. 너무 섭섭해 하지 마.”
고래가 우리를 위로했다. 녀석은 엄청난 크기의 몸통과 꼬리를 자랑하듯 차례로 솟구치다 물속으로 사라졌다.
“너희들, 돌아가거들랑 나를 봤다고 실컷 자랑해.”
분명 그래가 그리 말했다. 그래. 언제 또 이런 귀한 기회가 다시 오겠어. 그리고 주변의 누가 이런 멋진 광경을 봤겠어. 오직 나 혼자만의 흥분이고, 설렘이고 가슴 뿌듯함이겠지. 앞으로 누가 고래 이야기를 하면 나는 입을 다물어야 하겠다. 서울 사는 사람보다 서울을 한번 다녀온 사람이 서울 이야기를 더 길게 하는 것이니까. 어디나 그런 사람이 꼭 있지. 내 주변에도 군대라고는 4주 동안의 기본 훈련만 받고만 사람이 나보다 훨씬 군대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리고 오래 하는 이가 있었지.
높은 파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래를 쫒느라 힘들어 하는 이가 없었다. 얼굴에는 고래를 봤다는 환희로 가득했다. 모두들 손에는 카메라며 스마트폰을 든 채로 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세 시간 동안의 고래투어는 늘 tv에서만 보던 아쉬움과 그로 인한 갈증을 한 순간에 잠재워주었다. 고래를 보는 순간 바다는 고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처음 나올 때처럼 파도 아래 숨어 반짝이고 있었다. 가마우지는 여전히 분주해 했고 바다사자는 관광객을 위해 어리광을 부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듯 했다.
항구로 다가서자 멀미 때문에 고래투어를 포기한 집사람이 며느리와 함께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괜찮았어?”
“아니 뭐. 그냥 고래가 우리 앞에서 재롱삼아 자맥질을 하더구만.”
“멋있었겠네?”
그제야 나는 집사람에게 고래 이야기를 양념을 곁들여 들려주었다.
“당신 샌프란시스코 39번 부두에서 바다사자를 봤잖아. 덩치가 상당했었지. 그 바다사자가 조그만 강아지 같이 보일 정도였어.”
“그래?”
“굉장했어. 정말 고래란 놈은 집채 만 하더구만.”
“볼만 했겠네.”
그러다 집사람은 시샘이 났는지. 한마디 한다.
“”배고파. 밥이나 먹으로 가.“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몬테레이만의 고래 투어는 정말 환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