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쫄보형의 베트남 여행기(feat. 연애기)
# 1.
베트남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레임과 두려움, 그리고 약간의 쫄림까지, 삼박자가 갖춰진 완벽한 여행이 시작됐다.
인천공항에서 약간의 연착은 있었지만 비행편은 예정시간보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베트남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간 내가 가본 도시들이 주로 동북아시아나 유럽 유수의 국가인 탓에, 공항에서 일정시간을 헤매이는 것은 일상다반사 였지만, 노이바이 국제공항은 참으로 아담했다.
헤맬만한 길이 몇 개 없었다.
이미그레이션에서 매우 여유로운 베트남 철밥통 형님들의 니나노 입국심사만 아니었어도 100메다를 15초안에 끊는 나로서는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까지 1분 컷으로 끊을 자신이 있었다.
입국심사대를 나오니 바로 입국장이었다.
입국장은 매우 단촐했는데, 파파이스 매장과 몇 개의 로컬 카페들, 간이 음식점 들이 보였다.
늦은 입국 탓으로 태반의 매장들은 이미 문을 닫고 있었지만,
환전소나 심카드 판매점들은 대부분이 열려있었다.
먼저 입국장 안에서 심카드(sim card)를 구입했다.
베트남에서는 심카드를 주로 환전소에서 같이 판매하는데,
심카드는 스마트폰 안에 들어있는 한국의 유심카드를 말한다.
이 심카드를 구입하여 사용하면 로밍보다 훨씬 저렴하게 스마트폰으로 전화나 데이터를 사용할수 있다.
간단하게 심카드는 미리 돈을 내고 전화나 데이터를 사용할수 있는 일종의 기간제 선불 유심이라고 보면된다.
영어로 되어있는 카탈로그를 보면서 약간의 전화통화와 3기가 이상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심카드를 찾아보았다.
기간은 1주일 이상이어야했다.
가격은 최하 6불 정도부터 기간이나 사용량에 따라서 30불가량 비싼 것도 있었다.
파파이스 근처에 환전도 해주고, 심카드도 파는 곳이 두군데 문을 열고 있었다.
두곳의 환율은 미세하게 차이가 났다.
1동이라도 환율이 좋은 곳에 가서 줄을 섰다.
당장 쓸 돈 정도만 바꾸고, 내일부터는 호안끼엠에서 돈을 바꾸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공항 환전소가 환율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것 아니던가.
나중에 알고보니 공항 환전소의 환율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호텔 로비의 환율이 가장 나쁘고, 은행의 환율이 가장 좋은 편이었는데,
호텔은 접근성이 너무 좋고, 은행은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곳 환전소에서는 7일동안, 전화 60분, 인터넷 5기가를 사용할 수 있는 심카드를 10불 정도에 판매하고 있었다.
300불 정도를 바꾸고 10불 남짓하는 심카드는 환전한 베트남 동(VND)으로 구입했다.
25만동 정도이었다.
베트남의 화폐단위는 동(VND)인데,
한국돈으로 환산 할 때는 0을 하나 빼고 반으로 나누면 대략 비슷했다.
예를 들어 내가 산 심카드가 25만동이었는데,
0을 하나 빼면 2만5천원, 반으로 나누면 1만2천5백원,
즉 25만동은 대략 한국 돈 12,500원 수준인 것이다.
또 한국에서 베트남 돈(VND)으로 한전 할 경우에는 다른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한국돈(KRW)을 베트남 돈으로 바로 바꾸어 가는 것보다는,
한국돈을 미국 달러(USD)로 환전해서,
이를 다시 베트남 현지에서 베트남 동(VND)으로 환전하는 것이 꽤나 환차손을 줄이는 방법이었다.
한국 돈에서 미국 돈으로, 미국 돈에서 베트남 돈으로, 두 번이나 바꾸면 손해를 더 볼 것 같은데,
네이버에 찾아봐도 그렇고 실제로 내가 겪어봐도 이게 더 환율이 나은 것 같았다.
나는 마침 미국 달러가 좀 있기도 해서 그냥 달러를 가져가서 환전해서 썼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일단 한화를 베트남 동으로 바로 환전해 주는 곳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외환은행 다니는 친구가, 한국 돈을 베트남 돈으로 바꿔주는 환율보다,
달러를 가지고 가서 베트남 현지에서 그냥 아무 환전소에서나 달러를 동으로 바꾸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쉽사리 환전을 마치고 심카드도 구입했다.
심카드 팔이 아가씨에게 교체를 부탁하고, 잘 되는지 테스트까지 마쳤다.
감사한 마음에 씬깜언을 외치고, 1만동 정도의 팁도 주고 나왔다.
환전 시 밑장빼기가 유행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환전한 돈을 따로 세보았지만 문제는 없었다.
50만동짜리 하나를 잔돈으로 바꾸기도 했다.
팁을 줄 때 주더라도, 큰돈에서 쓰는 것 보다는 잔돈이 좀 있어야 돈을 쓰는데 더 각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입국장 밖으로 나와서 흡연구역을 찾았다.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는 무료 와이파이가 전혀 잡히지 않기 때문에 미리 심카드를 구입해 오던지,
아니면 나처럼 공항 입국장에서 심카드를 구입해야 해야만 그랩을 구하는 등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구글맵이라도 사용하려면 베트남 심카드의 사용은 필수였다.
나는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로서,
태어나서 한번도 로밍을 사용해 본적이 없었다.
흡연구역은 입국장을 나와서 바로 길을 하나만 건너면 있었다.
공항 바로 정면에 있는 주차장과 입국장 사이의 도로와 도로 가운데 흡연구역이 마련되어있었다.
입국장을 나오면 약간 오른편의 길건너로 바로 보였다.
짧은 거리였는데, 담배를 피러가는 내내 택시기사 들이 따라 붙어 호객행위를 했다.
담배를 피는 동안 쉴 새 없이 아이디 카드를 보여주면서 자기는 그랩 기사다. 어디까지 가냐, 자꾸 호객질을 해댔다.
쏘리쏘리를 외쳐댔지만, 자꾸 귀찮게 했다.
택시가 필요하긴 했지만, 호객 택시는 절반이 사기라는 “베트남 택시” 구글링의 조언에 따라 모든 호객을 쌩까고 그랩 어플(grab)을 깔았다.
그랩은 처음이라 앱스토에서 다운부터 받고,
회원가입에, 신용카드 정보 입력까지 지리한 시간이 꽤나 오래걸렸다.
그랩은 우버와 같은 종류의 차량공유어플인데,
택시기사가 아닌 차량을 소유한 일반인들이 택시처럼 등록을 하고 택시보다 저렴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어플로서,
카풀어플 혹은 간단하게 택시어플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버와 그랩이 양분하던 베트남 택시어플은 현재 그랩이 우버를 잡아먹었고,
우버는 사실상 베트남에서 철수한 모양새였다.
또한 그랩 조차도 원체 저렴한 현지 택시에 비해 큰 메리트가 없는 상황이었고,
극성스런 현지 택시 운전사들의 위세의 밀려,
현재는 택시어플 보다는 그냥 현지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해진 수준이라고 했다.
그래도 택시를 타면서 눈탱이 안맞게 미리 가격을 확인하고, 또 평점 높은 운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그랩의 매력은 분명 있어 보였다.
베트남의 사기택시야 이제는 거의 시그니처가 아닌가.
그랩 어플을 다운 받고, 회원가입에 카드결재까지 얼타고 있는데,
웬 한국형님이 담배나 하나 달라며 들러붙었다.
나보다 서너살이 많은 형이었는데,
한국에서 PC방 사장님이란다.
사장이고, 지랄이고 담배를 삥뜯어 가는 모습은 일단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한국 인심에 담배 한가치를 기부했다.
나만큼이나 이 형님도 대책이 없는 분이셨는데,
나는 그나마 이틀간의 숙소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왔지만,
이 형님은 밤 열두시가 넘은 그때까지도 숙소를 어디로 할지 모르겠단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호안끼엠이라는 하노이에서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작은 호수 근처였는데,
이곳에서 적당히 주무시기를 추천 드렸다.
물에 빠진 놈 건져놨더니,
이제는 택시를 같이 타잖다.
오고가는 노가리와 가기는 했는데 오지 않는 담배 속에서 택시비 엔빵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랩 택시비는 비록 한화 2만원 수준의 돈이었지만,
돈도 아끼고, 같이 다니면 눈탱이 맞을 일도 적겠다 싶어 동의 했다.
처음 이용해보는 그랩 덕분에 우리는 줄담배를 피고나서야 겨우 그랩에 탈수 있었다.
그랩 비용은 엔빵하고, 일단은 내 숙소로 가서 내리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하면 우린 각자의 살길을 찾아 가기로 했다.
도착한 그랩의 차량은 모닝이었다.
대한민국 현기차의 경차, 그 모닝이었는데,
하노에서는 엄청나게 자주 모닝을 만날 수 있었고,
특히나 그랩을 잡을 때는 십중 팔구가 모닝이었다.
대한민국 만세였다.
그랩 기사님은 영어를 전혀 못하셨고,
그랩을 신청할 때 목적지를 명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헤매시는 통에 구글 네비까지 켜서 보여드리고서야 겨우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PC방 사장형은 택시에서 내려 다시 나의 소중한 면세 던힐 한가치를 삥뜯어 가셨고,
함께 담배를 노나 피면서 끝 인사를 나눴다.
그 형님은 인근의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가실거라고 했는데,
닭장 형식의 이들 숙소는 침대 하나랑 1박에 한화 6,7천원 수준이라고 했다.
인사를 드리고 숙소로 들어갔다.
내가 예약한 곳은 헬리오스 레전드라는 호텔이었는데,
3성급 호텔로서 우리나라 모텔수준이었지만 가격은 2만원 정도로 꽤나 저렴한 편이었다.
특히 호안끼엠에 가까이 있어 그 위치가 예술이었다.
하노이에서의 여행은 호안끼엠에서 시작해서 호안끼엠에서 끝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늦은 비행편으로 체크인이 늦을 거라고, 미리 메일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1시가 다된 그때에는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약간의 연착과 그랩을 잡기 위해 늘어진 시간 탓에 체크인 시간이 더 지연된 탓이었다.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신차오 ~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
몇 번 문을 두드리자,
중국집 왕서방처럼 생긴 아저씨가 문을 열어줬다.
영업용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은 많이 피곤해 보였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옆에 문지기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의자를 붙여 놓고 자고 있어, 문을 두드린 것이 더 미안했다.
왕서방은 영어를 꽤나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여권을 건내고 50만동 정도의 보증금(deposit)도 내고, 방 열쇠를 받았다.
307호였다.
흡연실을 달라고 했는데 없단다.
대신 복도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된단다.
한국과 베트남의 시차는 1시간 정도로 큰 의미가 없었지만,
짧지 않은 비행으로 인해 꽤나 피곤한 상태였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일찍 자야했다.
커다란 백팩을 부리고 씻으려는데, 침대가 두개였다.
나는 홀로여행자로서, 이미 온라인 예약시에 더블베드를 요청했었는데,
1인용 작은 침대가 두 개 떨어져서 있었다.
로비로 내려가서 더블베트룸으로 방 교체를 요구했더니 왕서방은 귀찮은 표정으로 내일 바꿔준다고 그냥 자란다.
승질 같으면 지랄지랄이라도 해야겠는데,
미리 말했던 시간보다 늦게 체크인을 한 대다가 단잠에 빠진 왕서방을 깨워버린 죄인으로서 더 이상 항거하지 못하고 수긍했다.
복도에서 담배를 하나 다시 피우는데,
갑자기 헤어진 PC방 사장형이 떠올랐다.
어차피 침대가 두 개인데,
하나 정도는 빌려줘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 형님도 혼자서 이 밤중에 방구하러 다니려면 피곤할 것도 같고 해서,
특유의 오지랖이 발동됐다.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저 어쩌다보니 투베드룸을 잡아버려서요. 괜찮으시면 여기 하루 쓰시죠.
그 형님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바로 오신단다.
이렇게 통화를 하고 나서, 양쪽 침대에 널부러 놓은 짐을 다시 한쪽으로 잘 단도리하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쌩판 남을, 방으로 들일 생각을 하니까 또 쫄보기질이 발동됐다.
그래도 행색이 멀쩡하고,
이야기도 좀 통하는 통에 오지랖을 떨긴 했는데,
그 형님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없는 사이일뿐 아니라,
막말로 새벽에 내 가방이라도 들고 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지갑을 잘 단도리치고,
가방의 지퍼도 잘 닫았다.
잠시 후 그 형님이 들어왔다.
들어와서 하는 이야기가 핸드폰을 쓰리 당했단다.
나랑 통화를 하고 내 호텔로 오는 도중에 오토바이가 자꾸 따라오길래 거슬렸지만,
그러다 말겠지, 장난치는 거겠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오토바이를 탄 채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소매치기해서 그대로 날랐단다.
다행이 예비용으로 후진 핸드폰을 하나 더 가지고는 왔는데,
할부도 아직 안 끝난 새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며 죽을상을 지었다.
내가 안당한게 천만다행이었고,
그 형님에 대한 동정심 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나는 이미 잘 채비를 갖추었고, 그 형님은 씻고 나와 옆 침대에서 주무셨다.
그 형님도 피곤하셨는지,
별로 뒤척이는 기색도 없이 잠드셨다.
평화로운 백수생활로 인해 한국에서의 취침시간은 서너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비행이 좀 피곤하긴 했는지, 익숙치 않은 짐자리였음에도 잠이 솔솔 왔다.
미프와 위챗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하노이에 잘 도착했고,
이제 호텔에 와서 자려고 한다.
니가 아직 원한다면, 나는 니가 나의 여행의 일부를 함께 해주길 원한다.
늦은 시간이라 답은 오지 않았고,
나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하노이에서의 첫날이,
택시타고 와서 잠만 자다 끝났다.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싼 밤비행기보다는 비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게 더 이득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