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국립공원 가는 길(1)
여행 닷새째. 그러나 미국 시간으로는 아직도 나흘째.
오늘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기로 한 날이다.
가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위치하고 있는데 높이가 무려 4,000~6,0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와 세쿼이아 삼림이 울창한 곳이란다. 산이 높은 만큼 계곡이 깊다. 산과 계곡이 빚어내는 광대한 산악 공원이 바로 요세미티다. 1984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단다. 산이 광대해서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충분히 즐기려면 일주일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한나절 일정으로 그곳을 가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요세미티 입구 어디쯤에서 그래도 요세미티를 다 둘러본 흉내를 낼 참이다.
날씨는 여전히 엄청난 폭염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쌀쌀함을 느낄 정도였다는데 갑작스레 기온이 올랐단다. 그러나 우린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새로운 곳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최고조에 달해 있으니까. 우리를 위해 아들 내외는 피곤을 감추고 먼 길을 마다않는다. 그런 아들 내외가 참으로 고맙다. 그렇게 생각하니 효도 한 번 제대로 받는구나 싶기도 했다.
오클랜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오르자 차량들이 가득했다. 이 길을 동으로 네 시간을 달려야한단다. 네 시간이면 대체로 서울서 대구를 가기만한 거리가 아닌가. 그런데도 미국 지도에는 그저 서부 한 귀퉁이다. 참으로 넓은 나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고속도로의 오른쪽과 왼쪽은 풍경이 서로 달랐다. 왼쪽은 온통 목초지였다. 목장들이 길게 이어져 있는 모양이나 고속도로변의 키 큰 나무들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었다. 간간히 그 나무들 틈새로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로 집들이 더러 보이는데 아마도 그런 집들이 목축을 하는 집들인 모양이었다. 온통 산은 나무라고는 없는 민둥산 모양이었는데 그 민둥산이 누런빛으로 가득했다. 충청도 아들네 집을 가다보면 서산 근처를 지날 때면 고속도로 양쪽이 온통 누런빛을 띈 목초지를 만난다. 이곳이 꼭 그랬다. 이곳의 목초지는 희한하게도 한 여름임에도 온통 누런빛이었다. 아예 목초가 초록빛이 아니라 누런빛인 모양이라고 짐짓 짐작을 해본다. 그러다보니 마치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목초지는 끝도 없었다. 반면에 오른쪽은 푸르름이 가득한 평원과 산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푸른 평원과 목초지가 함께 있어 묘한 대조를 이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보니 목초지는 끝이 나고 싱그러운 초록빛 농작물이 평원에 가득 펼쳐진 농촌이 나타났다. 넓은 땅 덕분에 집들은 목초지나 농촌이나 어딜 가나 숲속에 숨어있는 듯 했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차양을 내려 강한 햇살을 피해보지만 온전히 가려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요세미티를 간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햇살쯤은 당연시하며 짐짓 태연한 척 했다. 고속도로 주변은 어수선해 보였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드 레일로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안에 있으면서도 별개의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어쩌자고 가드 레일도 그저 듬성듬성 설치되 있었고 도로 포장도 한 지가 한참이 된 듯했다. 고속도로는 여기저기 흠이 나 있었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차는 몸을 뒤척였다.
이곳은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도로 사정은 오히려 우리보다 못한 것 같았다. 혹시 정책을 집행하는 관리들은 모두 비행기로 오가며 공무를 수행하는 탓에 고속도로 사정을 잘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벌써 며칠을 쉬지 않고 운전을 한 탓에 자동차 기름이 바닥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아들은 자동차의 기름을 넣어야 한다며 고속도를 벗어났다. 고속도로에서 주유를 하면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을 일이지 왜 고속도로를 나가는지? 미국에는 고소도로 변에 우리와 같은 형태의 휴게소가 따로 없단다. 그러니 휘발유를 넣으려면 고속도로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야 한단다. 도무지 이놈의 나라는 내 상식과는 궁합이 전혀 맞지 않는다.
마을 입구쯤에 이르자 주유소는 물론이고 마트며 커피숍과 식당들이 모여 있었다. 마을과 고속도로 통행자들이 이런 시설을 공유하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마트들은 우리처럼 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형마트 위주로 마을 외곽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마트들을 고속도로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마을과 고속도로 통행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충분히 실리적임이 분명해 보였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따로 없음으로써 고속도로 주변 마을의 상권에 도움이 되고 고속도로 휴게소를 둘러싼 이권이라는 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따로 없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통행료가 없으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을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고속도로를 드나드는 차량을 구분할 필요가 없으니 기왕이면 휴게소를 마을과 고속도로가 공유한다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는 마을에서도 소매상 중심으로 울 집 옆에서 생필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구조가 정착이 되어 있다. 우리는 뭐든 코앞에 가져다 놓아야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는 양반의 기질을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개 같이 벌어도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도 아마 그런 것에서 연유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