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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미국을 엿보다(14) /샌프란시스코의 도심 속 작은 공원
게시물ID : travel_273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막인생
추천 : 1
조회수 : 62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3/07 22: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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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샌프란시스코의 도심 속 작은 공원, 알라모 스퀘어
 

마지막으로 알라모 스퀘어라는 작은 공원을 찾았다. 알라모 스퀘어는 공원과 공원 일대 거주 지역을 지칭한다. 더러는 공원 서쪽 일대에 위치한 주민 거주 지역을 지칭하기도 한다. 어떻든 공원과 그 주변 지역이 된다.
수령이 오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목을 잔뜩 빼고 있었다. 해질녘이 되자 그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쉬임없이 불어왔다. 날씨는 다시 어제 오후 날씨를 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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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한쪽에 외관이 비슷해 보이는 주책이 일곱 채 나란히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향해 연실 스마트폰을 눌러댔다. 파스텔 색채의 빅토리아 양식 가옥인데 이국적 풍광으로 유명하단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랜드 마크 같은 곳이기도 하단다.
이들 주택은 개인 소유이기는 하지만 시에서 관리를 하며,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 북경을 여행했을 때 정승이 난 집이라고 하여 마치 민속촌처럼 관리되는 한 주택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곳은 도심 한 가운데의 주택 밀집지역에 있었고 주인도 여전히 있었으나 그 집 역시 북경시에서 관리를 하며 집을 판매하지 못 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었다. 집 주인은 시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생활을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집 덕분에 평생을 무위도식해도 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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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엔 바람이 가득했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여기저기에 무궁화가 심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우리나라에서도 별로 보이지 않는 무궁화가 이곳 공원 여기저기에서 손질도 받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피어있었다. 그 때문에 별로 볼 폼은 없었지만 이국땅에서 그나마 무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계절별로 온갖 꽃 축제가 다 열리는 우리나라지만 무궁화 축제는 들어보지 못했다. 왜 그런지, 무궁화 축제를 하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인지. 나는 한 달 전쯤에 이런 내용의 토론 자료를 모신문사 토론방에 올렸었다. 일본은 벚꽃 축제가 있고 영국에서는 장미 축제가 있고, 네덜란드에선 튤립 축제가 있다면 우리에겐 무궁화 축제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과거에는 학교 운동장에는 어김없이 무궁화가 자라고 있었는데 요즈음은 모두가 자취를 감춘 듯했다. 이러다 무궁화가 기린이나 용처럼 상상 속의 꽃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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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를 자동차로 돌아다보니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했다. 대부분의 도로가 일방통행로였다. 우리는 아주 복잡한 시장 같은 곳이 아니면 일방통행로는 거의 없는데 이곳은 그 반대였다. 웬만한 곳은 모두 일방통행로로 보였다. 복잡한 도로 교통을 해소하는 매우 합리적인 방법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하나 우리처럼 이곳이 초행인 경우 가까운 곳에 목적지를 두고서도 멀리 돌아가야 함으로 다소 번거로울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자동차가 모두 도로의 한 방향으로만 운행되므로 차량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도 한 방향에만 신경을 쓰면 될 것이고, 운전자 역시 한쪽만 신경을 쓰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왜 안 될까? 수년전 인천에서 아주 복잡한 도로에 일방통행로를 적용한다는 예고가 있었다. 그곳 주민들 특히, 상가 주인들은 결사코 반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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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에 지장을 받는 아주 고약한 제도라는 것이다. 왜 생계에 지장을 받는다고 했을까? 양방향이 아니면 결국 자동차는 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인데 그 경우 일차선에 해단하는 길 반대편 상점은 고객이 들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없으니 아무래도 고객이 줄어들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타당성이 있는 주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우리는 새로운 제도에 대해서는 우선 반대를 하고 본다. 해보지 않은 제도이므로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위험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공적인 일을 위해 사적인 부분을 포기하거나 헌신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건 남의 일이거나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해와 용서는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야말로 논리의 이중성이고 합리의 교묘한 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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