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어부들의 쉼터, 피셔맨스 워프
수많은 사람들을 따라 부두를 걷다보니 제법 호객하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 나타났고 그곳은 다른 곳보다 다소 널직한 광장과 그 주변으로 상점들이 즐비했는데 그 입구에 그곳을 알리는 원형의 상징물이 서 있었다.
<Fisherman‘s wharf of San Francisco>
짧은 영어로 직역을 하면 <샌프란시스코 어부들의 부두>라는 말이다.
이곳엔 이탈리아 어부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바다로 조업을 나갔다가 들어오면 고기잡이로 겹겹이 쌓인 피곤을 씻을 겸 목을 축일 겸 해서 들르던 말하자면 선술집 같은 곳이었다. 선술집 마다 질펀한 영웅담과 바다 사나이들만의 정열이 가득했었다. 더러는 여인네들의 헤픈 웃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선술집은 바다에 배가 늘어나면서 점차 확대되어갔고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명소가 된 것일 게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된 탓에 부두는 풍물 시장처럼 갖가지 음식을 파는 상점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피셔맨스 워프는 부두를 따라 갈게 이어져 있는데 어느 한 곳에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타고 온 버스가 서너 대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인솔자인 듯한 사람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배를 타기 위한 것인 듯 했다. 샌프란시스코 만 한 가운데 있는 알카트라즈 섬으로 가는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인솔자를 둘러선 그들을 보자 그들 속에 나와 집사람이 겹쳐보였다. 그렇게 늘 그들 속에서 여행을 하다가 그들과 떨어져서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즐거웠다. 통제를 벗어난 즐거움 같은 것.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으로 단순한 것 같다.
사람이 빼곡한 거리에는 거리 공연을 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저 2~30m 정도를 사이에 두고 있는 듯 했다. 그 중 내 관심을 자극한 곳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곳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혼자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도 유독 그가 눈에 띈 것은 연주하는 악기가 다양하다는 것 때문이고 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 악기들 중 그가 짊어진 북 때문이었다.
내 어린 시절에는 뭐 하나 변변한 것이 없던 시절인지라 여자들은 화장품 하나 없이 그저 맨 얼굴들이었다. 그런 시골 여자들을 노리고 화장용 얼굴 크림을 파는 장사꾼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 때 장사꾼들은 그저 크림만 가지고 다닌 것이 아니라 호객용으로 등에는 북을 지고 때로 하모니카를 불기도 했다. 거기에 구성진 노랫가락까지 얹어지면 동네 여인네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그때는 크림이라는 말보다 <구리무>라는 말로 통했고 등에 짊어진 북을 동동 울린다고 해서 <동동 구리무 장수>라고 불렀다. 그가 마을로 들어서면 동네 꼬맹이들이 먼저 알고는 소리쳐 댔다.
“야, 동동 구리무다. 동동 구리무 온다.”
아마 기억엔 없지만 나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장사꾼이 온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으니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동 구리무> 장사만 오면 쪼르르 달려가 사람들이 둘러선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오늘 이곳에서 바로 그런 유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연주자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한동안 그 사람을 쳐다보며 발길을 놓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그는 기타 연주 솜씨도 수준급이었는데 노래 또한 그러한 것 같았다. 목에 걸쳐놓은 하모니카는 노래 사이에 연신 구성진 음을 토해내었고 등에 짊어진 북은 절묘하게 음을 놓치지 않고 두들겨대어 전체적으로 여러 사람이 연주를 하며 노래하는 것처럼 매우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예전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동동 구리무> 장사는 신명이 나면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면서 발길질을 했고 그때마다 북은 요란하게 울어댔다. 집집마다 얼굴을 빼꼼이 내밀다가 결국은 사립문 바깥으로 발걸음을 하게 되고, 마침내 순이 네도 영이네도 ‘구리무’ 한통씩을 사들고 갔다.
지금은 그 대신 연주자들 앞에 놓은 통에 이 사람 저 사람이 1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씩 두고 갔다. 우리는 그곳을 지나는 동안 흑인의 멋진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신명나는 팝 음악도 들을 수 있었고, 구성진 색소폰 소리며,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할 수도 있었다. 비누 방울이 어지럽게 날려 동심을 자극하는 이도 있었고 풍선으로 연인들의 시선을 끄는 이도 있었다. 그들 사이로는 온갖 기념품이며 간단한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온갖 인종들이 들끓어 마치 전 세계의 모든 인종이 모인 듯 했다. 어떤 이들은 인파 속에 휩쓸리고 어떤 이들은 긴 나무 의자에 앉아서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부둣가는 활기로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