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긴 엄청난 서사시이고, 다 읽으면 아마 어이가 없으실테니 음슴체로 갈게요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집이었던 집은, 엄마가 나고 자란 집.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외가였음.
부모님도 처음 결혼하시고 나선 서울에 집을 얻어서 살다가 아버지 건강이 안좋아져서 서울을 떠날 수 밖에 없었음
작성자의 누나 셋은 출생지가 서울인데 작성자만 시골출생.. 신기한건 울 엄니 주민번호랑 내 주민번호 뒷자리가 성별코드만 빼고 똑같다는거!
아무튼 이게 중요한 건 아닌데..
그 때 외할아버지께서 그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자 하셨고, 엄청 오래된 집이라 아버지가 손수 욕실도 새로 만들고 보일러도 깔아서
살만한 집으로 만들어 3대를 아우르는 대가족이 한 집에서 살게 됨.
작성자에겐 법을 공부한 외삼촌이 있었음.
외할아버지께서 법적인 유언 없이 돌아가시자 서울에서 잘먹고 잘사는 그는 잽싸게 집과 대지를 포함해 논, 밭 임야를 자기 앞으로 등기냄.
그때부터 우리집은 과장 조금 보태서 '집없는 소작농' 이 됨.
일년 내내 죽어라 농사지으면 외삼촌은 땅주인이라는 명목으로 채소도 뜯어가고 돈도 세금식으로 가져감.
그리고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외삼촌은 둘러 말해서 우리 가족이 그 집에서 나갔으면 싶다는 식으로 말하기 시작.
당시 누나들 학비에 아버지 건강 문제로 당시 집을 사서 이사를 갈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안나감.
그 후로 엄니께서 법률상담소를 찾아다니며 전후사정을 이야기하고 자문을 받았으나 무슨 '특조법' 으로 등기낸거라 별 방법이 없다는 결론.
어렸던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해가 안됐지만,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상황은 트라우마로 박힐 정도로 충격적이었음
그러다 외삼촌이 당뇨로 돌아가심. 아니, 죽음.
외숙모가 정말 어맹뿌 판박이인데.. 하는짓도 똑같았음.
외삼촌 앞으로 등기냈으니 이젠 자기것이라며 우리 가족보고 나가라고 함.
잊을만 하면 우리가 살던 그 집에 와서 며칠씩 자고가면서 소위 말하는 '알박기' 를 시전하고 감.
진짜 역겨웠던 사건은, 누나가 시집을 가서 집에 일가친척들이 모여(주로 친가쪽 식구들) 잔치 분위기였는데
이 외숙모라는 것은 결혼식 보러 내려온김에 집에서 김장을 해가겠다며 또 며칠씩 우리밭에서 배추 뜯어다가 김장해서 가져감.
그래도 우리는 나갈수 없었음. 좋든 싫든 엄니가 나고 자란 집이고 동네라 엄니께서는 이사를 가도 주변으로 가길 원하셨는데
(그 때문에 부모님이 항상 싸우셨음)
신기하게도 내놓은 집이 있어서 가면 꼭 어떤 이유에서든 허탕을 치고 돌아왔음.
예를들면 동네사람들 몇명이 짜고 집을 비싸게 팔아먹으려다 계약 전날 탄로나기도 하고,
자기 명의로 되어있는줄 알고 팔려던 땅이 수십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 명의인데 형제들 중 한명이 매매에 동의를 안해서 못사기도 하고...
급기야 외숙모는 이제 자기 이삿짐을 다 가져다 이 집에 놓고 살거니까 나가든 말든 알아서 하라며 최후통첩을 보내옴.
이 시점이 바로 작성자가 대학교 졸업하고 집에 내려온, 작년.
외숙모가 이삿짐을 옮겨온다는 시한은 10월이었음.
아버지는 나날이 술로 지내며 엄니와 항상 싸웠고,
엄니는 불면증과 편두통에 시달리고 작성자는 작성자대로 술 없이는 못자는 제대로 된 파이널 스테이지를 맞이하였음.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이리저리 수소문하다 결국 9월쯤. 지금 이사온 집을 계약할 수 있었음.
거의 30년을 이사한번 안다니며 시즈모드로 살았던 데다가, 대부분 농촌의 집이 그러하듯 이삿짐의 양은 실로 엄청났음.
그래도 동네 아저씨들이 '핍보이네 이사하면 당연히 우리가 가야지!' 하고 팔걷어부치고 나서서
1톤트럭이 일곱 대에, 열 다섯분이 모여서 그날 하루동안 큰 짐은 싹 다 옮겨주셨음.
그런데 외숙모가, 우리 부모님이 내려와서 살기 전으로 집을 돌려놓고 가라는 거임.
야외에 농자재나 연장도 많고, 작성자 어릴 적에 돼지 축사로 썼던 철제 구조물을 없애고 나가라는거.
마음같아선 보일러도 다 떼버리고 옛것 그대로만 남겨놓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만류하셨음.
치우고 옮기는 작업을 이사한 후 1주일이나 했음.
결국 외숙모의 이삿짐이 집에 도착하는 날까지 하게 되었는데, 엄니나 나나 그 어맹뿌같이 생긴 면상 쳐다도 보기 싫어서
미친듯이 뛰면서 밥도 거르고 치웠지만 결국 이삿짐 차가 들어오고 짐을 내리기 시작할 때 끝낼 수 있었음..
이제 집안일 큰거 하나 끝냈구나. 하고, 떠날 집을 보면서 담배하나 맛있게 피우고 후련하게 새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집 안으로 짐을 옮겨 들어가는 걸 보니, 이제 여긴 우리집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절절히 끓으면서 갑자기 어릴때부터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침.
다 큰 남자가 엄니 앞에서 엉엉 울었음.
그때의 나는 바지에 오줌을 싸서 대문밖으로 쫓겨난 일곱살이었고,
집 앞 비탈길에서 눈썰매를 타던 초딩이었고,
아침에 버스를 놓칠까 뛰어나가던 중학생이었고,
휴가때마다 집에 와서 컴퓨터만 하면서 놀다 복귀한 군인이었고,
방학때 내려와 농사를 돕던 대학생이었음.
나는 울었음.
대학도 졸업해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눈물로 씼어낼 수 밖에 없었음에 너무 서러워서..
자게에 한 차례 올렸었지만, 멘붕게가 더 적합할 것 같아서 다시 올립니다.
이런 일을 겪고 글을 쓴 저조차도 가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전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