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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슬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괴물 - 보시기를 추천!!!!!
게시물ID : docu_27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얼레리
추천 : 30
조회수 : 2950회
댓글수 : 28개
등록시간 : 2014/06/25 23:32:54

 시간되시면
꼭 보시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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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젊은 회장 이금열
한눈에 봐도 조직의 수장임을 알아볼 만큼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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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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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김일성이라 부를 정도
독불장군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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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귀에 거슬리는 것은 모두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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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마디 중 7마디는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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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건설밥을 먹은 사람들도
뒤흔들 정도의 독보적인 사업방식


그의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한 분야는
재개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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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공화국이었던 1990년대부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막대한 성공을 거둔
40대 젊은 회장

그의 성공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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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남해의 작은 섬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금열

그의 부모 역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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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를 졸업 후
돈을 벌기위해 고향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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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청소, 건물청소...
 밥을 굶은 적도 있다고...
(지인들이 이금열로부터 들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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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지인의 소개로 건설회사로 들어가
비서로 일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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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이루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28살의 어린 나이에 대표이사로 취임

그 후 15년만에 1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40대 젊은 회장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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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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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평가하는 마을 사람들

불의를 보면 못참는다고... 말씀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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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는 체육관이
동네에는 마을회관이 들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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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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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지역에는 사랑의 밥차를 기증
어렵게 자라 성공한 기업가라는 이미지를
더욱 굳혀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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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 유출 사건에도 밥차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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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기에 성공의 열망이 강했던
이금열 회장

개천에서 용나기 어려운 시절에
마지막 성공 스토리로 회자되는 듯 했는데...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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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공 스토리를 알고 있다는 한 사람...

택시운전기사 김범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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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1998년
국민을 향해 쏘아대었던 물대포

한 달 가까이 고립되어 탈진했던 주민들은
철거용역으로 또 다른 지옥을 경험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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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못할 증언들

( 이분은 끌려 가면서도 정말 처절한 목소리로 증언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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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0일 새벽
망루 아래서 불이 붙은 한 젊은이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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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쏜 화염방사기에 맞은 상황

이 청년은 고립된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가져다 주기 위해 갔던 20대의 청년

기도안은 물론... 심각한 화상을 입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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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물과 음식을 들고 망루로 향했던
이범휘씨는 한무리의 괴한에게 끌려가
무자비한 구타를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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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61살...
60이 넘었던 그에게

 폭력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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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할 힘도 없었던 노인에게
폭행을 가했던 괴한들..

그 용역의 대표가 바로 이금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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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의 나이 28

직접 나서서 주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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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동 사건을 계기로 14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한 철거업체의 범죄에 대한 보고서
 
(적준= 다원건설로 이름이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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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준의 범죄보고서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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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이들을 몰아내야 아파트가 생겼다
1년 365일 따뜻한 온수가 나오고
주차때문에 얼굴 붉힐 일 없으며
24시간 순찰을 도는 경비가 있는

중산층의 꿈

아.파.트


그 아파트를 위해 이들은 철거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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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찬물에 세수해도 좋고
수백개의 계단을 올라가도 좋으니

나와 내 가족이 살 수 있는
방 한 칸 남겨달라고
애원하던 사람들을

두들겨 패서 내쫒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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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도 그 쫒겨 났던 사람들 중의 한 분
사업에 실패한 후 들어간 행당동에서

그는 게으르고 무능력한 주제에
남이 애써 번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떼쟁이가 되었다.

(아직도 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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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으로 일하던 사람들보다
밤낮으로 그들을 패던 사람들이
돈을 더 벌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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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행당동

그 폭력배들을 상대로
집을 지키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여성들이었다.

남자들이 나서면 큰싸움이 날 수 있었으므로...
여성이 대신했으나
적준은 여성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어떻게 했는지 차마 쓸 수가 없네요...
기사 찾아보시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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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게 도와달라고 전화했지만
전화를 딱 끊어버렸다고...

그 상황이 너무 비참하고
없어서 당한 것이
이렇게  서러운 것인가..

억장이 무너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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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이 지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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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무너지고 있다고 전화해도
아무도 안나오고 묵인하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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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속의 단 한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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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당시
행패를 부리던 철거용역 중 하나
이금열...

현장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그의 활약덕에
28 어린나이에 적준을 물려받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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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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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두고
적준용역과 주민들과 벌어진
전쟁아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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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집에도 불을 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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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집에 두고 나온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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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혼자 자고 있던 집에
불을 지른
적준 용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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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질려 주민들이
스스로 집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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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나자
18m높이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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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충격을 못이기고 사망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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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들어선 전농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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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망루에서
불길을 피해 뛰어내렸으나
그를 기다린 건
구급차가 아닌
적준

마구잡이로 구타를 당하셨다.


20년 전에는 목공일을 하셨지만
16년 전 사건으로
전문적인 목공일을 할 수 없게 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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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시달리시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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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악몽을 꾸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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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에도 진두지휘하던 이금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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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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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울먹하면서 겨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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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씨의 아버지
그때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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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으로 수배와 수감을 반복
딸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가장 힘드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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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버지의 편지를
힘들게 한 줄 한 줄....


2년 가까이 천막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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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
그때의 그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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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자라도
그때의 그  상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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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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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이가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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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꼬마가 이렇게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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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도움이 안된다고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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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산 시간동안
함께사는 소중함을 배웠기에
그 어떤 폭력에도
철거되지 않았던
이들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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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지역의 주민들이 고통과 시름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금열은 부와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1998년 다원건설의 대표가 된 후

본격적인 재개발 사업에 뛰어듬

철거용역의 이미지를 벗고
기업가의 이미지를 가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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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식 확장

 건설업체 청구를 인수해
시행 철거 시공을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골프장도 건설

1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젊은 회장이 되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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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웠던 과거를 감추기 위해
화려하게 포장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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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룸살롱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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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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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한명이 검찰에 투서를 내기 시작하면서
검찰의 추적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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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잡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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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도 눈감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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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데리고 있던 직원들에게
강제로 미분양된 청구 아파트를 분양받게 한 후
168억의 담보 대출을 가로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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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분양 사실이 드러나면서
직원들은 아파트 마져 빼앗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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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열의 담당 변호사는 29명
직원들이 죽던 말던
자기 살 길을 열심히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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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을 댄 재개발 사업은 모두 중단
총 9천억원이 넘는 대출금은 공중분해
관련 업체는 모두 어려워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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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축제 88올림픽

한편에서는 빈민 올림픽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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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그 전까지 국가가 주도하던 재개발 사업을

집주인과 건설사 등 민간에게 넘기는
합동 재개발을 발표했다.


이는 서울 재개발의 광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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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은 올림픽이었지만
실제로는
건설회사들에게 일감을 주기위해
85년 86년  재개발을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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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의 싹쓸이... 용역은 판을 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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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철거의 시작은 1960년대

서울 인구의 약 20%가 강제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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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인 신도시로 홍보하며
11만명의 서울 시민을 강제로 이주시켰던
경기도 광주 대단지

그러나 막상가도 할일이 없어
굶어 죽는(?) 상황이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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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개정해서 국가는 슬쩍 뒤로 빠지고
조합에 권한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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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재개발 현장을 휩쓸고 다녔던 철거용역들...




80년이 지나서 나온 철거용역을
지금까지 키워온 것은
악역을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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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구청, 조합, 국가... 들이 하는 일에
용역들이  악역을 대신  맡아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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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의 실제 이득은 지역주민들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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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어서 돈을 낼 수 있는 사람...
가진자들만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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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을 가장한 세력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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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법으로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낸
사회가 더 큰 책임이 있다!!!!!!!!



이러한 이금열의 성공 스토리는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써내려간
시나리오....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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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국민들 의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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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용역업체로 인해 몸을 다치신 할아버지

하루 꼬박 다 일하셔서
2만원... 많이 벌땐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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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는 또 재개발 바람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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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징 )

15년 전

폭행의 주범은
심판대에 올랐지만

그날의 폭력은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더 가지려는 사람들과
더는 뺏기지 않으려는 이들의 싸움에서

더 가진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우리 사회

우리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는 사이

우리 사회가 철거하고 있었던 건

집이 아닌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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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스페셜 -  철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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