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유랑 복귀 둘쨋 날.
횡성으로 가는 중 공장 건물 한켠에 텐트를 쳤는데, 눈을 떠 보니 추위가 온몸을 할퀴는 것이다. 새벽 네 시였다. 싸한 냉기는 감도는 전운과 같이 나를 긴장케 했다. 텐트를 긁어보니 얼어 있었다. 밖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냉기 가득한 텐트 안의 장비들은 습기에 이미 눅눅해 진체다.
침낭을 두 개를 포갰지만, 싸구려 침낭이라 갑자기 떨어진 날씨에 대한 방비가 되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한기가 얼굴을 할퀸다. 12월 영하 십몇도까지 떨어졌을 때 유랑하던 때에 비하면야 견딜만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나 같은 유랑자에게는 이 추위는 가장 끔찍한 적이다.
한 여름 폭염경보가 발령된 지도 모르고 배낭 짊어지고 걷다가 저녁 때에 탈진해서 눈이 돌아가던 때가 있을 정도이지만, 아무리 여름 더위가 힘들다 하지만 추위에 비할 바 못된다. 더위는 그래도 대략 나무 그늘 아래서 피할 수 있지만, 추위는 대기를 샅샅이 휘저으며 피부를 할퀴기 때문 때문이다.
가뜩이나 이렇게 추울 때는 잠이 안이고, 마땅히 피할 곳도 없는 이유로 그 자세 그대로 텐트 안에서 웅크려 떠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끔찍한 형벌을 받는 느낌이다. 몇시간 동안 추위 속의 뒤척거림이 이어지다 보면 온 몸이 냉기로 반죽을 한 듯한 기분이다. 이런 때에는 다만 빨리 아침이 와서 태양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온 몸이 냉기로 할퀴어지는 그 시간은 묵직해지는 머리와 함께 1초 1초 더디게 흐른다. 마치 영원의 저주가 내려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러 이렇게 어려움을 감수하고 유랑 다니며 이 저주의 시간을 굳이 견뎌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스스로의 앎과 삶에 적응해 사는 ‘일상의 저주’를 벗겨내기 위해서는 필히 심신에 채찍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락과 평안은 인간을 나태히 만들고 용기를 좀먹으며, 스스로와 타협하게 만듦므로...
하여간 이러한 인생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가차 없이 전진하는 힘을 세인들은 ‘깡’이라고 표현한다. ㅠ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