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유인 여러분. 매일같이 이곳에 들어와 즐거움을 얻어가던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우선 유머글이 아닌 점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몇 달 전부터 저희 아버지는 대기업을 상대로 홀로 힘든 싸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무척이나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혹시라도 가족에게 짐이 될까봐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혼자 묵묵히 일을 진행하시다가 얼마 전에서야 제게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글로서나마 억울함을 알리는 것이 최선이라 결론지었고, 그 중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실 분들이 많이 계시고 파급력도 큰 오유에 글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약 8년 전부터 섬유가공업에 종사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선 1994년 어느 조그만한 섬유공장에서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열정적으로 일을 해오셨습니다. 당시 회사는 현재 ‘도레이새한(주)’의 전신인 ‘새한(주)’의 부산물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한(주)’과 아버지가 일하시는 회사 사이에 여러 가지 잡다한 비리와 은밀한 거래가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습니다. 몇 년 동안 믿음과 헌신을 다 해오던 직장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비리를 알게 되신 아버지께선 결국 2001년 회사를 그만두게 되셨습니다.
거의 빈손으로 회사를 나오신 후 가족을 위해 새로운 일을 찾으시던 아버지께선 작은 회사를 설립하셨고 나름대로 잘 꾸려오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2007년 어느 날 ‘도레이새한(주)’의 갑작스런 연락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요구인 즉 자신들의 악성재고를 처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지저분한 일 처리방식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완강히 거부하셨습니다. 끈질긴 그들의 요구에 다른 회사들을 소개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막무가내로 아버지를 밀어붙였습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섬유산업의 생리 역시 한 다리 건너면 모두 다 아는 사이라, 결국 아버지께선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었다가는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아셨기에 세 가지 조건을 내거셨습니다.
첫 번째, 한 달 가공할 물량을 보장해줄 것과 계약기간은 최소 5년을 보장해 줄 것. 두 번째, 초기 시설비 조달을 위해선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가 필요하니 이를 위해 임가공계약서를 먼저 만들어 줄 것. 세 번째, 윗사람과의 면담을 통해 위 두 가지 사항을 확정 시켜줄 것.
아쉬운 사람이 손을 내미는 법이라, 처음에 ‘도레이새한(주)’는 알겠다고 하고 면담까지 시켜주었고 2007년 4월부터 공장을 가동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아버지께서 받으신 계약서엔 계약기간이 5년이 아닌 1년으로 씌어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유를 묻자 회사 방침 상 5년 계약은 없고 대신 1년이 지날 때마다 재계약을 하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얼마 후 갑자기 본사 지시라며 아버지께서 시설비 조달을 위해 융자 받았던 통장을 복사해 가더니 약속했던 물량의 일부를 다른 공장에서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머지 물량도 다른 여러 회사들과의 입찰경쟁을 통해 받겠다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려버렸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작은 회사를 설립해 아버지 나름의 방식으로 꾸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압력으로 인해 무리하게 융자까지 받으며 시설을 증비하셨는데 입찰경쟁이라니요. 이 모든 것은 계약서를 받고 공장을 가동 시킨 지 불과 8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입찰을 거부하기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을 갖춘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하청업체였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회사는 이제 막 시설을 갖춘 신생업체였습니다. 입찰에 참여한 다른 회사들은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온지라 임가공 단가에서부터 여러 가지 면으로 경쟁을 하기엔 너무나 불리했지요. '도레이새한(주)'는 그런 아버지를 불러다 놓고 입찰 회사들 중 최저 단가 견적서를 보여주며 '임가공을 계속하고 싶으면 이 가격에 맞춰라'고 통보했습니다.
아버지께선 아버지 한 분만 믿고 일을 시작한 공장 식구들, 어머니와 저를 비롯한 가족들의 얼굴이 어른거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가격에 맞춰 일을 하실 수밖에 없으셨다고도요. 이후에도 한 차례 더 단가를 낮추는 일이 있었습니다. 공장을 하나 더 세울 수는 없었기에 아버지는 이들의 요구대로 따를 수밖에 없으셨구요.
그러던 2010년 12월, 이들은 임가공 해야 할 물량이 많다며 연장근무를 요구했습니다. 타 업체들과도 지속적으로 경쟁을 하던 터라 아버지께서는 시설정비를 위해 값비싼 기계도 교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도레이새한(주)’는 2011년까지만 아버지와 일을 하겠다고 통보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미 2011년 3월부터 아버지가 생산하셔야 할 물량을 다른 회사로부터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서는 명분으로만 존재할 뿐 생산한 물량을 납품할 업체를 잃은 것이지요.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한 아버지께서는 어째서 계약서의 내용대로 이행하지 않느냐, 제대로 된 문서를 제시하고 해명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2011년 12월 30일에 아버지를 찾아와 2012년 3월 31일까지 3개월짜리 계약서를 들고 와선 '이 날까지면 당신이 제시한 대로 5년 계약을 채우는 셈이니 당신 회사에 보내는 문서와 해명은 이걸로 끝내겠다.’고 했습니다. 계약서를 가지고 오면 뭘 합니까. 실질적인 거래가 없는걸요.
아버지 입장에선 그저 참담할 뿐입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들여 시설을 갖추게 해놓곤 입찰경쟁을 붙여 단가를 낮추게 만들고, 계약기간이 다 만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을 다른 업체에 넘겨버리구요. 문서상으로는 그들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상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약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상대로 이렇게 지저분하고 파렴치하게 행동하다니요.
대기업의 횡포라는 것은 남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와 가족들이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참으로 참담합니다. 그나마 면목상의 계약이 끝나고 나면 아버지께 남는 것은 초비 설비투자의 빚뿐입니다.
아버지가 바라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계약기간 중 ‘도레이새한(주)’의 계약 불성실로 인해 생산 및 납품하지 못했던 물량을 납품하는 것. 어차피 저들과 더 할 것도, 볼 일도 없지만 어쨌든 계약기간 만큼은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물량을 납품할 권리가 있으셨으니까요. 다른 의미에서 제가 속상한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하고 재계약을 해서라도 공장을 돌려야 당장 먹고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둘째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이 분야에 대해 아시는 분이 계시거나, 혹은 이런 비슷한 상황에 놓이신 분들이 있으시면 조언을 조금 구하고자 합니다.
여섯줄 요약
1. 대기업이 아버지에게 물건을 납품하라고 강요. 2. 아버지가 물건 납품 조건으로 3가지 사항을 요구. 3. 아버지는 대출을 해서 납품을 위한 설비투자. 4.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던 대기업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불이행. 5.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부터 납품가격과 물량을 마음대로 하더니 계약해지 통보. 6. 아버지에게는 수많은 빚과 아버지만 바라보는 회사 직원과 가족들이 남음.
길고 지루한 이야기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혹시라도 비슷한 일을 겪으셨거나, 혹은 들으신 적이 있으시거나 현안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부디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