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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원이라면 국민 중 많은 사람은 쓰레기다.
게시물ID : sisa_1783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또깔라비
추천 : 4
조회수 : 4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3/14 12:07:08
무한 경쟁의 나라. 대한민국. 1등에서 꼴찌까지 줄을 세워 인간의 가치를 결정짓는 이상한 나라.

아주 이상한 논리. 가진건 인적 '자원' 밖에 없다.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이라는 명목 아래 경쟁을 시키고 줄을 세운다.

넌 1등. 넌 2등. 넌 꼴등. 효율이란 무엇일까. 

당신한테 100 개의 원석이 있다. 

최상급 원석 10개를 골라내고 나머지 90개는 쓰레기통에 박아 버리거나 대충 파는것이 효율적인가.

아니면 가장 쓰임이 적고 불필요한 것 이라도 나름대로 활용하고 다듬는것이 효율적인가.

우리는 전자의 사회다. 1등부터 100등까지 줄을 세우고 10등까지만 쓰고 나머지는 버리는 사회.

90개의 돌중에 사치품의 용도가 아닌 공업용으로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원석도 있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 이다. 그냥 돌이지만 다른 무언가를 위해 쓰일 원석도 있을 것 이다.

10개의 특상품을 가려내는 기준은 오로지 사치품으로 가치가 있는가.(공부를 잘하는가)

이 한가지 기준으로 10개의 뛰어난 원석을 다듬고 나머지 90개를 버리는 이런 자원 운용을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한 경쟁이 효율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단이라는데 의문이 든다.

경쟁만이 인간을 발전시킨다고 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어느 분야나 그 분야에 최고가 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이기기 위해 하지 않는다.

단순노동과 반복 작업은 보상과 경쟁에 의해 강화되지만, 

전문적이고 복잡한 창조적 발상을 요하는 일일수록 보상과 경쟁이 아닌 내적동기에 의해 강화된다.

그리고 내적동기는 보상의 크기와 순위가 아닌 '내가 얼마나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것일까.

나는 효율적인 교육이란 적어도 경쟁만이 답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은 인간을 자원으로 보고 자원 활용의 극대화를 꾀하기 위한 방식에 대한

논쟁 자체가 아주 야만적이고, 저질스러우며 폭력적인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논리다.

가진 것은 '인적 자원' 이라는 전제마저 부정해야 한다.

자원의 가치는 오로지 쏟아부은 자원의 총량보다 거기서 생산되는 가치가 클때만이 의미가 있다. 

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하는 것은 자원이 아니다. 가치 없는 자원이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 생계형 대출이 계속해서 늘어간다고 한다.

생계형 대출은 내가 버는 돈보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돈이 더 많아 빚을 지는 것 이다.

그럼 생계형 대출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마이너스 인간이다.

만들어내는 가치보다 그 자원의 유지를 위한 비용이 더 크니까.

마이너스 인간이다. 가치 없는 자원이다. 필요 없는 인간이다. 

인적 자원이라는 말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가치를 창출해내는 원료로 바라보게 만든다.

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하는 인간은 필요없는 인간이다. 

그럼 대한민국의 국민중 많은 사람들은 필요없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마이너스가 아닌 인간들중에도 +100 인 인간이 있고 +1000인 인간도 있고, +1 인 인간도 있다.

그럼 +100의 가치를 만드는 인간은 훌륭한 사람이고, +1을 만드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일까?

더욱이 그 기준이 돈이라면 , 돈을 많이 벌면 훌륭한 사람, 그렇지 않으면 열등인간이다.

빚지는 인간은 사회에 필요없는 자원. 쓰레기. 잉여일까?

그게 우리가 꿈꾸는 좋은 나라이고, 훌륭한 사람이고, 교육의 목적일까.

월 100만원의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은 1000만원 만드는 사람보다 열등하고,

1000만원 만드는 사람은 1억 만드는 사람보다 열등하다. 

훌륭하고 쓸모있는 자원의 기준점을 어디로 잡아야할까? 천만원? 1억? 10억? 아니면 단돈 1원이라도

남기면 마이너스는 아니니 쓸모있는 인간이라고 봐줘야할까?

우리는 왜 가르치고 배우며, 공동체를 위해 때로 희생하며 살아갈까.

인간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었던 교육은 

어느 순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가려내고 사회를 위해 인간을 기르고 있다.

결국 행복한 세상이라는 우리의 목적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는 어느새 나보다 적게 버는 인간을 열등하다고 비웃고 나보다 우수한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사는

사회에 살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노숙자를 위한 온돌방 마련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자원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는 바로 그런 야만과 폭력이 깃들어있었다.

그말을 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도 따져보면 별로 많이 벌지는 않을텐데,

자기보다 더 적은 가치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그사람들이 죽지는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배려조차

낭비라고 말하는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것 이다. 

그 말이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도 모른다.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넓히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살던 땅을 걷는 것이 아니라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단 한걸음이라도 발걸음을 내디는 것이다.

인적 자원이라는 말을 부정하고 , 

인간을 새로운 가치로 환원하지 않고 인간 그 자체를 가치있게 볼 수 있을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던 땅을 넓히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이다.

언제나 당연하게 여기던 전제위에서 논쟁하지 말고, 

논쟁의 전제자체를 의심하고 부정하고 고민해볼때 

우리는 비로소 어제보다 더 새로운 오늘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쌓이고 모였을 때 우리는 야만과 폭력을 벗어나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사회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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