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추가하려고 뭘 잘못 건드렸더니 글이 복구가 안되더군요.;;; 다시 올렸습니다.;;;
글 내용을 조금 수정 했습니다.
쿠도 슌사쿠 함장이 중좌인줄 알고 있었는데 다시 찾아 보니 소좌였습니다.;;;
아카츠키(暁 여명)급 특3형 구축함 3번함 (혹은 후부키급 특형 구축함 23번함) 이카즈치(천둥) 입니다.
뭔가 굉장히 용맹해 보이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이름값을 하려는듯 꽤나 무훈을 올렸던 배 입니다.
하지만 이 배의 진가는 무훈만이 아닌데...
일본 해군의 승리로 끝난 자바 해전 이후, 이카즈치는 격전이 있었던 해역을 항해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견시수가 황급히 보고 하길...
"전방에 부유물 다수!"
당시는 왕립 해군과 미 해군의 잠수함 공격에 상당한 피해가 나오던 시점이라 함장 쿠도 슌사쿠 소좌는 대잠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당부와 함께 부유물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배를 움직였습니다. (그 해역이 워낙에 위험한 해역이라 총원이 전투 배치에 임한 상태로 접근 했다고 합니다.)
부유물로 점점 접근하던 중 다시한번 견시수가 보고 하길...
"부유물의 정체는 표류중인 적병! 수는 수백 가량으로 추정!"
전날 격참당한 왕립 해군의 구축함 HMS 엔카운터와 미 해군 구축함 USS 포프의 승조원들이 표류중이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전쟁이 한창인 때였고, 연합군 추축국 할것 없이 상대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카즈치의 승조원들 사이에서도 "쏴 죽여 버리겠다!" 라거나 "바보야. 탄 낭비 하지 마라. 그냥 둬도 알아서 죽는다." 면서 증오 섞인 반응이 나왔다는데...
함장인 쿠도 소좌가 입을 열었습니다.
"대잠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고, 본함은 지금부터 적 패잔병의 구조 작업에 들어간다."
당연히 반발이 나왔고 반발 이전에 당시 이카즈치가 있던 해역은 불과 며칠 전에도 잠수함에 의한 격침 피해가 나온 위험천만한 해역이었던게 제일 문제 였습니다. (실제로 이카즈치도 이 일이 있기 1개월 전 미 해군의 잠수함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함장의 명령을 따르기로 한 수병들이 구조 작업을 시작 하자 손이 비어 있는 다른 수병들도 구조를 시작 했고, 연합군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기력이 떨어진 인원의 구출을 우선적으로 요청하며 구조작업이 진행 되었습니다만...
자매함이자 아카츠키급 특3형 구축함 4번함 (혹은 후부키급 특형 구축함 24번함)인 이나즈마(번개)가 거드는 상황에서도 연합군 패잔병들의 체력은 빠르게 소진 되어 갔고, 이에 쿠도 소좌가 내린 명령이...
"1번 포를 제외한 총원, 즉시 구조 작업에 임하라."
정말로 최소한의 경계만을 놔 두고 구조작업에 함의 모든 역량을 부어 버리는 대담한 명령을 내린겁니다.
이때의 구조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체력이 다해 가라앉아가는 연합군을 구하기 위해 일본 해군의 수병이 냅다 바다에 뛰어들어 건저 올리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연합군 장병 422명을 구출하는데 성공 했고, 탈수증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쓸 식수와 식량까지 나눠 줘 가며 간호 하면서 사령부의 복귀 명령을 시원하게 씹었습니다. 즉 항명을 때려 버린것.(...)
항명까지 하고 뭘 하러 갔냐 하니...네덜란드 소속의 병원선을 발견하여 422명 전원을 인도 했다고 합니다.
이 영웅적인 행동은 전후 수십년이 지난 2003년에야 밝혀졌는데, 쿠도 소좌가 함장 임기를 끝내고 전출 간 뒤 미 해군의 잠수함 USS 하더에 의해 이카즈치가 침몰하고 승조원 대부분이 전사 한데다 쿠도 소좌 자신이 그 일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당시 중장이었던 나구모 주이치 제독이 쿠도 소좌의 중학교 선배였는데, 나구모 제독은 연합군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는 분위기 속에 행여 쿠도 소좌가 비국민 취급을 받아 매장 당할것을 염려해 보고를 받고는 이 일을 함구시켰다는군요.
이 일이 밝혀진 계기는 전후 수십년이 지나 쿠도 소좌에 의해 목숨을 건진 왕립 해군 장교들이 방일하여 그때의 일을 증언하며 쿠도 소좌의 행방을 수소문 하면서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헌신적으로 구해 준 쿠도 소좌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 했지만 쿠도 소좌는 이미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고...1979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구한 의인이 잊혀지는걸 원치 않았던 왕립 해군 장교들은 일본의 방송국들과 인터뷰를 하는가 하면 다큐멘터리의 제작에도 열정적으로 임했으며 영국에 돌아가서도 저술활동을 통해 쿠도 소좌를 알렸고,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결국 그때 생존한 장병들중 일부가 주일 영국 대사와 함께 쿠도 소좌의 묘소에 참배를 갔다고 합니다.
저는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할 군함이 있다면 한것도 없는 야마토가 아니라 바로 이 이카즈치, 이나즈마야 말로 그들이 자랑스러워 해야 할 배라고 생각 합니다.
적 앞에서 당당히 싸우고 패자에게는 구원의 손을 내 밀며, 그야말로 천둥번개같은 함생을 살아간 이 두척의 구축함은 당시 일본군에게 가장 필요했던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배가 아닐까 합니다.
덤1.
USS 하더의 엠블렘.
이카즈치는 1944년 4월 13일 괌에서 미 해군의 구축함 킬러로 유명한 가토급 잠수함 46번함(...) USS 하더의 뇌격으로 격침됩니다.
생존자는 거의 없었으며 하더의 함장은 "4발의 어뢰와 한척의 쪽발이 구축함을 소비했다." 라고 차갑게 보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그 사뮤엘 D. 딜레이 함장 역시 약 4개월 후 마닐라 곶에서 하더와 운명을 함께 하며 전사 했습니다...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전쟁...
덤2. 쿠도 소좌는 무사도를 매우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있어 선임병이 후임을 두들겨 패는 문화는 몹시 야만적이고 혐오스럽게 보였다고 합니다.
이카즈치의 함장으로 취임 한 후 구타, 가혹행위 추방에 적극적으로 나선 덕에 그의 취임 이후 이카즈치에서는 단 한건의 구타 가혹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는군요.
덤3. 쿠도 소좌는 185Cm 가량 되는 키에 90Kg 정도의 체중을 자랑하는 근육돼지(...)였다고 합니다. 제 키가 169인데 저보다 훨씬 큽니다.-_-;;;
딱 봐도 장난 아닌 풍채 입니다.(...)
요새야 다들 키가 워낙 크니 180이면 좀 크네 수준이지만 당시 미군 평균 신장이 160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거인이었던 겁니다 이 아저씨.-_-
솔직히 그런 사람이 근육근육한 몸을 자랑하며 "야, 애들 패지 마라. 알았냐?" 하면 맞아죽기 싫어서라도 말 들을듯.(...)
덤4. 당시 연합군 장병들은 멀리서 배가 와서 열심히 불렀더니 일본군 구축함이라 "이거 기총 소사 한방이면 우리 다들 용궁 가는거 아니냐?" 하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카즈치에서 구조 작업중임을 알리는 국제 신호기가 올라가더니 일본 해군 수병들이 줄사다리를 던져주며 구조 작업을 하는걸 보고 "읭?" 했다는군요.(...)
덤5. 이카즈치의 승조원들이 자신들 몫의 식수와 식량을 나눠주며 연합군 장병들을 간병 할때도 반발이 심하게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쿠도 소좌가 직접 함내를 돌아다니며 반발하는 승조원들을 모두 설득 했다는군요.
그런데 위에 쓴 이 아저씨의 피지컬을 보면 설득당했다기 보다는 쫄었던거 같습니다.(...)
덤6. 이 구조 작업이 위험천만 했던게...이카즈치를 비롯한 특형 구축함의 승조원은 이백 수십명 규모였습니다.(특3형의 경우 220명 전후였다고 합니다.)
400명이 넘는 연합군이 기력을 회복한 뒤 선상 반란이라도 일으켜 쪽수로 밀어 붙이기 시작하면 답이 없었던것.(...)
실제로 그걸 걱정해 반발하는 승조원도 있었다는군요.
왠지 연합군도 쿠도 소좌의 피지컬을 보고 쫀거 같습니다.(...)
덤7. 이카즈치와 함께 구조 작업을 했던 아카츠키급 특3형 구축함 4번함 (혹은 후부키급 특형 구축함 24번함) 이나즈마(電 번개)는 좀 다른 일로 유명합니다.
언니뻘 되는 동형함인 후부키급 특형 구축함 4번함 미유키(深雪 깊이 쌓인 눈 혹은 눈의 미칭.)를 들이받아 가라앉혀 버린것.
침몰지점은 제주도 근해이며, 미유키는 지금도 제주도 근해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자고 있는 또다른 배로는 독일 여객선 샤른호르스트(흔히 아는 전함과는 다른 배 입니다.)를 매입하여 개조한 항공모함 신요(神鷹 신의 매? 혹은 신격으로 숭배 받는 매? 잘 모르겠군요.)가 있습니다.
이쪽은 미 해군의 어뢰공격에 당해 침몰.
덤8. 아카츠키급 특3형 구축함 2번함 (혹은 후부키급 특형 구축함 22번함)인 히비키(響 울림)는 전후 생존함으로서 소련에 배상함으로 지급 되었습니다.
이후 베르늬라는 이름으로 재취역하여 구축함으로 활동하다 다시 데카브라스트라는 이름의 연습함으로 재취역했고, 그후 1953년 2월에 해체되었습니다.
이는 또다른 전후 생존함으로 대만 해군에 배상함으로 지급되어 탄양이라는 이름으로 재취역하여 활약하다 일본으로의 반환을 위해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좌초하여 스크랩 처리 된 카게로급 구축함 8번함 유키카제보다도 오래 살아 남은 것으로, 일본의 전후 생존 구축함중 최장수 기록이라고 합니다.
추천 해 주셨던 분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해서 글을 날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