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힘을 자랑한 제국의 위엄 때문인 것 뿐만 아니라 권력을 향한 암투와 음모 그리고 시민적 대의와 제왕적 대의가 충돌하는 남성미 넘치는 대서사시이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카이사르-폼페이우스의 대결과 아우구스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간의 대결보다 공화국의 제1인자가 된 아우구스투스가 어떻게 교묘하게 공화국의 권력을 찬탈하고 제왕으로 변하는가,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흔히 제국의 방대함은 필연적으로 제왕체제를 탄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해석이 많은데, 그건 사후적으로 봤을 때의 얘기고 실제로 그 시대의 당사자들은 제국의 안정을 위한 어떤 마스터플랜이나 장기적 계획을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사실 역사에서 많은 위정자들은 당장의 위기에 대처하고, 당장의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먼저였지 체계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대부분의 경우 어떤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은 의식적인 설계보다 그때 그때의 문제에 대처하면서 누적된 대응들의 총합이죠.
아무튼 아우구스투스는 내전을 종결시키고 군사력을 독점한 후에 공화국 최고의 특권들을 마구잡이로 겸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교묘하게도 왕의 칭호는 피하면서 사실상 왕에 준하는 모든 특권을 가지게 되었고, 그 누구도 이에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
동양사에 흔한 왕조교체나 역성혁명과는 다르게 로마는 공화국이라는 추상적 체제였고, 그 추상적인 가치에 도전하면서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한 게 아우구스투스였기에 그 이야기가 더 복잡하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의 체제전환이 만인의 지지를 받았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닌게, 그의 사후 100년 후까지도 계속 공화국 복원을 희망하는 일파가 존재했기 때문이죠.
일례로 로마 3대 황제 칼리귤라가 암살 당해 죽었을 때 일부 원로원들을 중심으로 제정타도 공화국 복원 움직임이 있었고 5대 황제 네로 치세 당시에도 네로를 암살하고 공화국을 복원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로마의 가장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도 공화국에 우호적이고 제왕정치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이런 갈등이 참 매력적이더라구요.
스타워즈의 대서사시가 이런 갈등구조에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죠? 공화국의 의원이었던 팰퍼틴이 황제가 되는 과정, 그리고 제국파와 공화국파의 갈등.
그래서 그런지 원수정(Principatus) 이후 완전히 제국화된 로마사부터는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