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은 명백한 가해자가 존재하는 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정말 꼬이고 또 꼬인 막장 외교 드라마의 결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죠. 그만큼 어느 누구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속성.
그래서 각자의 잘못을 각각 짧고 단순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독일 책임론:
가장 널리 회자된 책임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1) 프로이센 군국주의와 독일의 팽창주의가 잘못이다.
독일은 속성 자체가 글러먹어서 유럽전체를 정복하려고 하는 싸이코집단이었다는 썰 (...) 도 있지만 보다 온건하게는...
독일황제 빌헬름은 이른바 "세계정책(WELTPOLITIK)"을 추구하면서 해외 식민지를 늘리고 대륙에서의 패권을 확고히 하자고 했다는 논지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대양해군을 육성하고 영국에 필적하는 해군력을 갖추고자 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그리고 (2) 외교적 미숙함이 잘못이다.
이말은 즉,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면서 스스로의 운신을 좁히고 비스마르크가 아주 정교하게 짜놓은 외교구도를 스스로 망치고 프랑스, 러시아, 영국 모두를 적대하는 정책을 추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책임론
1차 세계대전은 역시 오헝제국 황태자의 암살로 인해 촉발된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직접적인 당사자인 오헝제국을 거론할 수밖에요. 그런데 애초에 오헝제국의 황태자는 왜 암살당했을까요?
오헝제국은 발칸반도에 대한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일삼고 있었고,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은 세르비아인들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죠. 그런데 발칸지역은 러시아도 큰 관심을 보인 지역. 오헝제국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헝제국은 동맹국 독일의 힘을 믿고 러시아가 반발하건 말건 과감히 팽창정책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오헝제국은 암살의 배후에 있었던 세르비아에게 가혹한 조건 제시하면서 적극적으로 전쟁을 획책했고, 이것이 전쟁의 직접적 책임이라고 하는 썰
- 러시아 책임론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눈을 다시 발칸반도로 돌리고, 일본에게 당한 모욕을 발칸에서 풀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오헝제국을 사사건건 떠보고, 또 오스만 제국 내부의 분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발칸반도의 슬라브 국가들을 러시아의 속국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러시아 국내에서는 범슬라브주의가 유행했고, 여론은 발칸반도의 슬라브 동포들을 도와 오스만(이슬람)의 압제에서 정교회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여러 차례 오스만 제국에게 위협을 가해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의 독립을 인정하도록 강제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지만 동시에 정교회의 심장. 따라서 이를 해방시키고 얼지 않는 부동항을 확보하려고 했다는 것. 그런데 이를 위해 먼저 손을 봐야 하는 것이 발칸반도에 계속 끼어드는 오헝제국. 그래서 러시아는 오헝제국에게 압박을 받는 불쌍한 (?) 세르비아 보호를 구실로 오헝제국의 일대 결전을 벌여 발칸전체를 확보하려고 했다는 썰입니다.
- 프랑스 책임론
프랑스는 보불전쟁의 패배를 전혀 잊지 않았습니다. 알자스로렌의 상실은 정말 뼈아픈 것이었고, 반드시 독일에 그 설움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고, 모두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독일을 포위하고자 했습니다.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면 프랑스는 러시아와 협동하여 독일을 공격할 수 있게끔. 프랑스는 독일을 훼방놓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건 간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독일이 영국에 유화적 제스쳐를 보낼 때 영독 사이를 이간질하고, 독일에 러시아에 유화적 제스쳐를 보내면 러독사이를 이간질하고. 프랑스는 전쟁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되도록 빠르면 빠를 수록 좋았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간의 인구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추세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프랑스에게 불리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헝제국 황태자 암살 사건이 터졌을 때 프랑스는 사태를 중재하기보다는 더 악화시키는 데 주력했고,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외교적-정치적 지원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 확전의 책임이 있다는 썰이 있습니다.
-영국 책임론
영국도 손이 깨끗한 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영국이 독일과 지나치게 밀당했다는 것. 독일은 전쟁 거의 직전까지 영국과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영국과 이야기가 너무 잘 통했기 때문이죠. 영국은 물론 독일 해군력 강화를 경계하고 이에 대한 불쾌감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직접적인 싸인을 보내진 않았습니다. 심지어 빌헬름 황제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영국은 그를 아주 환대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친독 성향의 언론도 많았고, 게르만 종 간의 연대를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마치 어장관리녀(?) 처럼 독일에게 계속 여지를 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넌 안돼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영국이 정말 참지 못했던 것은 독일의 해군력 강화보다는 독일의 중동진출이었습니다. 독일은 오스만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면서 베를린에서 바그다드까지 이르는 철도를 부설하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영국 최대 식민지 인도는 치명적인 위협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국은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었고, 독일이 중동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하기 전에 독일을 무력화시키고자 했으며, 따라서 발칸이나 유럽지역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참전했다는 썰. 게다가 오스만제국이 IMF 때 우리나라마냥 금모으기 운동해서 어럽게 마련한 최신예 전함을 안주고 그냥 꿀꺽해버려서 오스만제국을 아주 빡치게 만든 건 덤.
-오스만 제국 책임론
오스만제국은 사실 제1차대전에 약간 뜬금포로 참전한 감이 없지 않았나 있는데, 아무튼
오스만제국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썰이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오스만제국은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두려움이 극에 달해서 유럽에서 가장 쌘 놈하고 동맹을 맺고 러시아에 대해 복수를 하고자 했다는 것. 그래서 원래는 영국과 동맹을 맺고자 했는데, 영국이 전함을 꿀꺽해버리는 바람에 독일과 동맹을 맺고 뜬금포로 러시아를 공격했다는 것. 사실 이는 논란이 될 수 있는게.... 사실 국적상으로는 오스만제국 소속이었던 군함이 러시아 요새를 공격했는데, 그 군함이나 승무원들 전원이 독일인 (...) (***다르다넬스 해협에 있던 독일군함이 영국군함을 피해서 오스만 제국에 몸을 위탁했는데, 영국이 군함을 인도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하자 오스만제국은 그 독일 군함+승무원을 돈 주고 사서 국제법상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 오스만 제국은 어쩌다보니 갑자기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 (...)
-세르비아 책임론
세르비아는 사실 전혀 결백하지 않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9.11 당시 아프간 탈레반 정부처럼 테러단체를 후원하고 지원하던 국가였고, 당시 세르비아 집권층도 잔혹한 쿠데타로 집권한 극단주의 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국에서도 90년대의 밀로셰비치처럼 소수민족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순수한 세르비아인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는 일종의 광신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잔혹함은 당시 세르비아에 주재하고 있었던 프랑스, 영국 외교관들이 경악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헝제국과의 전쟁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러시아가 반드시 참전할 것이라고 믿었고, 러시아의 힘을 등에 업고 오헝제국을 발칸반도에서 몰아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약소국 세르비아가 결국 전쟁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보는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누가 더 잘못한 거 같나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