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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처음 경험하고 있는 시골 생활은 평화롭습니다.
게시물ID : emigration_26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항상봄빛인생
추천 : 20
조회수 : 3012회
댓글수 : 61개
등록시간 : 2017/03/11 12:25:34
일본생활 13년차, 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지 7년차 여자사람입니다.

작년 이맘때쯤,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 전까지 일본생활 중 대부분은 대도시는 아니더라도 번화가나 쇼핑센터가 도보권에 있는 지역의 아파트에 살았어요.
반상회는 커녕 이웃사람 이름도 모르는 게 당연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주변이 밭으로 둘러싸인 단독주택입니다.



IMG_6429.JPG

오른쪽을 보아도 밭이고(저 산은 후지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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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을 보아도 밭이죠... 눈 때문에 저게 논인지 밭인지 보이진 않지만...


지난 일년을 돌아보며, 제가 시골 생활을 하면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일들을 적어봅니다.
다만, 이건 일본이라서라기 보다는 시골이라서 겪는 일들이라 이민게에 맞는지 걱정스럽긴 하네요.



1. 자치회 정기총회에서는 낮술을

제가 사는 동네는 64가구로 이루어진 자치회가 있고, 매년 3월 말에 정기총회를 합니다.
마침 이사온 직후에 정기총회가 있어서 남편과 같이 참석해서 인사드렸어요.
참가하신 분들은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셨는데, 일본 시골마을에 미국인과 한국인 부부가 이사를 왔다니 너무 신기해하셨습니다.

정기총회는 지난 해의 결산과 새해 예산, 주요 행사 일정 보고 같은 내용이었어요.
작은 동네 자치회지만 예산/결산 등 정기총회 관련 내용이 꽤 두툼한 인쇄물로 배포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시간 정도 정기총회가 있고 나서는 원하는 사람들만 남아서 점심식사를 겸한 친목회가 있었어요.
순식간에 맥주병 소주병이 돌아다니는 낮술판으로 변신하는 것은 좀 의외였네요.
저희는 공짜밥을 좋아해서 감사히 먹고 마셨습니다. 



2. 봄가을 대청소 집합은 새벽 5시 45분

5월과 10월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대청소를 합니다. 
공식적인 집합시간은 토요일 아침 6시이지만, 아침잠이 없는 어르신들이라 대개 5시 45분쯤에는 청소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라는 선언이나 출석체크는 없고, 그냥 청소 시작 지점에 하나 둘 모여서 자율적으로 청소를 합니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는 것도 아니구요, 벌초기 갖고 온 사람들은 풀 베고, 빗자루 갖고 온 사람은 바닥 쓸고 합니다.

문제는, 많이 알려진대로, 일본 길거리는 평소에도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쓰레기랄 것이 별로 없어서 내일이면 또 떨어질 낙엽들을 한쪽으로 밀어내는 작업이 대부분입니다.
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할일이 없는데 할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할일'인 대표적인 예입니다.
언뜻 의미가 없는 노동같지만, 아무 생각없이 몸을 움직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청소를 '명상의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시작지점에서 끝나는 곳까지 약 1km의 거리를 한시간 좀 넘게 치우고 나면 음료수를 받고 작업이 끝납니다.

 

3. 채소 주는 우렁각시들

이 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정년퇴직하고 농사짓는 노부부들입니다. 
농사라고 해도 가족친지들과 나눠먹기 위해 재배하는 수준이라, 항상 남는다고 많이 나눠주세요.
초목이 무성해지는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초인종이 울리면 대부분 채소 주러 오신 이웃할머니들이십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면 봉지봉지 담겨진 채소들이 놓여있기도 하구요.
대체로 주시는 분이 정해져있어서 채소를 보면 누가 주셨는지 알아요.

어느날은 밖에서 "새댁!"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가서 보니 
얼굴은 본 기억이 있지만 이름을 모르는 할머니 한 분이 세발수레를 밀고 오십니다.

"새댁, 감자 묵나?"하셔서 먹는다고 했더니 세발수레를 턱 뒤집어서 감자를 한가득 마당에 쏟아주십니다.
감자를 주섬주섬 줍고 있는 저에게 이번에는 "새댁, 오이는 묵나?"하고 물어보시더니
"내가 지금 저 뒷집에 놀러가는 길잉께네, 갔다 오는 길에 오이 좀 갖다 주께. 현관앞에 나놓으낑께 난제 갖다무~라"
세발수레를 힘차게 끌고 뒷길로 사라지십니다.

그 뒤로 마당에 감자가 놓여있으면 감자할머니가 왔다가셨구나 합니다.



4. 남편을 연쇄 피망마로 만들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라 화분 넉넉히 놓고 이것저것 길러봐야지~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웃 할아버지께서 아예 텃밭을 빌려주셔서 주키니, 가지, 토마토, 바질, 깻잎, 상추, 피망, 꽈리고추 빼곡하게 심었습니다.

사실 제가 심은 것도 아니에요. 
묘목만 제가 사고 할아버지가 밭 갈아서 심어주시고, 가지치기도 해 주시고, 지지대도 세워주셨습니다.
저는 옆에서 "아~ 그렇게 하는거에요~?"만 하는 사람.

그래도 아침에 물주고 해충잡고 하면서 농사꾼 라이프 흉내내기는 했어요.
초여름까지만 해도 여기서 정말 채소들이 날까 싶었는데 한번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니까 저희가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자라났습니다.
특히 피망은 어제 10개 수확했는데 오늘은 20개 열려있는 느낌이라 몇봉지씩 나눠담아 남편 동료들 주라고 떠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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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부엌에서 발견한, 남편이 피망으로 만들어 놓은 수퍼 히어로, 피맨...)

덕분에 남편은 직장 동료들에게 "피망 필요해?"를 연발하는 연쇄피망마가 되어야했습니다.

그 때 깨달았어요. 
제게 채소를 주시며 "채소 먹어 줄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야..."라고 웃으시던 할머니들의 미소가 진심이었다는 걸...

 


5. 바퀴벌레 대신 찾아온 곤충과 뱀과 곰

텃밭에 들어갈 때는 장화신고 일하는데, 아침에 잠깐 토마토 몇개만 따느라 슬리퍼 신고 밭에 들어갔다 왔더니 
다음날부터 다리가 엄청나게 붓고 가렵더라구요.

병원에 갔더니 '파리매'에 물린 것 같다고 하십니다.



IMG_5066.JPG

(이 다리는 파리매에 물려 1.8배로 부어오른 다리입니다!!! 진짜에요!!!)

저는 그냥 큰 모기에 물렸나 해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붓기가 너무 심해서 나중에는 발을 디딜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어요.
몇번 고생하고 나면 내성이 생겨서 이렇게 안붓는다네요.

바퀴벌레 없다고 좋아했는데 파리매에 물리고, 창고 처마에 등에(말벌 비슷한 벌)집 생기고, 
운이 좋은 날은 한가롭게 마당을 가로질러가는 뱀과 눈이 마주치기도 합니다.

제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곰이 출현하는 시기에는 종종 확성기를 통해 "00지역 근처에서 곰이 목격되었다"는 경고방송도 나와요.
이웃 할아버지께 여쭤보니 아무것도 아니란 듯 담담한 말투로 
"매년 한두명은 죽기도하고 다치기도 하는데, 산나물 캐러 다니는 거 아니믄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곰이 목격된 지역은 초등학교 근처라는데요???

그래도 걱정이라 남편이랑 곰 종류에 따른 대처방법 알아보고 그랬네요.
참고로, 북극곰은 마주치면 그냥 죽는대요... 아무 방법도 없대요...
아기곰도 마주치면 그냥 죽는대요... 엄마곰이 나타나서 상황 종료래요...
다른 건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공부해도 소용이 없네요...



그 외에도 자잘하게, 쓰레기 집하장소가 집에서 500m거리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차 시동을 건다든지,
동네에 하수도 시설이 없어 아직도 정화조를 쓰는 집이라 똥차를 부른다든지(처음에 잘 몰라 정화조가 넘쳤을 때는 엄청난 패닉!!), 
평생 처음해보는 일들이 어떨 때는 신기하고 어떨 때는 당혹스럽지만 나름의 발견에 행복해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3월까지 살던 곳에서는 옆집 불량배삘 나는 부부싸움이 격해져서 경찰도 불러보고, 
앞집 이웃가족이 야반도주해서 나중에 검정양복입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조사하고 그랬던 것에 비교하니 더더욱 평화롭구요.

하수도 시설만 들어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출처 저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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