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을 불사르던 도수의 노여움도 잊혀지고 카르마의 잔재도 eu스타일 속에 묻혀버린 그리고, 그런 것들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멘탈의 회복이 천박한 농담이 되어버린 시대에 한 요들이 기지에 서있었다.
더이상 LOL에 트롤러는 없다. 도란검을 산 케이틀린은 그 사실에 만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릿한 슬픔을 느꼈다. 밝은 피더들, 젊음의 단점이자 특권이기도 한 밝은 성품을 주체하지 못하던 예능인들이 너무 많이 사라졌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케이틀린은 그의 골치거리였던 그 사랑스러운 트롤러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잇츠미더 데빌, 도타고수, 걷 기, 강 민, 정글도는 티모, 피딩하러 나온 이블린...
이블린의 별명을 되새긴 케이틀린은 우수 어린 미소를 지었다.
'피딩하러 나온 이블린이라.'
발로란에서 온 트롤러 이블린은 독특한 게임관을 피력하곤 했다. 그 어여쁜 젊은이는 죽음이 자신의 취미이며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전장에는 모자란 마조히스트 본능을 보충하러 나온다고 설명하여 전우들을 당황하게 했다. 미니온이 나오기까지 30초 남았습니다 소리를 들으며 '피딩 나팔이 울렸군. 달콤한 꿈의 시간 인가.'라고 중얼거리던 이블린의 모습은 뻣뻣하게 긴장해있던 동료 챔피언들을 웃게 만들었고 다가올 공포에 위축되어 있던 미니언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전장에서 쓰러트린 적보다 죽은 경험이 더 많은 것 아니냐는 짓궂은 질문에 대해 이블린이 확실한 대답을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절대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블린은 그의 표현 그대로 죽으러 나온 전장에서 영원히 죽었다. 150년 정지를 당한것이다.
하지만 케이틀린은 이블린이 침대를 전장이라고 부른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생각 깊은 이블린은 정신을 좀먹고 멘탈을 부수는 것 같은 팀원들의 질책 때문에 과감한 플레이를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느니 막돼먹은 트롤러로 남는 쪽을 택했다. 그 편이 팀의 분위기를 조율하기에 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멘붕을 할 일은 없겠지. 편히 쉬게, 이블린.'
긴 시간 동안 케이틀린의 능력은 예능을 통해 위대하게 쟁취한 '승리'보다는 꼴픽을 eu스타일로 바꾸는 쪽에서 주로 발휘되고 있었다.
물론 eu스타일을 지켜 이기기 위해 게임하는 자들에겐 그것은 무엇보다 고마운 재능이었다. 하지만 케이틀린은 잇츠미더 데빌, 도타고수, 걷 기, 강 민, 트위치, 이블린이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감히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지키지 못한 멘탈들도.
예능에 대한 승리의 자랑은 이제 디씨인사이트 롤갤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것이다.
'나를 용서해 다오, 위대한 병신들이여.'
고통스러운 회한에 빠져있던 케이틀린의 눈에 빗줄기를 뚫고 언덕 너머 저편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요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찰박거리며 달려가는 귀여운 요들을 보며 케이틀린은 우려를 느꼈다. '저렇게 달리면 넘어고 말 텐데.' 아니나 다를까, 달려가던 요들은 보기좋게 넘어지고 말았다. 안개층에 얼굴을 들이박는 요들을 보며 케이틀린은 혀를 찼다. 하지만 요들은 곧 씩씩하게 일어나 전장을 향해 달려갔다. 아군의 타워 앞에 도달한 요들은 우렁차게 외쳤다.
"캡틴 티모 온 듀티!"
케이틀린은 빗줄기 저편을 노려보았다.
'사라져 간 피더들이여, 무너져 간 조합들이여. 그대들을 위해 슬퍼하지만, 그러나 미래는 저 티모의 것이겠구나. 언젠가 당신들 곁으로 가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 속에 그 날이 오길 기다리겠다. 그 때까지, 나는 저 무릎 성할 날이 없는 요들을 위해 싸우겠다.'
봇라인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케이틀린은 더이상 웃지 않았다. 그리고 회한에 젖어있지도 않았다. 싸워야 할 이유가 있었고, 싸워야 할 적도 있었다.
싸워야 할 시간이다.
그 때,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섯글자로 이루어진 딱딱한 기계음은 대게의 뇌수를 파먹는 기생충처럼, 꼽등이의 이성을 지배하는 연가시처럼 케이틀린의 귓속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