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비 많이 왔잖아. 그 전날부터 계속 퍼부을듯 말듯 하면서 후덥지근한게 사람 숨막히게 하던게 결국 새벽부터 뚫린 듯이 퍼붓기 시작했고 나 결국 빗방울이 창문 두들겨대는 소리에 깨서 시간 보니까 새벽 다섯시더라.
그날 너 많이 아팠잖아. 하필 혼자 있는 그 밤에 갑자기 아플건 뭐였니? 전화해서 깨우지 그랬냐. 왜 사람 답답하게 아프다는 문자 하나 남겨두고 그렇게 혼자 밤새 앓아. 그 비가 네가 보내 둔 문자를 보라고 그렇게 창문을 두드렸던건지... 정신없이 옷 걸치고 우산은 쓰는 둥 마는 둥 하며 도로로 뛰어나갔는데 왜 하필 택시고 버스고 아무것도 안보여, 속은 타들어가지 비는 퍼붓지 너는 전화 받지도 않지 진짜 그날 나도 속이 타서 죽는줄 알았다 야.
현관문 번호를 누르려는데 내 손이 막 덜덜 떨려. 야, 나 사람 손이 덜덜 떨리는걸 그날 태어나고 처음봤다. 비는 쏟아지지 연락은 안되지 가슴 속에서 하늘이랑 땅이랑 손잡고 물구나무를 섯다가 공중제비를 돌다가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야. 평소에 업히라 하면 자기 무겁다며 질색 팔색을 하면서 도망가던 애가 그날은 마른 걸레짝처럼 아주 힘도 없이 등에 업혀. 내가 덜떨어져서 그 와중에 무겁다며 너스레를 떨었잖아. 그거 무서워서 그런거다 야. 이 판국에 무슨 소리냐며 화라도 좀 내줬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애가 웃어 그냥. 하르르, 하고.
그날 너 많이 토했잖아. 나 사람 몸 안에서 뭐가 그렇게 많이 나올 수 있는 줄 몰랐다 야. 걸어서 삼십분은 족히 걸리는 병원까지 다 큰 너를 업고서 나 십분만에 달렸더라. 아이고 얘 죽어요, 얘 죽어요. 하면서. 너는 바퀴달린 침대에 실려 어디로 끌려가지, 비 냄새는 시큰하지. 따라가려는데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 어,어, 하는데 자꾸 멀어지지. 그렇게 멍청하게 휘청대는데 간호사가 와서 종이 끼워진 판때기랑 펜을 내밀더라. 그제서야 보니까 내 손이고 등이고 어깨고 온통 네게 게워낸것들 투성이야. 더럽기는 무슨, 아이고, 아이고 저 아이를 어째. 하는 생각밖에 안들더라.
그날 너 많이 늦게 나왔잖아. 네가 언제 나올지 몰라서 병원 의자에 앉아 계속 기다렸다. 전화기를 찾았는데 안보여, 생각해보니 너네 집에다 떨어뜨리고 온 것 같아. 연락 할 번호는 모르겠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 그날 앉아서 기다리는데 내가 먼저 사단이 나겠더라. 내가 뭐라고 여기 이러고 앉아있나 싶다가도 시간이 가는데도 네가 도무지 안에서 나오질 않아. 병원 시계만 쳐다보고 괜히 앞에 기웃거리고. 마침 주머니에 새 담배 있던걸 두 시간 남짓만에 다 태웠다 야. 간호사 한명 붙잡고 물어만 봤어도 될 일이었는데 그땐 그 생각이 안나더라. 얘가 저러고 들어가서 죽는거 아닌가, 죽긴 왜 죽어 그냥 속에 탈 좀 난거지. 하고. 바로 전날 밤에 생글생글 웃고 집에 보낸 애가 저꼴이 되어 있으니 내가 뭘 잘못먹인건가 내 탓인가 속에서 재판이 열리고 유죄를 받아 형무소에서 혼자 노역을 하고 있었다 야.
그날 내가 너를 기다리던건지 나 정신 차리는걸 기다렸던건지... 그러다 웬 못생긴 애가 얼굴이 반쪽이 되어선 링겔 봉을 잡고 질질 끌면서 나와. 아주 금방 죽을 사람처럼 들어갔다가 금방은 아니고 내일이나 모레쯤 죽을 것 같은 얼굴이더라. 머리카락엔 토한게 덕지덕지 붙어서 산발이 되어있고 눈 밑은 퀭해 아주. 그런데 그걸 데려와선 기다리고 있던 녀석도 몰골이 말이 아니야. 비에 쫄딱 젖어있지 등짝엔 그 못생긴애가 게워낸것들이 남아있지... 세상 거지 빙시도 그런 빙시들이 없었다 그치.
그날 기억 나지. 병원 접수계 앞 의자에서 그 못생긴 애가 얼굴이 반쪽이 되어 나와선 씨익 웃고, 앉아 기다리던 또 못생긴 애가 뭘 잘했다고 엉엉 울어댔던 날 말이다 야.
쓰고 보니 정민경 학생이 예전에 광주 백일장에서 쓴 시와 많이 닮아있네요..! 좋아하는 글을 따라가게 되나봐요 제 이야기를 그 글의 옷을 입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