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
완당의 서울 봉은사 판전의 현판.
동양과 서양의 전혀 다른 분야의,
두 대가의 두 작품에는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분명 맞닿아 있다.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임종하기 3일전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유작이라는 것과
봉은사의 '판전'은 완당이 임종 3일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닮은 건 그들의 삶이다.
두사람 모두 타고난 재능과 열정,시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성공한 사람의 모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지나친 욕망과 갈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좀처럼 남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고 제것만 최고로 쳤다.
완당은 주위 많은 학자들을 업신여기고 면박을 주는 행동으로
많은 적을 만들었다.
미켈란젤로 역시 경쟁심과 질투심이 대단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와의 일 이외에도 그의 독선과 오만으로 사람들과의
언쟁중 코뼈가 부러지는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만년에 그들이 느꼈던 노도같은 삶에 대한 회한도 다르지 않았다.
위의 두 작품이 이름없는 작가의 것이었다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을 만큼
작품성이 없어 보인다.
두 방면에 많은 평론가들도 의견을 같이하는 졸작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달라졌다.
오로지 내달렸던 지난 삶에 대한 회한과 성찰이 있고 난 다음의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남긴 수많은 걸작들 중에 가장 많은 시선과 관심을 받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임종이 다가왔을 때 이런말을 한다.
“나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혼의 구원을 소홀히 한 점과
작가로서 이제 겨우 알파벳을 익힌 지금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게 후회스럽다.”
완당이
북청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옥수수 밭이 딸린 한 초가 마루에서
환한 웃음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옥수수로 세 끼니를 해결하고
태어나 한양땅 한번 밟아 본적없는 가난한 노부부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아스라해진다.
완당이 마지막으로 남긴 대팽두부란 시에 그의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일좋은 반찬은 두부와 오이와 생강과 나물.
최고가는 만남은 부부와 아들 딸과 손자.
세상중심이라 여겼던 연강에서의 산해진미도,
학문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연강에서의 당대 최고 학자들과의 만남도
그래서 가졌던 자부심과, 마땅하다 생각했던 기고만장의 오만도
가난한 노부부 앞에서 무장해제 되었다.
가장 높이 올라갔던 두 대가의 망연자실에서 두 작품은 그렇게 맞닿아 있다.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청년기에 만든 성베드로 대성당 피에타에 비하면 보잘것 없다.
화가 ,건축가, 조각가로서 미켈란젤로는 수많은 작품을 의뢰받아 빡빡한
스케줄로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이 작품만은 누구의 주문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만 시작했다는 점에서
가장 미켈란젤로다운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완성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완성으로 끝난 것이 미켈란젤로를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 짐작이나 할까..
론다니니의 피에타에 오랫동안 발길을 머물게 하는 이유는
한땀 한땀, 정과 끌의 흔적들이 이 작품속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간절히 그리워 하는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 헤메다 우연히 그의 발자국을 발견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건 파격적인 보너스다.
완당평전에서 판전의 글씨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판전의 글씨를 보면 추사체의 졸(拙)함이 극치에 달해 있다.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바닥에 쓴 것 같기도 한데
졸한 것의 힘과 멋이 천연스럽게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