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선조 임진왜란 준비 실패하는 기록
게시물ID : history_257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인거비신미
추천 : 0
조회수 : 1445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3/29 16:25:23
상이 이르기를,
"그때 왜적이 얼마나 되었는가?"
하니, 변협이 아뢰기를,
"배 70척에 군사가 약 6천 명쯤 되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수만 명이 쳐들어올 기세는 보이지 않던가?"
하니, 변협이 아뢰기를,
"왜선(倭船)은 그다지 크지 아니하여 중국 배에 미치지 못하므로 한 척에 1백 명밖에 실을 수 없습니다. 1백 척이면 1만 명이니 1만 명밖에는 더 나오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혹시 변지(邊地)를 할거(割據)한 뒤에 계속해서 계원전(繼援戰)을 펼 리는 없겠는가?"
하니, 변협이 아뢰기를,
"주객(主客)이 같지 않으니 그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유대진(兪大進)이 아뢰기를,
"성교(聖敎)가 지당하십니다. 《동국통감(東國通鑑)》에 의하면, 평안·함경에 그들의 발길에 닿지 않은 곳이 없어, 세종 말년에 33척이 비인(庇仁)을 침범하였고 38척이 해주(海州)를 침범하였었습니다."
하니, 변협이 아뢰기를,
"그때에는 왜인이 우리 나라의 해로(海路)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하였지만, 지금은 해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충청도에는 능히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의 사정을 저들이 죄다 알고 있으니 만약 우리 나라가 전라도에 주력하는 줄을 알고 딴 도(道)로 들어오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변협이 아뢰기를,
"소적(小賊)이라면 천성(天城)·가덕(加德)이 염려되지만, 대적(大賊)이야 어느 곳엔들 들어오지 못하겠습니까."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208001_002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