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방장이입니다. 간만에 인사드립니다.
제목이 조금 딱딱합니다. 어떻게 지을 수 있을까 무척 고민을 많이 했는데, 마땅히 이 이상의 좋은 제목이 떠오르지가 않네요.
여름이 다가오면서 이런 저런 일들로 무척 바빠지고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가이드도 6편인 스토리 제작 이후에 한동안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부지런히 글을 써서 얼른 완성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두개의 백팩과 하나의 보스턴백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메신저백을 새롭게 하나 만들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방이 메신저백인데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커서 그랬는지, 의외로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새로운 가방을 만드는 과정이 참 어설픈데 그러면서도 어떻게 계속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전공자로서 제품 디자인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는 설계와 더불어서 필연적으로 디자인이라는 과정이 수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였고 창업을 하기 전에 다닌 회사에서는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배경에 디자인이라는 것은 꽤나 거리가 먼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시험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창업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겁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의 일일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만, 저의 경험담과 이야기가 나름의 방법을 찾는데에, 그리고 두려움을 떨쳐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 만든 가방은 메신저백입니다. 이름은 '여가 도쿄'이지요.
뭐 그렇게 성의없이 지은 것 같은 이름을 가졌냐고 물으신다면, 완벽하게 제대로 알아보셨습니다. 사실 의미야 갖다붙이기 나름이라지만, 거북이 등딱지나 고래 등짝에 붙은 따개비처럼 일상 여기저기에서 쓸 일이 많은 메신저백을 만들면서는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의미라고나 할까요. 변명이 어줍잖다고 생각하실텐데 맞습니다. 귀찮아서 그랬습니다. 물 한모금 마시면서 적당히 지은 이름입니다. 저는 제가 가본 도시들의 이름을 가방에다가 붙이는걸 좋아하는데, 이제 해외 도시 중에서 비행기로 네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곳 이름은 다 갖다 썼습니다.
어찌됐든, 저는 메신저백을 무척 좋아합니다. 예쁘고, 가볍고, 편합니다. 등짝 전체를 차지하는 녀석도 아니기 때문에 더운날 함께해도 저를 힘ㄷ르게 하지 않습니다. 노트북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면 어김없이 메고 나가는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만든 메신저백'. 지금까지 '가방 만드는 사장놈이 네 가방은 어따 팔아먹고 남 가방을 쓰고 있느냐'는 주변의 핀잔에도 꿋꿋하게 메고 다니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하루라도 빨리 메신저백을 제가 만들어서 메고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만들고 싶었던 가방이었는데, 의외로 완성된 녀석을 만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메신저백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명확했고, 제가 원하는 디자인도 분명했습니다. 이 가방은 누가 쓰면 좋을지 대상도 분명한 가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거의 반 년 가까운 시간동안 머리 속에서만 맴돌 뿐, 쉽사리 실물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꽤나 많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를 꼽는다면 '여행과 친하게 어울릴 수 있는 가방은 아닌 메신저백을 어떻게 하면 여행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제가 만드는 '여행용 가방'이라는 컨셉에 맞게끔 가방을 기획하는 과정에 너무나 오랜 시간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반 년 씩이나 걸리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사실 있어서 나쁠 기능은 없습니다. 컴퓨터도 그렇고 콘솔도 그렇고 기능 많은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딱 한가지,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이 기능 저 기능 다 넣어서 무슨 상황에서든지 쓰기 편한 가방을 만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격도 올라가고, 무게도 무거워집니다.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수많은 기능들 중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들을 추려내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생산까지 할 수 있도록 적정선을 찾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적당선에서 타협하고 싶은 생각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마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물을 위해서는 물러설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를 해서도 안되구요.
제 머릿속을 들락날락한 메신저백만 수십개가 족히 넘어갈 것 같습니다. 아주 지루한 과정이었는데 그 고민 끝에 만들어낸 가방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명료한 목적을 가진 놈이 되었습니다. 이름하야 '캐리어족을 위한 배려가 있는 메신저백'
한 쪽 어깨에 걸치는 메신저백의 특성 상 크기가 무작정 크면 안됩니다. 보스턴백 같은 것은 차에 실어다니면 된다지만 이 녀석은 어깨에 들쳐메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중요한 짐은 편하게 꺼낼 수 있어야 하고 안전하게 보관이 가능해야 합니다. 만일 메신저백을 들고 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캐리어를 끌고가게 될텐데, 그 녀석과의 궁합 역시 좋아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편리하게 수납이 가능한 메신저백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는, 조금은 다르게 생긴 메신저백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이 되었습니다. 이 녀석은 메신저백도 따로 탈부착이 되고, 저 앞에 보이는 복대같이 생긴 녀석도 분리가 됩니다.
둘 다 버클을 이용해서 탈부착이 됩니다. (저 앞에 붙어있는 복대같은 녀석은 디자인이 조금 허접해보여서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저 두 녀석을 전부 결합해서 쓰고 다니다가 필요에 따라서 메신저백만, 혹은 복대같은 녀석만 따로 분리해서 쓸 수 있습니다. 여권이나 지갑, 호나전한 돈 같은 것은 어떤 경우에도 손이 닿는 가장 안전한 곳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곳은 역시 항상 시야에 들어와있고 손이 닿는 곳인 가슴팍입니다. 일주일 정도 사용해보면서 가장 쓸만했던 기능이 이 녀석이었는데, 얼른 개선작업을 완료해서 더 괜찮은 놈으로 바꿔봐야겠습니다.
13인치 노트북까지 들어가는 별도의 수납공간이 있는 이 녀석을 만들면서 주목한 또 다른 불편함은 짐을 넣고 꺼내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뚜껑이 있는 메신저백이 훨씬 예쁜데도 불구하고 굳이 두껑 없는 녀석을 고집했던 이유이기도 한데, 아쉬우면 제가 만들면 됩니다.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보통 뚜껑 있는 메신저백은 아래에서 위로 가방을 열도록 되어있습니다. 저처럼 키가 작은 사람이 가방을 열면 뚜껑이 목덜미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키작은걸 가지고 불편함 느낀 적이 별로 없는데, 가방 하나 제대로 못열어서 그 놈을 쓸 수 없는건 여간 서러운게 아닙니다. 문제는 가방을 열고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뚜껑을 위로 들고 있으니 잡지 않으면 아래로 다시 쳐집니다. 기껏 열어놓은 뚜껑이 다시 가방을 덮어버립니다. 결국 뚜껑을 잡는 손 따로, 짐을 꺼내는 손 따로, 거추장스러운 모습으로 짐을 꺼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꿨습니다. 지구를 이길 힘은 어차피 저한테 없으니 활용이라도 잘 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더이상 눈높이까지 오는 뚜껑이 가방 속 내용물을 가리는 일도 없고, 자유로운 두 손 덕분에 훨씬 편하게 가방 속 물건을 뒤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가방의 마지막 배려는 뒷면에 숨어있습니다. 캐리어에 꽂아서 쓸 수 있도록 캐리어 걸이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가방에서 볼 수 있는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메신저백에는 없습니다. 분명히 필요한 기능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캐리어 걸이 아래쪽에는 지퍼가 달려있습니다. 아래쪽 지퍼를 닫으면 캐리어를 걸기위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주머니가 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몇가지의 물건들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티슈, 당이 떨어졌을때를 대비한 자유시간 하나 쯤 넣어둔다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해놓은 것만 보면 꽤나 단순한 가방인 것 같은데, 유난스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그 외형을 만들어내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보기 좋은 것 만이 잘 만들어진 제품의 기준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제품을 기획하는 전반적인 과정에 걸쳐서 기능과 디자인, 생산 이 모든 것은 따로 떼어놓고 고민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 아닙니다. 비전공자로서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구글에서 'backpack design sketch'라고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 중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가방을 디자인한다고 했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바꿔 말하면 디자인을 누가 하든지 저 정도의 퀄리티 이상은 당연히 한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디테일이 명확하고, 그림만 보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매우 명료합니다.
이게 뭐지 싶으시겠지만, 믿기지 않게도 가방입니다. 심지어 생산까지 완료된.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하면서 일년이 지나면 나의 그림 실력이나 디자인 센스가 조금은 나아져 있겠지 싶었는데, 슬프게도 아직까지 별로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한가지 더 슬픈 사실은 앞으로도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방은 제가 그리고, 디자인을 하고, 저의 생각을 거쳐서 만들어집니다.
우선,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게되어 조금의 죄책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느끼기에 비전공자가 전공자보다 앞서는 부분은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던 천부적인 감각을 발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셨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딱히 덕 볼 것 없습니다. 손해를 보면 보겠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머릿속에 그리는 것을 종이 위에 명쾌하게 풀 수 없다는 것 만으로도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제품의 디자인을 개선할 수 있는 숨은 2%를 채우기 위한 디테일. 그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 밖에 없구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그런지 마땅히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평생 공부하고 수련한 분들이 즐비한 그 영역에 제가 뒤늦게 뛰어든다고 해서 경쟁력이 생길 것 같지도 않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어디 가서 '가방'을 그립니다. 말 정도는 할 수 있도록 그림도 배우고 가방 만드는 것도 배워볼 생각입니다.)
뭐가 어찌됐든, 저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개선이 되고는 있습니다만, 끔찍하리만치 예쁜 것을 생각해내는 재주가 없기 때문에 제가 가진 한계는 명확합니다. 그 대신 저는 디자인에서 생긴 부족함을 다른 영역에서 보완함으로써 '우회'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고 보기좋게 외형을 다듬는다. 그렇게 기획한 제품을 그대로 생산하고 잘 포장해서 판매한다.
참 성의없다 싶지만, 저 과정을 거쳐서 저는 새로운 가방을 만들어내고 판매를 합니다. 전술하였듯이 '보기좋게' 무언가 만드는 것을 저는 잘 하지 못합니다. 제품을 하자 없이 생산해서 포장하고 판매하는 것이야 당연하게 잘해야하는 것이니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는 것. 이것 하나인데, 제가 찾은 우회의 실마리 역시 그곳에 있었습니다.
결국은 기획을 어떻게 하느냐, 본인이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향점의 설정에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개선점을 찾아 기능으로 구현하고, 그 중 핵심 기능만 추려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객들께서는 본인의 필요에 의해서 제품을 구매하는데, 그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기능이 우수해서, 혹은 디자인이 뛰어난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너무나 가격이 저렴해서일수도 있구요. 제 가방은 위의 이유를 구매 결정의 세 가지 축으로 설정한다면 기능에 조금 더 치우쳐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만들어내는 것, 제가 언제나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어야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 역시 더 좋은 가방을, 더 예쁜 가방을 만들어내고 싶고,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합니다. 돈이 많으면 해결이 되는 문제이겠지만 우리 모두 한정된 자원 내에서 최대의 효율을 끄집어내는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용으로 인해 얻어지는 편익을 고려하여 최적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품의 기획과 개발 단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혼자 무언가를 시작하고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혼자 내던져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체온을 보호해야하고, 물을 찾아야 하고 먹을것을 찾아야합니다. 그 와중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고요.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것이고 둘 보다는 셋이 나을겁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무조건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다면, (저처럼 말입니다.) 스스로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어떻게 기획을 하고 그것을 디자인과 설계로 풀어낼 수 있을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시간과 비용의 소모를 최대한 줄이실 수 있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별로 대단찮은 이 글이 새로운 시작을 앞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맛비가 거세게 쏟아지는 월요일의 오후,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