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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자면 안돼!
게시물ID : baby_253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봄봄달
추천 : 10
조회수 : 2087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22/10/10 16:13:24
첫째는 매일 6시 30분에 일어난다. 칸트도 아닌데 알람도 없이. 
일찍 자도 6시 30분, 늦게 자도 6시 30분인데 보통은 일찍 자지 않는다.  


어제는 모처럼 남편이랑 둘이서 작은아씨들 마지막회를 봤다. 
난 집안일 마무리 하느라 남편은 공부하고 들어오느라 
드라마는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났다. 그 시각이 2시 반.  


첫째가 알람시계처럼 정확하게 일어날 걸 알면서도
정말 오랜만에 같이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오전에 빡세게 놀아주면 12시 반에서 1시 사이엔 낮잠에 들겠지. 
그 때 쪽잠을 자 보자. 
야무진 계획이었다. 


첫째는 정확하게 6시 반에 나를 깨우러 왔다.  
계약을 어기면 패널티라도 무는 것처럼 정확하다.  
졸리지만 최선을 다해 커피를 안 마시고 잠을 참아본다.
낮잠 잘 때 같이 눈 좀 붙여야 오후를 또 견딜 수 있으니까. 

첫째는 요리를 제일 좋아한다. 
요리를 할 때면 꼭 옆에 붙어 있고 내가 없어도 부엌에 들어 가 온갖 냄비와 팬을 꺼내서 요리하는 시늉을 한다.   


아침부터 같이 밥도 하고 
양파 던지면 안돼, 물 틀지마, 물 엎지마, 숟가락 그만 꺼내, 돼지 만지지마 안 익힌 거야, 된장 양념 저어봐, 들깨 한 숟가락 넣어봐
요란하게 감자탕도 끓였다.   


첫째 아침을 먹이고 
둘째도 아침을 먹이고 눈이 감길락 말락할 때 
남편을 깨운다. 

첫째 데리고 나갔다 올게 
둘째 좀 보고 있어. 밥 먼저 먹어도 돼. 


일부러 먼 곳을 향해 걸어 본다. 
왕복 1시간은 걸어야 잠을 자겠지.  
 
어제는 아이스크림 샀으니 오늘은 빵을 사러 가자.   



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다. 자기 방앗간이다. 꼭 들어가서 소세지나 뽀로로 보리차나 주스를 사야 한다. 
오늘은 소세지라 천원 2장을 내게 시켰다. 

또 걷는다. 놀이터는 들러만 봤다. 아직 미끄럼틀이 젖어있다. 

- 아기가 귀엽네요.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아이와 걸으면 많은 분들이 자주 인사를 건네 주신다. 

- 아기와 (내가) 걷는 뒷모습이 귀여워서…

내 또래의 남자분이었다. 뒷모습이 귀엽다고 하면서 두 손으로 크고 둥근 공과 작고 귀여운 공을 만든다. 

아 그러니까 내 덩치와 작은 꼬맹이가 대조적이라는 거지? 

아기가 귀여워서 말을 걸었다는 분과 한 200미터를 같이 걸었다. 
조카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조카를 무척 귀여워 하는 분이었다. 

아이를 오목조목 살피고 나를 쳐다 보더니

- 아빠가 잘 생겼나 봐요. 

조카도 귀여워하시고 저격도 잘하시는 분이었다. 
사탕을 아직 안 먹는 아이 대신 나에게 레몬맛 홀스를 주시고 갈 길 가셨다. 
레몬맛 홀스는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 아이가 사탕을 먹었어도 이건 내 차지다. 

 


빵집에 다행히 남편이 좋아하는 빵이 있었다.  

아이와 빵을 사고 돌아왔다. 남편은 식사를 마친 후였다.  

얼른 독서실에 가보라 했다.

 11시 반. 좋다. 이제 슬슬 재울 준비를 해 보자.
둘째는 안방에 좁쌀이불을 덮어 뉘어 놓았다. 
웬만해서는 안 깰 것이다. 

거실과 아이방에 암막커튼을 치고 아이 방에 누웠다. 

안 자겠다고 한다. 거실에서 놀다 들어오라고 했다. 
빨간 자동차를 타고 책을 우르르 쏟아 꺼내놓고 
장난감도 우르르 쏟아 놓더니 같이 놀자고 온다. 

- 엄마는 졸려. 같이 자자. 

아이는 순순히 눕는다. 아이 정수리 냄새를 맡는다. 땀내 섞인 이 냄새가 제일 좋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검둥 개야 짖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깰라
꼬꼬 닭아 우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깰라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자장 자장 이제 잠이 들겠
 
벌떡 일어선다. 하.. 애초에 잠 잘 생각이 없다. 

이번엔 책을 갖고 온다. 읽어 달란다. 내 친구 끙끙이는 변기에요, 읽어주는데 쏜살같이 뛰쳐 나간다. 하…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다. 

자자, 제발 자자. 응? 자자. 

아이 방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것으로 차단된다 느끼는지 보통 이러면 다섯을 세기도 전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나 둘 셋 넷

벌컥 열린 문은 둘째가 누워있는 안방이었다. 문소리에 놀란 둘째가 자지러지게 운다. 

하… 네가 이제 날 유인할 줄 아는구나. 엄마 아빠도 안 하는 23개월 주제에. 

둘째를 다시 달래 재우고 첫째가 기분 좋을 수 있게 다시 놀아주고 다시 재울 준비를 하고 다시 누워서 자장가를 불러주고… 


 
아이가 낮잠 잘 거라는 기대를 버린 건 3시쯤이었다. 커피를 내렸다. 평소보다 오래 기대를 했던 건 정말 너무 졸려서였고 나는 오늘 밤새서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 포기하고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 
첫째는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탁탁 털어서 반듯하게 펴더니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고 나를 쳐다본다. 
물개박수를 쳐줬다. 


이제는 낮잠 자면 안된다. 
애매하게 자고 일어나면 이 참사는 한밤중까지 이어질 것이다. 

아이가 툴립책 3개를 동시에 틀어 놓고 나를 돌아본다. 
또 다시 물개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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