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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제국의 황혼(1) ─ 태산이 무너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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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14
조회수 : 1675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6/02/01 18: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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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제국이 혼란에 빠지고 오스만 제국이 40여년의 방황기를 겪고 있던 15세기의 명나라 제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가장 압도적이라고 할만하다라고 평해도 그리 무리는 없을만하겠지만 홍치제(弘治帝)가 사망(1505년 6월 8일) 하는 시점부터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예, 15세기가 끝나고 16세기가 시작되는 무렵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문제가 있는 황제들이 연이어 즉위하게 되지만, 가정제 ─ 만력제와 같은 황제들의 무능이나 만행을 일일히 열거하자면 그것만으로도 한두편은 채울것이 족하기에 간략하게 넘어가서 재정은 매우 악회되었고, 왜구나 타타르의 침입은 위협적이 되었으며 환관의 전횡이 심해졌고 모든면에서 제국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조선 원군 등의 군사 원정은 막대한 부담이 되었지만, 그보다도 만력제의 무덤 건설 비용이 더 문제가 될 정도였으니 말을 다한 것입니다.

명나라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가정제 46년, 만력제 40년. 기나긴 시간동안 가라앉는 난파선처럼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모든 면에서 답보 ─ 쇠퇴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86년은 너무 긴 시간입니다.

그리고, 요동에서 만주족이 발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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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제(天命帝)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Aisin-gioro Nurhaci)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다루자면 또다시 상당한 분량이 될 테니 다음 기회로 미루고, 건주여진을 통합하고 명에 대항한 누르하치는 사르후 전투(薩爾滸之戰)에서 명의 대군을, "접전지역에서 적군보다 많은 병력을 유지하여 각개격파한다" 라는, 손무(孫武)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펑더화이(彭德懷)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되풀이 말해지고 행해진 방식에 충실하게 이행하여 대승을 거두는데 승리합니다.

요동 전지역으로 퍼진 무시무시한 기세는 원숭환(袁崇煥)이 영원성에서 홍이포(紅夷砲)를 이용하여 일단 저지해내는데 성공합니다.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淸太宗)는 청나라의 국가 기틀을 충실히 닦고, 조선을 공격하여 굴복시키는데 성공하여 배후의 위협을 줄였습니다. 그리고 원숭환을 반간계로 죽게 하는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해관(山海關)의 방어선을 뚫지는 못했습니다. 1630년대 후반, 홍타이지는 멀리 우회하여 산해관을 너머 북경 근처를 공격하는 수단을 써보기도 하나, 이럴 경우에는 보급선이 터무니없이 길어지는 문제로 인하여 약탈 이상의 전과를 올리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 당시 명나라의 황제는 천계제였고, 위충현이 전횡을 부렸으며, 모든 문제가 복합적으로 폭발하여 확실하게 명의 위상이 추락해가던 시기였습니다. 숭정제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하여 노력했으나 상황은 절망적으로 추락해갔습니다. 명나라가 거대하여 무너지는데 백여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만큼, 그렇게 거대한 제국을 되살리는 일도 황제 혼자의 힘으로 되는것이 아니었습니다. 재정은 바닥난지 오래고, 매꿀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거대한 제국의 엄청난 시스템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한 일이 있었으니, 17세기 전세계는 소빙(little ice age)의 영향 아래 놓여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16세기부터 시작했을 지도 모릅니다. 런던에서 템스 강이 얼어붙을때, 만리장성 이북 지역에서는 혹한이 일어났습니다. 유럽의 곡물가가 대거 상승할때, 명나라에는 절망적인 대기근이 닥치게 됩니다. 이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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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

1628년, 섬서 지역에 끔찍하도록 절망적인 대기근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산에 올라가 흙을 퍼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하늘은 비 한방울 내리지를 않았고, 땅은 황폐해졌습니다. 세상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모했고, 이제 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자성(李自成)을 말하는 것이며, 장헌충(張獻忠)과 같은 무리도 있었습니다.

명나라는 이제 양대전선을 상대로 싸워야만 했습니다.

주력을 동원한다면 반란군을 소탕할 수 있습니다. 산해관을 지키면 만주족은 넘어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양쪽에서 일이 터짐에 따라 어느쪽으로도 병력을 돌릴 수가 없었고, 상황은 절망적이 되었습니다. 숭정제는 가공할 적들과, 그보다 더 막강한 절망감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1641년, 마침내 만주족은 산해관 너머에서 명나라 세력을 완전히 정리해버렸고, 금주를 함락시킴과 동시에 홍승주(承疇)등을 사로잡았습니다. 같은 해 정월에 이자성은 낙양을 함락시켰습니다. 요동을 지키는 장수들은 속속 변발을 하고 만주족에 항복했고, 이자성에 대항하는 관리들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복종했습니다. 신하들을 믿지 못하게 된 숭정제는 의심병이 도져 마구 처형하고 벌을 주었고, 그러자 신하들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항복을 하게 됩니다. 지독하게 끔찍한 악순환이었습니다.

1644년. 이자성은 즉위식을 가지고, 동정군을 일으켜 삽시간에 북경 근처로 달려왔습니다. 적진을 염탐하라고 보내거나, 적을 막으라고 보낸 사람들은 모두 이자성에 항복했고 이자성 쪽에서 명조정으로 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다가오는 적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로 자금성에서는 정작 이자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자성은 내부의 첩자로 인하여 그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명나라 조정은 몰락할 운명이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이자성의 군대가 북경 안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숭정제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짤막하게 감상을 말했습니다.

"내 백성을, 괴롭히는구나."

이제 끝이었습니다.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부터 시작한 명제국도 몰락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경에, 아직 명나라의 제2정부가 남아있었고, 숭정제에게는 명나라의 황제이자 황통을 잇는 자로서 그것을 잇게 해야할 의무가 있어습니다. 그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평범한 사람의 옷을 입힌 후에 말했습니다.

"난리 속으로 모습을 감추거라. 말투를 고치고, 나이 든 사람을 부르면 어르신(翁)' 이라고 불러야 한단다. 장년인 사람을 만나면 "백(伯)"이나 "숙부"라고 부르면 된다."

그러면서 허리띠를 단단하게 매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고, 숭정제의 황후 주씨는 목을 매달아 죽었습니다.

그 무렵 이자성은, 승천문(承天門 : 천안문) 쪽으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드디어 북경에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자성은 감개가 무량하여, 화살을 꺼내 들고 승천문의 "천" 자에 화살을 견주며 말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맞추어지게 된다면, 하늘은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이라!"

화살은 빗나갔습니다. 수하들은 웃어념겄고, 이자성도 그들과 같이 궁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숭정제의 머릿 속에서 떠오른 것을 딸들이었습니다. 멸망하는 제국, 적들은 무자비한 도적때. 귀하게만 자란 딸들이 어떤 비참한 모습을 당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숭정제는 칼을 잡아들었습니다. 그리고 15살이 된 장평공주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한스럽게 부르짖었습니다.

"네가……어찌하여 우리 집안에 태어났다는 말이더냐!"

칼이 휘둘러졌고, 숭정제는 다시 6살이 된 소인공주를 찾아가서 그녀를 살해했습니다. 대체 어떤 심정으로 자신의 두 딸을 살해했을지, 숭정제의 마음 속에서 휘몰아치던 폭풍이 어느 정도일지 아무도 짐작조차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장평공주는 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딸입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어찌하여 우리 집안에 태어났냐고, 그리하여 이런 모습이 되고 마냐고 부르짖으며 칼을 휘두르는데, 그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갈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칼을 든 손은 힘이 풀렸고, 그리하여 그녀는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장평공주는 정신을 차린 후 스스로 자결하려 했지만 몸종들은 오열하는 그녀를 붙잡고 강제로 끌어냈습니다.

숭정제는 두 딸을 보내고 자신만 살아있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밤이 되자 숭정제는 백관을 불러 모으기 위해 스스로 경종을 울렸지만, 단 한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무정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명나라 조정에 악귀같은 간신들만 가득찬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황제와 마지막을 같이 하고픈 신하들도 있었지만, 북경은 이미 이자성군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자금성까지의 길은 교통차단이 내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자들의 피눈물을 뒤로 하고, 숭정제는 환관 왕승온을 데리고 자금성 뒤편의 경산에 올라갔습니다. 숭정제는 목을 매었습니다.

─ 짐은 죽어 지하의 선제를 볼 낯이 없다. 따라서 머리로 얼굴을 가린다. 적이 짐의 시체를 찢도록 하겠다. 내 백성은 한 사람도 다치게 하지 말아라.

숭정제가 마지막으로 기록한 말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대학사 범경문(范景文)은 숭정제의 죽음 소식을 듣자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예원로(倪元璐)는 북쪽으로 아버지에게 절하고 남쪽으로 어머니에게 절을 올린 후에 스스로 목을 매었습니다. 좌도어사 이방화(李邦華)는 남송의 대충신 문천상의 사당에 가서 자살했습니다. 병주우시랑 왕거언은 성벽에서 몸을 던졌고, 죽지 않자 다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형부우시랑 맹조상은 아들과 함께 자살했습니다. 부자의 아내들도 자살했습니다. 좌부도어사 시방요는 독을 먹고 순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수배는 훨씬 많을 정부의 고관들은 이자성에게 굽실거리며 찾아와 알랑거렸습니다. 구역질 나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성격의 신하도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오삼계(吳三桂)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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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 강산풍우정 中 오삼계

오삼계는 자는 월소(月所), 장백(長白)이며, 원래 집안은 강소성 고우(高郵)에 적을 두고 있었고, 아버지 오양 역시 장군이었습니다. 오삼계는 29살의 나이에 제독이 되었고, 명군 주력이 완전 소멸한 후에도 버티고 있었습니다. 오삼계는 스스로는 50만의 병력이 있다고 했지만 이는 병사와 민간인을 합한 숫자로 실제로는 5만 밖에 되진 않았으나, 그 정도 병력만으로도 청나라는 산해관을 돌파할수 없었습니다.

산해관을 수비하던 오삼계 휘하 장병은 명나라 최후의 희망이자 명 제국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최강의 정예군이었습니다. 오삼계는 자신의 군주 숭정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자 병사와 백성 50여만을 데리고 북경을 구원하기 위하여 출정했습니다. 그러나 난주 부근에서 숭정제의 자살 소식을 듣자 일단 그 자리에 머물면서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자성이 북경을 점령했고, 오삼계가 고민을 하고 있으며, 그 너머 만주족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가 어찌 전개될지는 오삼계의 선택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출처 http://cafe.daum.net/shogun/MqaT/20

문제시 자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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