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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왜의 진실..
게시물ID : history_251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들의유머
추천 : 7
조회수 : 2498회
댓글수 : 45개
등록시간 : 2016/01/29 1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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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어제야 알았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저에게 메일을 보내셨는데 그것을 확인을 못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이미 1년이 지나긴 했지만, 이사장님께서 하셨던 질문 김xx 교수님 특강에  대해서 지금 답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강의 내용에서 이야기 한 부분 일본인들은 주로 광개토대왕 비문의 왜의 활동, 그리고 송서에 있는 왜왕들이 한반도 남부의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백제와 같은 한반도 남부의 국가와 왜를 포함한 7국의 제군사를 요청했다는 내용, 이런 것들을 가지고 고대 왜가 한반도 남부를 실제로 통제했다 라고 주장한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메일로 보내드렸듯이 제가 고대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한일 번역 게시판에서 일본인들과 싸우면서 부터였다고 이야기 드렸습니다만 ,실제로 일본의 상류층 뿐만 아니라 제가 인터넷에서 접한 일반 일본인들도 이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강의 주제가 일본 상류층의 한국 인식이었다고 하니, 실제 일본인들의 고대 한일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대해서 현실을 이야기 한 교수님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마도 이런 내용에 대해서 교수님이 이것은 이렇게 되어서 잘못되었다고 이 주장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하셔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으셨다는 점 ( 혹은 못하셨거나 ) . 그리고 강의 듣는 분들중에서도 이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 주장은 이래서 이렇게 잘못되었다고 강의하시는 교수님께 반박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즉 강의실에 있는 강사분이나 강의를 듣는 분들이나 일본 쪽의 사료가 아니라 중국이나 우리 조상이 쓴 광개토대왕 비문에 있는 내용이라 혹시 이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찝짐함 때문에 강의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이겠지요. 이것이 제 추측입니다만 실제 강의에 참석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사장님께 우스갯 소리 하나 해드립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기도를 할 때에 담배가 피우고 싶었답니다. 목사님께 " 목사님 기도할 때에 담배를 피우면 안될까요?" 라고 질문을 했고 당연히 목사님은 " 주님께 기도 드리는 시간은 경건한 시간입니다 담배를 피우다니요 " 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 이 사람아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네 내가 목사님께  허락을 받아 보겠네 "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친구는 목사님께 " 목사님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울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기도를 하면 안되겠지요? "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 하느님을 영접하는 것은 그것이 언제 어떤 상황이든 좋은 일입니다 꼭 기도하십시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여대생이 밤에 술집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참 한심한 일입니다. 하지만 밤에 술집에 나가는 여자가 현실에 굴하지 않고 낮에 대학을 다닌다고 하는 것은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현상이라도 어떠한 틀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 인식은 극과 극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왜가 광개토대왕 비문에 따르면 대방의 경계까지 공격했다고 하고 ( 대방계를 황해도로 비정하신 것은 잘못입니다 요서입니다 ) 송서에 따르면 한반도 남부 국가와 왜의 대표권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왜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말입니다. 이것을 알려면 중국 사료뿐만 아니라 일본 사료도 봐야 하는데 광개토대왕 시기의 일본서기에는 응신천황이라고 하는 일본서기 외에는 실체가 확인이 되지도 않고 100살 넘게 살았다고 하는 도저히 실존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운 천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송서에 적힌 왜 5왕이 일본서기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즉위 시기와 사망 시기 혈연 관계가 전혀 다른 엉뚱한 천황들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포함하여 왜 우리는 이 왜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일까요?

 

만일에 제가 황국사관에 찌든 일본학자라고 한다면 전 단순히 광개토대왕 비문만 가지고 이야기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본서기 응신 3년 조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百濟辰斯王立之失禮於貴國天皇 故遣紀角宿禰・羽田矢代宿禰・石川宿禰・木菟宿禰 嘖譲其无禮状 由是 百濟國殺辰斯王以謝之 紀角宿禰等 便立阿花爲王而歸

이 해에(응신 3년에) 백제 진사왕이 세워지는 귀국 천황에 무례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기각숙니 우전시대숙니 석천숙니 목토숙니등을 보내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이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니등이 다시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일본서기 응신 3년>

 

일본서기의 기년은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2주갑 인상설 이런 이야기도 있구요 이 기록이 있는 응신 3년은 272년인데 2주갑 인상설에 따라 120년을 올리게 되면 392년이 되고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사왕이 죽고 아신왕이 즉위한 해가 392년입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왜인이 바다를 건넜다고 한 신묘년 왜인 도해파 의 신묘년은 역시 391년입니다. 같은 시기입니다. 아마도 391년에 왜인이 바다를 건너오기 시작해서 392년까지 진행된 긴 전쟁을 한 것일 겁니다

 

제가 일본 역사학자라면 당연히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 광개토대왕 비문의 신묘년에 왜인이 바다를 건넜다는 기록은 일본서기에도 같은 해에 응신천황이 기각숙니 등을 백제에 보내서 백제 왕을 죽이고 아신왕으로 교체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고대 금석문에도 기록되어 있고 일본서기에도 그 내용이 확인이 되는 바 이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일 간에 광개토대왕 비문 신묘년 기사 가지고 그렇게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는데 이렇게 주장하는 일본인 학자는 없었습니다. 일본학자라면 당연히 광개토대왕 비문 신묘년조에 저런 기록이 있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일본서기에서 392년에 해당하는 해의 기록을 찾아봐야겠지요. 그리고 광개토대왕 비문의 왜인 도해파에 해당하는 기사가 있는데 왜 이것을 가지고 광개토대왕 비문의 왜를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일까요?

 

바로 여기에서 일본인들의 교활함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일본 쪽에서 이렇게 주장하기 시작한다면 한국학계 일본학계 통털어서 그 다음단계로 진행이 되는 연구는 응신천황이 보냈다는 紀角宿禰・羽田矢代宿禰・石川宿禰・木菟宿禰 이 사람들이 무엇인가 하는 연구겠지요. 모두 다께우찌 스꾸네武內宿禰라고 하는 사람의 아들들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께우찌 스꾸네는 누구인가 연구를 해보면  백제계열 소가씨의 조상이 됩니다. 결국 백제계라고 하는 것이 신찬성씨록에서 추론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일본과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짜놓은 틀을 벗어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 열도에서 백제로 392년에 군사를 보낸 것은 사실같다. 그런데 어째서 일본서기에는 가공의 천황이 기록되어 있고 열도에서 왜인이 백제로 건너가지 않고 백제계열 사람들이 백제로 건너갔을까? 이런 상황은 도대체 무엇일까? "

일본서기가 열도의 역사의 시작이 신라 백제의 분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숨기기 위한 위사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저 대답은 참 쉽습니다. 응신 3년조를 다시한번 봅니다. 백제에서 진사왕이 서는 일은 " 貴國天皇 " 에게 무례한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서기면 당연히 응신천황을 我國 천황 이렇게 기록해야 할텐데 귀국천황이란 표현은 일본의 천황이 아닌 다른 나라의 천황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그리고 백제에서 진사왕이 서든 누가 서든간에 일본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게 왜 무례한걸까요

저는 저기 나오는 귀국천황은 귀수 貴須 대왕을 변형시킨 것이라고 봅니다. 백제 근구수왕이 세운 정통 후계자는 침류왕이고 그 적법한 후계자는 아신왕(아화왕)이지만 삼국사기에는 근구수왕 사후 침류왕이 잠깐 ( 2년 ) 집권하고 그 이후 아들이 아닌 침류왕의 동생 진사왕이 집권합니다. 그리고 7년 만에 사냥을 나갔다가 거기서 죽었다. 라고 하는 수수께끼 기록을 남기고 침류왕의 아들 아신왕이 집권하게 됩니다. 백제 고사료에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 문장의 원문은 아마" 진사왕이 서는 일은 근구수왕에게 무례한 일이므로  진사를 죽이고 아신을 세웠다" 일 것입니다. 결국 신묘년 왜인이 바다를 건넌 실제 상황은 왜인이 바다 건너 백제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반도 백제와 열도 백제간의 내란인 것이고 일본서기는 이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어려워 가공의 일본 천황을 창작하고 그 가공의 일본 천황이 백제를 정복한 것처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광개토대왕 비문을 세긴 장수왕은 어째서 이들을 왜인이라고 기록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출자가 백제라고 해도 열도의 세력이니 왜인이라고 하는 표현은 틀린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이것에 대한 답은 5세기 중반의 송서 왜 5왕의 이야기하고도 이어집니다

 

 高句麗・倭國及西南夷銅頭大師並獻方物

이때 ( 의희 9년)  고구려 백제 왜국 西南夷 동두대사가 함께 조공하여 방물은 헌상했다.

- 晋書 卷十帝紀第十 安帝 義熙九年 -

의희 9년은 서기로 치면 413년이고 광개토대왕을 이은 장수왕이 즉위한 해입니다. 바로 몇년전까지만 해도 호태왕 비문에 따르면 열도의 백제인 즉 왜인들이 요서까지 가서 고구려와 전쟁하던 살벌한 사이였습니다만 지금은 고구려와 사이좋게 (?) 함께 중국 남조의 진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송서 왜왕 무의 표문에서 보듯이 고구려가 길을 막으면 왜는 중국 남조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는 고구려와 함께 중국 남조의 진과 외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에 고구려는 중국남조로부터 낙랑군공의 군호를 받지만 왜는 아무런 군호도 받지 못합니다. 이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요.

 

여기서 중국 정사를 기준으로 한번 열도에서의 왕조 교체를 한번 개괄적으로 훑어 봅니다. 사실 일본서기의 허구의 만세일계로 이루어진 기록과 달리 실제로 열도에서는 서기 2- 7 세기에 걸쳐 총 4번의 왕조 교체가 있었던 것이 중국쪽의 기록을 통해 확인이 됩니다.

 

수승이라고 하는 왜왕이 중국 漢에 조공을 하였고. 그 유명한 비미호가 중국에 조공한 후에 왜에는 큰 대란이 일어나서 종녀인 대여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이 3세기의 일인데 그 이후 근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왜왕 뿐만 아니라 왜에  대한 기록자체가 중국 정사에서 사라집니다. 일본인들이 수수께끼의 4세기라고 표현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100년 넘는 공백 기간을 거친 후에 비로소 중국 정사에 왜는 413년 장수왕 즉위 원년에 고구려와 같이 중국 남조에 동진을 방문한 기록이 나옵니다. 송서 왜 5왕 시대의 시작인데 이들 송서 왜 5왕은 기존의 비미호 세력과는 전혀 다른 왕조입니다. 백제 왕들이 여씨 성을 가지고 외교를 했듯이 이들 송서 왜 5왕은 왜씨 성을 가지고 중국 남조에 외교합니다. 이런면에서 보면 기존의 비미호 수승과는 다른 별개의 왕조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송서 왜 5왕의 기록은  502년 왜왕 무가 정동 대장군이 되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소멸됩니다. 그리고 수나라 때에 중국에 사신을 보내기도 하고 열도에 수나라 사신을 받아들이기도 하는 왜왕은 기존의 왜씨 대신에 자신의 성을 아메라고 하고 이름이 다리사비고 라고 합니다. 이 왕은 송서 왜 5왕과 다른 계통의 왕입니다. 즉 열도에서 6세기에 정권 교체가 일어나서 송서 왜 5왕은 다른 세력으로 교체된 것입니다. 송서 왜 5왕이라고 하는 왜씨 성을 가진 왕조의 존립기간을 추측해보면 광개토대왕과 왜의 전쟁이 끝나고나서 장수왕이 전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제 질서를 수립하려고 하는 시기에 생겨나기 시작해서 502년 이라고 하는 한반도에서 고구려 세력을 몰아내는 무녕왕이 집권하는 시기에 그 기록이 소멸한다는 이 부분은 역시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즉 이들 송서 왜 5왕의 존립 기간을 볼 때에 고구려의 영향하에 세워진 정권일 가능성이 높고 최소한 고구려의 한반도 남부 혹은 일본 열도에서의 군사적 지배와 결코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광개토대왕 비문 영락 10년 기록을 보기로 합니다.

 

400년 기사 : 십년 경자에 보병과 기병 오만을 파견하여, 가서 신라를 구하였다. 남거성에서 나아가 신라성에 이르렀는데, 왜인이 그 가운데 가득하였다. 관군이 이르자 왜적은 물러갔다. □□□□□□□□□ 급히 뒤쫓아 임나가라에 이르러 발성까지 쫓으니, 성이 곧 복속하자 돌아왔다. 안라인으로 와 신라성, 성을 병사로 지키게 하자, 왜구가 크게 무너졌다. □□□□□□□□□□□□□□□□□□□□□□□□□□□□□□□□□□□□□□□□□□□□□□□□□□□□□□□□□□□□□□□□□□□□□□□□□□□□□□□□. 옛날 신라 매륵이 직접와서 나라의 일을 보고하지 않았는데, 국강상광개토태왕이 매금에게 □□□□□□□□조공하였다.

 

원문: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 □□背急追 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5] 新羅城 倭寇大潰 城▨▨▨□□□安羅人戍兵[5]□□□□□□□□□□□□□□□□□□□□□□□□□□□□□□□□□□□□□□□□□□□□□□□□□□□▨▨▨ 安羅人戍兵.[5] 昔新羅寐錦未有身來論事[3] []上廣開土境好太王 □□□□ 寐錦□□□□□□朝貢.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실제 기록을 추측에 의존해야만 하는 광개토대왕 비문입니다만, 광개토대왕과 왜의 전쟁의 양상은 광개토대왕이 왜를 공격하기 위해서 임나가라의 종발성이라고 하는 곳 까지 왜를 추격하였다는 것 그리고 안라인 安羅人이 이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비문에서 추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임나任那라는 단어가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확인이 되는 순간입니다만

이 임나라고 하는 곳은 어디에 존재했던 것일까요? 문헌을 통해서 보면 이 임나라고 하는 지역이 반드시 반도남부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任那者。去筑紫國二千餘里。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임나는 축자국에서 2천여리 떨어진 곳에 있다. 북쪽으로 바다를 접하는 곳에 있고 계림의 서남쪽이다. 

일본서기 숭신천황  65년 7월

그 기록의 신뢰성을 의심 또 의심해야 하는 일본서기 기록입니다만 여기에서 임나는 " 북쪽으로 " 바다를 접하는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남부에서는 북쪽으로 바다를 접하는 곳이 없습니다. 북쪽으로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대마도나 일본 열도 어디인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나가라의 종발성까지 추격하여 안라인을 배치했다는 이 지역은 반드시 반도 남부로 한정되지 않고 열도에서 있었을 가능성 또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추론한대로 광개토대왕이 왜에게서 얻은 승리가 이후 장수왕대에서 국제 사회에서 왜를 고구려의 하위 국가로 인식시키는 행위를 할 정도였다면 이 승리는 단순히 반도 남부에서의 승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일본 열도까지 침입해서 태왕 비문의 표현 그대로  倭寇大潰 하였다면 그와 관련한 사료들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안라유물출토분포.png

 

최근 한국 고고학 자료와 일본 고고학 자료사이의 연관성을 집대성한 박천수라는 분이 쓴 일본속의 고대 한국 문화라는 책에서 보여준 아라가야 유물의 분포도입니다. 아라가야의 유물 분포도를 보면 단순히 반도 남부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이것이 시코쿠 나라분지 등에까지 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이 왜와 전쟁을 벌였다는 임나라는 지역은  단순히 반도 남부가 아니라 열도까지 분포되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사료 그리고 전쟁 후에 사후 통치를 맡았던 안라 = 아라가야의 유물 분포 역시 그에 따라서 반도와 열도에 걸쳐서 존재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용한 박천수님 일본속의 한국 고대문화에서는  이것을 교역의 산물로 봅니다. 하지만 4-5 세기에  고구려 편에선 안라와 왜는 전쟁 상대국이었습니다. 교역 이런 이야기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추론해 보고 송서 왜왕들의 표문을 다시 살펴 봅니다.

 

송 원가 15년 서기 438년의 기록입니다.

贊死,弟珍立,遣使貢獻。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왜왕 찬이 죽고 그의 동생 진이 계승하여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스스로 칭하길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 함.

表求除正,詔除安東將軍、倭國王。

정식으로 임명해주기를 요청함. 하지만, 왜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송나라 문제는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는 관직만을 제수함.

 

앞에서 보았듯이 일본 열도의 백제와 임나의 세력도 보았습니다. 열도에서는 여러 문헌과 유물에서 확인이 되듯이 신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모한 진한이라고 하는 당시에 한반도 남부에 없었던 국가들의 기록입니다. 진한의 경우 이미 한반도 남부에서 표문을 올린 438년 이전에 이미  멸망한 국가입니다. 이미 표문에 그 진한을 계승한 신라를 넣었는데 중복해서 진한을 넣는다는 것은 어색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답은 진한은 왜왕이 표문을 보낸 438년에도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도가 아닌 열도에서 입니다.

 

서기 608년 수나라 대업 4년에 수나라에서는 왜에 배청이란 사신을 파견합니다. 배청은 자신이 보았던 秦王國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배청의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又東至秦王國  其人同於華夏   為夷洲   疑不能明也

또 동쪽으로 가서 진왕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사람들은 중국인과 같이 생겨서 오랑캐 마을을 이루었다, 비슷하기는 하나 명확히 밝힐 수는 없다.

< 수서 배청의 열도 방문 기록 중에서 >

왜인과 다르게 생기고 중국인과 똑같이 생겼지만 중국인은 아닌 한반도 도래인 구체적으로 진한 사람들을 접하고 이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 韓이 王으로 바뀐 것은 韓이 원래 왕이란 뜻인 것을 알고 한자로 번역한 것일 겁니다 ) 진한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3세기에 멸망한 국가가 아니라 7세기까지도 열도에서 존재한 국가인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송서 왜 5왕이 주장했던 6국 제군사의 요청은 한반도 남부보다는 당시의 열도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요청한 것이고 이런 요청을 한 왜왕의 실체는 고구려 대신 왜의 통치를 위임받은 안라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서두에 이야기 드렸듯이 이 왕조는 장수왕의 외교 정첵과 관련하여 탄생한 국가들인 것입니다. 그 외교정책은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는 우리 고구려가 평정하였으니 이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던 백제는 잊어버리고 앞으로 우리의 대리인인 왜가 반도 남부와 열도의 이 나라들을 통치할 것이다. 라는 내용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는 제 취지를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송서 왜 5왕이 한반도 남부의 국가들의 군호를 요청했으니 고대 한반도가 왜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서 변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그래서 너희들이 주장하는 그 왜가 무엇인데? 어째서 너희들은 그 왜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데? 이렇게 말입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이런 부분을 일반분들한테 설명하니까 무척 어려워 하시는데, 저 같은 평범한 일반인이 추론한 내용이므로 절대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 쉬운 내용입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반도 중심의 사관으로 신라 백제를 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명드리면 상황을 이해하시더군요. 고대 로마제국의 갈리아 총독 케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점령했다. 이것을 가지고 고대 프랑스인 갈리아가 고대 이탈리아인 로마를 점령했으니 프랑스는 고대에도 이탈리아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얼마나 우습냐고, 이렇게 말입니다 현재의 이탈리아는 어떨지 몰라도 고대의 로마는 대 제국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현대 이탈리아 인들을 세뇌를 시켜서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시절에도 반도 못 벗어났어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 고대사 이야기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조금 수긍을 하십니다 고대 백제 신라가 반도 남부의 국가는 아닙니다 특히 백제는 열도 한반도 신라 그리고 중국 대륙에 걸친 대제국이었습니다. 이것을 반도 남부의 국가라는 전제하에 논리를 전개하니까 이런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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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9 12: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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