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 기독교 성가 하면 당장 떠올리는 게 오간의 멜로디를 배경으로 해서 소프라노와 테너 그리고 베이스가 합창하는 모습입니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멜로디이죠. 오간 연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여성과 남성의 합창은 거의 반드시 등장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음악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것입니다.
사실 중세의 성가는 무반주로 오직 남성의 목소리에 의존했었습니다.
이를 두고 <그레고리안 성가>라고 하죠.
<그레고리안 성가>의 특징은 남성 수도승들이 장엄한 목소리로 신을 찬미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 세계관에서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였기 때문에 찬송가를 부를 수 없었고, 그리고 음악은 불결한 것이었기 때문에 찬송가를 장식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의 이슬람교와 굉장히 유사하죠.
백문이 불여일견
한 번 들어보도록 하죠.
중세내내 이것이 스탠다드였지만, 15세기에 들어서 엄청난 파격을 선보인 이가 있었습니다.
Josquin Des prez라는 인물입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배웠고, 당시 번지고 있었던 인문주의 사상에 매료되, 다양한 파격적인 기법을 선보입니다.
먼저, 음악에 여성을 참여시켰습니다.
이는 남성이 독점하고 있었던 음악계에 큰 충격을안겨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이게도 당시 민간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악기를 미사 연주에 사용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단성(하나의 목소리)의 음악은 곧 다성(여러 목소리 - 엘토, 소프라노, 베이스 등)음악으로 발전했고, 2성, 3성을 넘어 심지어 6성까지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당시 가톨릭 교회의 교황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고, 오히려 지원을 하는 성향의 인물이었고, 이에 그는 교황합창단의 일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작곡한 곡을 한 번 들어볼까요?
<아베 마리아>
Josquin Des Prez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후학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트렌드는 이어지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교황청의 보수적인 성직자들은 다성음악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했고, 끊임없이 다성음악을 금지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전임자의 명성을 훨씬 뛰어넘는 괴수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Giovanni da Palestrina
이탈리아 태생인 그는 일찍이 음악에 두각을 나타냈고, 그의 고향인 팔레스트리나의 주교는 그를 로마에 적극적으로 추천했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그는 수많은 미사곡을 작곡했고, 결국 교황의 눈에도 띄게 되어 성베드로성당의 공식 음악가로 뽑혔습니다.
그는 Josquin Des Prez에 이어 더 파격적인 다성음악을 선보였습니다.
단조로운 멜로디를 뛰어넘어 다양한 기교를 도입했고, 그리고 악기도 전례없는 수준으로 사용했습니다.
일부 주교들은 그를 신성모독으로 비난했었지만, 당시 교황은 아무래도 그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왕성한 활동을 했고, 수많은 미사곡을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수파들의 반발에 못이겨서인지 교황은 그를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쫓아냈고... 대신 성 라테란 대성당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고! 성 레테란 대성당은 베드로대성당 다음 가는 최고 명성의 교회였습니다. 아무래도 교황은 그를 완전히 내치고 싶어하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팔레스트리나의 지휘 아래 수많은 명곡들이 탄생했고, 그가 도입한 다성음악과 현란한 기교는 후대까지 이어져 유럽의 음악이 풍성해지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팔레스트리나의 명곡들을 한 번 감상해보시죠.
Missarum Liber Pri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