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대한제국 시기 개혁 중, 국가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개혁 중 하나가
조세행정의 개혁 시도로 보입니다. 이전 탁지부로 일원화된 조세행정이 지방의 잦은
조세 미납과 여러 부서로 징세권을 나눠주면서 업무가 복잡해지자, 고종은 내장원을 중심으로 조세제도를 개편하려고 합니다.
다만 국가기관의 재편으로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아닌 군주 입맛대로 다룰 수 있는 직속기관을 이용한 것으로 보아
개편을 통해서 업무가 포화하고 복잡해진 탁지부를 지원하거나, 궁극적으로 대체하기 위한 조직으로 키우려고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고종도 복잡해진 조세행정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내장원 중심의 구조 변경은 탁지부의 업무는 그대로 놓고 단순히 내장원과 궁내부 소속의
토지를 늘려 탁지부로 갈 결세를 빼앗는 결과를 낳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일반 농민들이 궁내부와 내장원에 투탁하는 경우도 있었고
탁지부가 학교나 병원, 지방행정기관에 비용 충당을 위해 제공한 토지들을 내장원과 궁내부 소속으로 변경시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조세행정을 단순화하기 위한 시도는 조세행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만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문자 그대로
헬게이트를 오픈하게 됩니다.
이 시기 탁지부, 내장원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권한으로 조세를 걷는 집단으로는 군대, 특히 진위대가 있었는데
중앙에 주둔하는 시위대나 친위대는 탁지부가 우선적으로 비용을 책정하여 지급하였기 때문에 급료 지급 등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으나,
지방에 주둔하는 진위대의 경우에는, 심지어는 서울과 인접한 강화진위대 조차도, 탁지부의 재정부족으로 군부에서 책정된 예산을 타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탁지부는 탁지부-군부-진위대로 가야할 예산의 흐름을 진위대에게 직접 일부 지역의 징세권을 주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원칙적으로는 탁지부의 조세 수취, 내장원과 관련된 잡세 수취 정도가 지방의 농민에게 부과되어야할
세금이어야 했지만, 탁지부의 조세행정이 복잡해지고 난항을 겪으면서 진위대에게 제대로 된 징세지역을 넘겨주지 못하게 되는 경우,
-이미 탁지부가 조세를 다 걷어간 지역이거나 조세수취를 부담하지 못할 지역이거나-가 종종 일어났습니다.
결국 일부지역에서는 탁지부와 내장원이 걷어간 지역에 군인들이 와서 조세를 재수취하는 경우도 왕왕 일어나게됩니다.
더욱이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징세권 부여가 현실과 동 떨어져 진위대가 요구하는 예산과 비슷한 수준의 금액을 걷을 수 있는 지방행정기구에 이획되는 경우도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함경도에 주둔하는 진위대의 징세권 지역을 경남 사천, 함안 일대에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진위대가 주둔하는 곳에서는 진위대 군인들이 주둔지 인근의 농민, 주민들에게 통행세 같은 잡세나 명목에 없는 세금 등을 걷는 일이
잦았습니다. 또한 중앙관제와 지방관제의 최고위직은 비교적 근대적 개혁에 의해 혁파되거나 신설되어 새로운 옷을 입은 것에 반하여
지방해정의 하부조직은 여전히 이서층에게 의존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 조세행정의 책임자로 떠오른 이들 이서층의 탐학과
이서층과 결탁한 지방관의 탐학도 견제하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여기에 구조적으로 지방행정기관의 운영비용등을 지방행정자체에서
잡세로 충당하는 관례가 이전부터 이어져왔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특이한 지역으로는 제주도가 있는데, 제주도의 목장을 관리하기 위해 타 시위대나 진위대에서 병력을 보낼 뿐 만 아니라, 제주도에도 주둔하는
진위대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제주도 주민의 고통이 가중되었답니다.
결국 내장원 중심의 조세행정 개편 움직임은 일부지역에 탁지부 조세 수취+내장원 잡세 수취+진위대의 수취 및 탐학+지방관의 탐학+이서층의 탐학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상태를 낳게 되었고 농민의 부담을 한층 무겁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지방의 농민들이 고통받는것에 비하여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의 재정-탁지부-은 언제나 부족한 편이었는데, 이것은 조선-대한제국의
법정세율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에 정한것과 같이 탁지부+내장원 잡세 정도면 농민들에게 그리 큰 부담이 아니었지만 여기에 진위대의 잡세나
지방관 이서층의 탐학이 겹치면서 생긴 문제로 보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내장원의 권한확대는 상업부문에서 뜻밖의 피해자를 낳게 되는데, 내장원에 대한 광무개혁시기 정부 주도로 의해 설립된
상업회사들이 잡세, 영업세등의 납부에 대한 특혜로 조선시대 시전상인들과 같이 일부품목을 독점 판매하는 권리를 획득함에 따라
서울과 경기의 영세 상인들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