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이 있습니다.
1. 배우자와 함께 떠납니다.
2. 본인과 배우자 모두 직장을 관둡니다.
3. 생후 1개월 된 첫째 아이와 함께 가야합니다.
4. 집도 다 팔고 가야합니다.
5. 이 여행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6. 보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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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독일인 친구가 서른 후반의 나이에 그렇게 다니던 독일회사를 관두고 세 식구 여행을 떠난 지가 벌써 1년 째입니다.
2014년 봄, Frank Turner라는 가수의 "Peggy Sang The Blues"라는 노래를 듣고 불현 듯 결심했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하지 않은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는 가사는 그 친구와 그의 아내에게 큰 파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굿바이 메일을 받은 날, 놀라지 않은 동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러움? 걱정? 조롱?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느낌은 걱정보다는 부러움이 먼저였던 것 같네요.
부부가 인생의 기로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같은 곳을 향해 즐거이 나아갈 수 있다는 건 세상 없을 축복이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가끔씩 그 친구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봅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태국, 일본...
때론 텐트에서, 때론 낡은 중고 미니 밴에서 생활하는 모습들.
그 사진들 속에서 친구의 자라나는 턱수염, 구릿빛으로 변해가는 와이프,
그리고 처음엔 기다가, 그리고 서다가, 마침내 걷기 시작하는 아기의 모습.
모르겠습니다. 마침내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가야할 때의 막연함이 지레 걱정되긴 하지만
얼마나 행복한 순간 순간일런지 타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해보겠지요.
당신은 당장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짝은 당신의 눈빛에서 빛나고 있는 미래를 함께 바라봐 줄 수 있습니까?
혹은 작정한 짝에게 순순히 동의해줄 수 있습니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차마 행하지 못할 저이기에 그들의 삶이 여느 선지자들의 삶인냥 경의롭습니다.
부디 그들의 앞날에 영원토록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