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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친일 이병도 '식민사관에 맞선 학자'????
게시물ID : history_248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룡815
추천 : 2
조회수 : 73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1/07 09:08:21
뉴라이트 교과서에선 이미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로 배우는 애들은

여기 에서 자타가 다 인정하는(인정안하는 분들은 현재까지 못봤습니다)

친일사학자 이병도를 

'식민사관에 맞선 학자'라고 배우고있죠

국정교과서...서술자들 익명이라 누가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뽑히는 사람중에 이병도후학도 많을거고

그러면 

곧 국정교과서도 그렇게 할거라고 믿어 의심치를 않습니다.




http://media.daum.net/society/education/newsview?newsid=20130905060505557

친일 이병도 '식민사관에 맞선 학자'.. 김구는 축소, 이승만 띄우기

뉴라이트 ‘교학사 역사교과서’ 우편향 기술 논란경향신문 | 송현숙 기자 | 입력 2013.09.05. 06:05 | 수정 2013.09.05. 06:29
지난 2일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한 일반인들의 교과서 열람이 시작되면서 '우편향' 논란에 휩싸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도를 넘는 서술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사학자 이병도는 식민사관에 맞선 인물로 미화했다. 
대한민국 건국준비활동 항목에서 이승만은 상세히 소개됐지만 김구는 사라졌으며, 을미사변과 맞물려 명성왕후 시해 살인범의 회고록을 실은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 "이병도, 진단학회를 조직해서
민족주의적 역사연구에 기여"
조선사편수회 친일행적과 상반


▲ 건국준비 항목 김구 이름 전무
이승만은 17번이나 언급해 대조
무장투쟁보다 외교운동에 편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과 시민들은 4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090차 정기 수요시위를 열고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 거부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 김창길 기자

■ 이병도가 민족사학자 신채호 반열로

교학사 교과서는 이병도에 대해 진단학회를 조직해 식민사관에 맞선 인물로 서술했다. 

'민족문화 수호 운동의 전개'(266쪽) 부분에서 "우리 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을 주장하는 일제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에 맞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역사 발전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역사 연구가 활발해졌다"고 기술한 뒤 박은식·신채호·정인보·문일평·백남운 등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어 "이외에 이병도와 손진태 등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는 실증사학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풍을 세웠고, 1934년 진단학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의 역사 연구는 모두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하였다"고 서술했다. 이병도를 포함해 모두 뭉뚱그려 식민사관에 맞선 것으로 그린 것이다. 진단학회 조직은 중요한 사건만 제시하는 단원 개관의 연대표에도 들어가 있다. 이 연대표에 임시정부 수립은 빠졌다.

이러한 평가는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가 국사학계 태두로 서울대에 있으면서 한국사 전반에 식민사관을 정설로 굳혔다는 재야학계 비판은 물론 기존 역사학계의 평가와도 동떨어진 것이다.

도면회 대전대 교수는 "일제시기 이병도의 논문은 일본인들도 우수성을 인정했다"며 "그러나 일본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일본인 학자들과 경쟁한 것으로, 이병도가 식민사관에 맞섰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이병도는 일제가 식민사관을 심기 위한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고, 유림의 친일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평의원까지 지내는 등 논란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
라며 "교학사 교과서는 각 분야의 친일작업을 희석시키겠다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쓰여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의아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0627.html

국정 역사 교과서 ‘얼굴마담’의 품격

공개된 집필진 신형식·최몽룡, 식민사관 집대성한 이병도의 제자 최몽룡은 성희롱 논란으로 이틀 만에 자진 사퇴

제1086호
 
2015.11.09


보수 원로 사학자인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국정 역사 교과서 대표집필진으로 나섰다. 신 교수는 11월4일 국사편찬위원회가 마련한 국정교과서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했지만(왼쪽), 최 교수는 제자들의 만류로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한 채 자택에서 언론사 취재에 응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연합뉴스

국정 역사 교과서가 첫 민낯을 드러냈다. 편찬 책임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11월4일 국정 역사 교과서 대표 집필진 2명을 처음 공개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신형식(76·사학)과 서울대 명예교수 최몽룡(69·고고미술사학)이 각각 선사시대와 고대사의 집필 책임자로 정해졌다. 대표 집필진 공개 이틀 만에 최몽룡이 자택에 취재 온 여기자를 성희롱했다는 논란으로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구성 작업은 일단 돛을 올렸다.

공개된 대표 집필진은 선사시대·고대사 부문

모두 6개 분야로 나뉜 시대사별 대표 집필진 가운데 고려·조선·근대·현대사 분야 4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국편은 브리핑에서 “(나머지) 대표 집필자가 거의 확정된 상태”라면서도 “당사자들과 충분히 검토하고, 집필에 방해가 없을지 따져서 적당할 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대표 집필진을 포함한 실무진은 중학교 교과서(역사) 21명, 고등학교 교과서(한국사) 15명이 배정됐다. 국편 누리집에서 11월4~9일 ‘교수·연구원·현장 교원’을 대상으로 25명 규모의 집필진 공모에 나섰다. 일부는 초빙 방식으로 구성된다.

국편은 신형식과 최몽룡을 ‘얼굴마담’으로 활용했다. 일단 이들을 앞세워 새 교과서의 권위를 올리고, ‘집필진 비공개’ 논란을 최소화하자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들이 역사학계 원로인데다, 새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의 핵심인 근현대사를 직접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최몽룡은 대표 집필진으로 초빙된 경위를 묻는 질문에 “말이 대표지, 진짜는 근현대사를 다루는 사람들이 대표 집필진이다. 나를 끌어들여야 김(정배) 위원장이 산다. 나는 그냥 방패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말이 대표지, 진짜는 근현대사를 다루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냥 방패막이다.”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하지만 새 국정교과서를 두고 ‘친일·독재 미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유이하게’ 공개된 대표 집필진이 친일 역사학자이자 지금까지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정교과서 총대를 멘 김정배 국편 위원장도 이병도와 함께 식민사관을 만든 친일학자 신석호(1904∼81)의 직계로 꼽힌다.

새 국정 역사 교과서의 선봉에 나선 이들이 친일학자들과 어떤 연관을 맺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부교수는 책 <식민지 불온열전>(2013)에서 “일제 시기 최고의 역사 전문가라면 이병도와 신석호”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들은 ‘조선사편수회’를 다니며 본격적인 역사학자로 발돋움했다. 편수회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정당화할 이론적 토대와 조작된 식민사관을 집대성한 곳이다. 한국사를 교묘하게 뒤트는 방식으로 친일에 가담하는 이른바 ‘연구보국’을 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신인 반민족문제연구소 시절 윤재식 연구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사의 전개 과정이 외세의 간섭과 압력에 의해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 타율성론과, 왕조의 교체 등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 구조에 아무런 발전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설명하는 정체성론이 식민사관의 핵심이다. 이렇게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핵심으로 하는 식민사관을 제도적으로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조선사편수회이며, 그 대표적 성과물이 <조선사>라는 저서다.”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1938)를 보면, ‘을사오적’의 하나인 이완용이 편수회 고문으로 참여해 당시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고 있던 문중의 족손(族孫) 이병도를 발탁한 것으로 돼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이병도는 와세다대학 출신으로 편수회의 촉탁을 받아 일본인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와 함께 10년여에 걸쳐 <조선사> 1~3편을 편찬했다. 당시 함께 일한 이가 신석호였다. 그는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1929년에 졸업하고, 해방 즈음까지 편수회 수사관으로 재직했다.

친일 유산 후학에 남긴 이병도·신석호

문제는 이들이 해방 뒤 친일의 허물을 벗고 우리 역사학계를 주무르며 친일 유산을 후학들에게 남겼다는 점이다. 신석호는 해방 뒤 임시중등국사교원양성소를 만들어 국사 교사들을 가르쳤다. 국편의 전신인 국사관에서는 1946년부터 3년간 관장을 맡았다. 이후에는 고려대, 성균관대, 영남대 등에서 교수, 학장, 대학원장을 거치며 후학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줬다.

또한 이병도는 1946년 9월 서울대 문리대학 교수를 시작으로 국민대, 성균관대를 거치며 현재 주류 사학계의 원로가 된 학자들을 키웠다. 그는 1955년 국편 위원을 거쳐 1960년 문교부 장관이 겸직하는 국편 위원장도 맡았다. 친일 행위를 했던 이들이 입맛대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고, 국사 교사를 양성하는 일을 책임진 셈이다. 이 불편한 유산을 지금 국편이 고스란히 다시 짊어지고 있다.

이들의 서울대와 고려대 직계 제자로 꼽히는 이들이 신형식·최몽룡·김정배다. 신형식은 이병도가 서울대 교수에서 문교부 장관으로 떠나던 1961년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이번에 ‘올바른 역사 교과서 찬성 교수’ 지지 의견을 낸 원로 사학자 7명 가운데 하나이자, 2년 전 ‘친일 독재 미화’ 논란이 빚어졌던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하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 중학교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했고, 1994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국사편찬위원을 맡기도 했다. 신형식은 최근 ‘황교안 총리가 현행 교과서의 99.9%가 편향됐다고 한 데 공감하냐’는 질문에 “그 사람들이 거짓말 시켰겠습니까? 약간의 문제가 있겠지요”라며 안이한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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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06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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