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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의 조선시대 버전인 황사영 백서사건...
게시물ID : history_247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회색빛병뚜껑
추천 : 0
조회수 : 1074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1/03 17:40:29
3년전 북한이 남침해올시 이에 호응해서 혜화동 통신시설과 평택의 유류저장고를 폭파시켜고 남한내부를 혼란에 빠뜨리자고 주장하다가

온국민의 분노와 황당함을 샀던 이석기사건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조선에서 가톨릭을 탄압한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이를 타개해보겠답시고 이석기처럼 황당한 방법을 구사했는데 바로 중국의 북경에 거주중이던

구베아 주교에게 청나라나 프랑스에게 조선을 정복하고 기독교 포교를 자유롭게 해달란거였죠..

백서에 적힌 방안이란게

1. 청 황제가 칙명을 보내 포교를 허락하게 해달라.
2.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만들어 청의 풍속을 따르게 해달라.
3. 청의 친왕(親王)을 조선에 보내 다스려 달라.
4. 조선의 왕을 청 황제의 부마로 삼아 다음 대의 왕들이 충성을 다하게 하라.[2]
5. 이상의 방안이 먹히지 않을 경우 프랑스 황제가 직접 군대를 보내 조선을 정복해 달라.

같은 황당무계한건데 청나라나 프랑스가 이를 빌미삼아서 조선에 무력침공을 해왔으면 지금쯤 한반도는 중국의 조선성으로 전락해 버렸을것이었고

프랑스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침입해왔다면 임진왜란2를 찍었을겁니다....당시에는 이미 조선과 서구 제국주의의 군사적 무기적 격차가 수백년에

이를만큼 어마어마하게 벌어지던때였거든요...

프랑스가 아프리카와 동남아에서 벌이던 학살을 볼때 조선에도 침공을 해왔으면 보급문제와 청나라의 지원으로 막았을 확률은 크겠지만 어마어마한

민중들의 학살은 피하지 못했을겁니다...

굳이 이석기와 비교를 하자면 청나라나 프랑스둘다 현실적으로 침입가능성은 적었겠죠....우선 청나라는 기독교를 비롯한 서양의 세력을 탐탐찮게

여기고 있었고 기존의 유교적질서를 따르고 있었기때문에 조선을 무력정복할지라도 기독교전파를 허용할 가능성이 전무했고 프랑스 역시 아직

베트남정복이 이루어지기전이라 중간기지가 없었던데다가 당시 한창 나폴레옹 전쟁중이었거든요...

다만 지금이나 조선시대에나 외국군대로 자국을 정복해서 민중들이 죽든살든간에  자기가 원하는걸 이루려고 들려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네요...
출처 황사영 백서사건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C%82%AC%EC%98%81_%EB%B0%B1%EC%84%9C

https://namu.wiki/w/%ED%99%A9%EC%82%AC%EC%98%81%20%EB%B0%B1%EC%84%9C%20%EC%82%AC%EA%B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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