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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성군의 기질은 있었으나 의외로 주목받지 못하는 황제
게시물ID : history_247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침
추천 : 5
조회수 : 122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01/03 15: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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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西北明積雪
萬戶凜寒飛
惟有深宮里
金爐獸炭紅
서북은 쌓인 눈으로 밝은데
백성들은 추위에 떠는구나
오직 궁중 안에서
육포를 굽는 황금난로의 재만 붉구나

"윗사람으로서 먼저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
백성이 배고프면 나 또한 배고프다."




청조 11대 황제 광서제(光緖帝)애신각라 재첨(愛新覺羅 載湉)

어릴적부터 개념이 있었던지 학문을 즐기고 부지런했음.
꼬맹이 시절에 신하들을 만나고는 "호남에는 아직도 가뭄이 들었습니까? 북경에도 가뭄이 심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비를 원합니다." 라고 말하고 서태후로부터 '앉으나 서나 공부한다'고 칭찬듣기도 함.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정무를 보았고
34년 제위기간동안 모친상으로 11일간 빠진걸 제외하면  조정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적은 없었음
서양 문물에 별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개방적이었는데다 영어를 배울 정도로 호기심도 많아 유럽에서도 이미지가 좋았던 군주
의화단의 난때 8국과 맞서는건 자살행위라는걸 예상하고 서태후에게 간하기도 함(서태후는 씹었지만)
민국 초기의 역사학자 범문란은 광서제를 "서양의 사고를 받아들일수 있었던 만주 귀족" 이라고 호평

근데 이양반 10년동안 영대에 유폐되었다가 서른여덟에 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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