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할 이야기는 컴퓨터의 입력장치들 중 가장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도구인 키보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한성컴퓨터 GTune MKF10 RGB
Keyboard.
현재 쓰이는 컴퓨터 입력장치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는 유서깊은 부품입니다.
고대의 공룡들도 키보드를 사용했을 만큼 오래되었죠.
컴퓨터를 구성하는 장치 중 가장 밀접하다 보니 사용자에 따른 체감 차이가 심한 편에 속합니다. 2만원짜리 멤브레인 키보드를 무난하게 잘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스위치에 같은 제조사의 물건이라 하더라도 기종 변경이 곤란한 사람이 있을 정도. 그래선지 직접 쳐보지 않고서는 자기가 만족할 만한 것을 찾기는 쉽지 않은 편입니다. 그래서 수도권에 살면서 키보드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키보드를 구매하기 전에 용산에서 직접 타건해보기도 하죠.
그 옛날 고대에 천공카드를 쓰던 시절에는 입력장치라고 해봐야 스위치나 버튼이 다였죠. 이를 개선하여 타자기와 비슷하게 글자를 잔뜩 배치한 판을 이용하여 입력하는 방식을 고안하고, Key가 잔뜩 박혀 있는 Board라고 해서 Keyboard, 글자가 잔뜩 박혀 있는 판이니까 자판(字板)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즉 키보드는 타자기의 자판을 컴퓨터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죠. 당시에는 가장 효율적인 입력수단이라서 그런지 1975년에 나온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부터 키보드가 컴퓨터에 붙어서 나왔습니다. 사실 마우스는 그보다 이른 1965년에 개발이 되었지만,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라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윈도우 이전 MS 도스 시절, 마우스는 하등 쓸모가 없었죠. 그래서 컴퓨터가 까만 화면에 글자가 아닌 아이콘이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마우스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겁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키보드는 단순한 입력장치가 아니라 각종 게임의 컨트롤러로도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에는 키보드의 성능이 좋지 않아 게임패드를 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후 게임에서 여러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하는 경우가 생기고 메뉴 항목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버튼이 많은 키보드가 컴퓨터 게임의 컨트롤러로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고급 키보드의 수요도 늘었죠.
키보드도 기계인 만큼 구동 매커니즘에 따라 분류할 수 있습니다. 구동 매커니즘에 따라 기계식 키보드, 레이저 키보드, 멤브레인 키보드, 팬터그래프 키보드, 플런저 키보드, 버클링 스프링 방식 키보드,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 키보드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계식 키보드(Mechanical Keyboard)
반발력을 내는 스프링을 포함한 다수의 부품이 맞물린 구동부가 스위치를 만들어 한 개의 키를 이루는 방식. 가장 흔히 쓰이는 멤브레인 방식에 비해 적은 힘으로도 잘 눌리면서도 눌렀을 때 확연한 구분감 혹은 쫄깃한 반발력에 취해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가벼운 키 압력 덕분에 작가와 프로그래머 등에게 특히 선호도가 높죠.
사실 기계식은 7~80년대부터 사용되어온 오래된 방식이지만, 90년대 들어서는 '최신식' 멤브레인 키보드가 보급되어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폭발적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비교적 낯선 방식입니다. 현재는 독일의 체리社에서 내놓은 스위치를 이용한 기계식 키보드가 대부분입니다.
스위치 접점이 버티는 한 계속 동작하기 때문에 고무가 쉽게 마모될 우려가 있는 멤브레인에 비해 내구도와 신뢰성이 높아 스위치당 5천만회 입력 가능 등의 슬로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스위치 단위로 분해가 가능하므로 커스터마이징도 비교적 쉽죠. 참고로 보강판이라는 것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그럴 경우 아무리 가벼워도 1kg은 훌쩍 넘기는 중량을 자랑합니다. 타건 중 키보드가 잘 밀리지 않는 것은 부수적인 장점.
기계식 키보드 구동의 핵심은 스프링으로, 스프링의 강도와 탄성, 스위치(축)의 구조에 따라 다양한 촉감과 반발력, 소음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복원력 그래프의 형태에 따라 클릭, 넌클릭, 리니어 스위치 등으로 구분하게 되는데, 그 외에도 보강판의 유무 및 설치 방식, 키캡의 재질 등의 차별점이 다양하기 때문에 입문자는 직접 타건을 해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기계식 키보드에는 여러 방식의 축을 사용합니다. 여기에서는 체리 축을 가지고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릭(청축)
키를 누르면 '짤칵'하는 소리를 냅니다. 기계식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걸쇠가 입력이 되었다는 것을 가장 요란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라 입문자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방식이죠. 아래의 갈축에 비해 첫 반발력은 좀더 강한편이고 걸쇠가 튕기면 가장 빠르게 허물어지며 사운드도 요란하게 나옵니다. 덕분에 끝까지 누르지 않는 기계식 키보드 타법을 처음 연마하기 가장 좋은 스위치입니다.
넌클릭(갈축)
클릭 방식과 유사한 촉감을 내지만 첫 키압이 약간 더 낮은편이고 걸쇠가 튕긴 이후에도 둔탁한 사운드만 내며, 청축처럼 요란하게 시그널을 주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청축에 비해 걸쇠가 튕겼다는 신호를 알아채기는 좀더 힘든편이지만 익숙해지면 청축보다 힘이 약간 덜들어가는편이고 소음도 적은덕분에 장시간 타이핑하기는 오히려 더 유리하죠.
리니어(적축, 흑축)
이름 그대로 아예 누를 때 걸리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쑥 눌립니다. 스프링을 직접 누르는 셈이기 때문에 기계식 본연의 키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키보드라고도 할 수 있죠. 걸쇠가 없기때문에 누르는 중간에 아예 소리가 나지 않아서 가장 조용한 키보드로도 알려져있지만, 이것은 아래 나오는 구름타법을 연마했을때의 이야기고 바닥까지 치는 타법이면 멤브레인에 비해 소음은 꽤 큽니다. 이 키보드의 사용자는 극과 극으로 갈리는데, 타법을 달인 수준까지 익혀서 굳이 걸쇠의 신호가 없어도 바닥을 치는 일이 없는, 소위 '구름 타이핑'이라는 스킬에 정통한 부류와 아예 기계식 키보드 타법을 무시하고 걸쇠도 없겠다 바닥까지 파워풀하게 치는 부류로 갈립니다.
레이저 키보드
아직 그리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편하지도 않고요. 느낌이 어떤지는 사진으로 아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멤브레인 키보드
기계식은 모든 키에 스위치유닛을 달아야 하는데, 스위치 가격도 만만치 않고 조립공정도 복잡해서 키보드 가격이 비쌉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얇은 플라스틱 막 세 장을 겹치고 구리로 패턴을 인쇄해서 접점(스위치)을 형성하는 기술이 나왔습니다. 얇은 막의 형태이기 때문에 이것을 멤브레인 스위치라고 하고,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의 키보드입니다.
구동부가 따로 없고 고무판의 탄성으로만 작동하므로 소음도 적습니다. 다만 장시간 사용하면 손가락에 엄청난 무리가 옵니다. 게다가 고무판 자체의 탄성을 그대로 활용하는 구조적 특성상 수명이 고무의 품질에 전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에 좀 험하게 사용한다 싶으면 일부 스위치가 동작하지 않게 되고, 이렇게 되면 막 전체를 새걸로 갈아버리는 등 수리비용이 구입비용을 초과하게 되죠. 한마디로 말해서 소모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보통 사무용으로 매일 쓰면 1년이면 키감이 뻣뻣해지거나 잘 눌리지 않게 됩니다. 평소에 많이 눌렀던 자판과 거의 안 눌렀던 자판을 눌러서 비교해보면 차이가 날 정도. 그러므로 이 방식의 키보드를 주력으로 사용할 경우 예비용으로 사용할 키보드를 미리 구입해놓았다가 고장시 교체하는 것이 불편을 줄이는 지름길입니다.
팬터그래프 키보드(Pantograph Keyboard)
한국에서는 팬터그래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국제적으로는 팬터그래프라는 말 대신 가위 스위치(Scissor-Switch) 방식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철 위에 있는 전기를 공급해주는 X자 모양 구조물과 비슷한 구조를 팬터그래프라고 합니다.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노트북 키보드는 대부분 팬터그래프 방식을 사용합니다. 사용 시 조용한 장점뿐아니라 키감도 적응한 이후에는 평범한 러버돔 방식보다 좋기 때문에 PC용 키보드에서도 사용하죠. 다만 팬터그래프 구조체만으로는 접점 접촉이 불가하므로 하단에 작은 러버돔을 넣습니다.
다만 내구성이 다른 키보드들보다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플런저 키보드
기존의 멤브레인 키보드를 개량한 방식. 멤브레인 키보드는 단순 키캡과 러버돔+멤브레인 스위치의 조합인데 플런저 방식은 플런저라는 특수한 구조물과 하우징 프레임, 플런저에 맞게 특별히 제조된 러버돔을 사용하여 멤브레인보다 좀 더 복잡하게 만듧니다. 이 때문인지 일반적인 멤브레인 방식보다 키감이나 반발력 등이 훨씬 좋죠. 단순히 생각하면 멤브레인과 기계식 접점의 중간쯤 키감을 받을 수 있는 방식입니다.
기계식을 안 써본 사람은 진짜 기계식으로 착각할 정도라고 합니다. 기존에 기계식을 쓰던 사람도 플런저의 키감과 소리 때문에 기계식으로 착각할 정도. 단 멤브레인 스위치의 특성상 구름타법은 불가능합니다. 15년 들어 텐키리스 버전이나 LED 버전이 다채롭게 나오고 있어 가격 때문에 기계식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그 대책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버클링 스프링 방식 키보드
우리말로는 좌굴(挫屈) 용수철 방식. 볼펜 등에 들어있는 길쭉한 용수철을 양끝에서 그냥 누르면 어느 순간인가 용수철 중간 부분이 꺾여지듯이 휘어지는걸 볼 수 있는데, 이 현상을 좌굴이라고 하며, 이름 그대로 좌굴 현상을 활용해 만든 키보드입니다.
맨 아래쪽에는 멤브레인 시트가 들어가며 그 위에 키 위치마다 동그랗게 사출된 플라스틱 하우징이 놓입니다. 이 안에 가느다란 용수철이 들어가며, 용수철 위쪽에는 키캡이 달려있고 밑쪽에는 공이치기가 물려있는 구조입니다. 키를 누르면 스프링이 압축되며 힘이 어떤 한계에 달하는 순간 스프링이 휘어지고 공이치기가 움직여서 멤브레인 스위치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입력이 되는 구조입니다. 이처럼 멤브레인 시트와 용수철이 다 같이 있는 특이한 구조 및 스프링의 접힘으로 입력행위를 한다는 이유에서 멤브레인이나 기계식이라고 부르지 않고 따로 버클링 스프링 방식이라고 부르죠.
특징으로는 1980년대에 만들어진 키보드가 지금도 현역일 정도로 무식한 내구성을 가지며, 기계식에 비해도 꿀리지 않는 마치 타자기를 치는듯한 특이한 키감과 소리 때문에 애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키 입력시 소리가 이 방식의 큰 매력이지만, 소음 크기 자체는 기계식 청축보다도 큰 편이라서 사무실이나 연구실에서 사용하기는 부적합합니다. 키압은 높은편이지만 그냥 무거운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뚝 떨어지듯 끊어지는 식이기 때문에 장시간 타자를 쳐도 손에 무리가 오지 않습니다.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 키보드(Capacitive Keyboard)
저소음과 좋은 키감을 모두 취할 수 있는 방식. 신호를 보내기 위해 접점이 반드시 닿아야만 하는 기계식 스위치나 멤브레인막과 달리 커패시터의 축전량 변화를 측정하여 키가 눌렸는지를 감지합니다. 기계적 접촉부가 없으므로 소음이 적고, 러버돔에 쓰이는 고무도 저가형 키보드의 러버돔과 보기엔 다를게 없지만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매우 부드럽고 튼튼하고 비싸기 때문에 키감도 매우 뛰어납니다. 각 키당 최대 5천만번 이상의 키 입력을 버틸 정도로 신뢰성도 높죠.
가격이 무지 비쌉니다. 최근 보급형 모델이 출시되었지만, 보급형 가격이 16만 5천원. 나머지는 30만원이 넘습니다. 이 방식의 스위치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제작사는 일본의 토프레입니다. 유명한 키보드는 토프레에서 직접 생산하는 리얼포스와 기판만을 납품하는 해피해킹시리즈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