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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어메이징한 당나라
게시물ID : history_246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침
추천 : 5
조회수 : 254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12/23 20: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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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장안 인구의 1/3이 외국인이었던 시절
당 제국 전체의 외국인 비율이 2%가까이되었던 시절(우리나라의 2000년대 외국인 비율과 비슷합니다)
동/서돌궐을 정복하고 백제를 멸망시켜 최대 판도를 이루었을 때 북으로는 아무르 강, 서로는 지금의 이란 국경, 동으로는 한반도에 이르는
말그대로 '세계제국' 을 이룩한 시절
여자들은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남자 옷을 입으며, 말을 타고 격구를 하는 호방한 모습을 보였던 시절
서역에서 전해진 폴로polo가 격구라는 이름으로 유행해 황제까지 즐겼던 시절
마치 지금의 미국처럼, 유학을 하러 온 신라와 발해인, 전쟁을 피해온 페르시아와 서역 소국의 백성들, 흑인 노예까지 수도 장안에 머무르던 시절
호胡와 한漢이 중화 역사상 유례없는 대통합을 이루어냈던 시절

실제로 당나라는 당대 최강대국이었고, 문화와 물자의 중심지였으며, 지배권이 동투르키스탄 영역에 다다를 정도로 강대한 군사력 덕에 중국에서는 당나라를 가장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변 소국의 백성들이 장안으로 몰려들게 됩니다.
실제로 구당서-신당서를 보면 외국인의 이름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무측천 시기에 활약했던 혹리들인 내준신과 삭원례도 호인이었다고 하고,
당시 유명한 화가였던 강살타康薩陀도 사마르칸트에서 온 사람이었다고 하더군요.
당 현종의 첩중 하나였던 조야나희曹野那姬는 서역 소국 출신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아지다 보니 한족들의 생활 습관은 점점 호화되고 반대로 외국인들은 한족의 의복을 입으며 한족 행세를 하였습니다.
당 태종 이세민의 말을 빌려보면, "중화 역사 이래 호胡와 한漢이 이처럼 하나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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