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헬조선이다 (조선도 '헬'이어서 '헬헬'이란 주장도 있죠) 뭐다 말이 참 많죠.
저 또한 내 나라고, 내 조국이라는 이 땅이 참 증오스러워서 막연하게 떠나고 싶다는
생각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 나라가 싫다'는 이런 깊이 없는 이유만으로 이민을 결정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요즘 깊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 6년쨰 일본에서 유학 중인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내린 결론이기도 했는데,
여기 게시판 글을 읽으면서 그 결론이 틀리진 않았구나 하는 느낌을 확 받았습니다.
간단히 비유로 정리하면
대한민국이란 서버에서 패시브 스킬(언어, 문화, 관습, 교육, 사회현상, 유행, 등등)을 연마하는
레벨 1부터 시작해 겨우겨우 1차 전직 직전인 레벨 11까지 키우는데 성공합니다.
그. 러. 나.
특정 길드에 의해서 주요 사냥터가 점령당해 레벨 업이 힘들어지고,
특정 길드가 특권을 누리는 동안 일반 유저인 제가 누릴 특권은 사라졌으며,
그런 특정 길드의 꼴에 이골이 나서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까지 옵니다.
그래서
"아 여긴 대한민국이 아니라 헬이다, 난이도도 헬이고 플레이 자체도 헬이다!"
하고 불평을 시작하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더욱 편하다고 소문난 스웨덴 서버나 캐나나, 혹은 독일 서버로 눈길을 돌립니다.
그렇게 다시 계정을 파서 플레이를 시작하기로 어느정도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일 서버를 옮기게 되면, 다시 1부터 11까지 키워야할텐데 제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거기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 것입니다.
과연 그 과정을 다시 잘 밟아나갈 수 있을까? 그런 게 참 걸림돌 같더군요.
친구가 바로 이 지점을 꿰뚫고 날카롭게 물어봤습니다.
"할 수 있겠냐?"
"가려는 이유가 그걸로는 분명 택도 없다."
정곡을 제대로 찌르는 질문과 단언에 이민 생각이 속절없이 무너지긴 하더군요.
그래도 한 편에는 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데
이 열망이 구체적인 방식과 계획으로 발현할 수나 있을지 스스로도 의심이 되네요.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결심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저런 부정적인 이유로 출발해서는 안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혹여나 헬조선이라서 그냥 탈조선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 번 잘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막연하면 정말 이도저도 아닌 것 같네요.
그냥 제 생각입니다.
이건 이민을 가지 말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고 이민을 가고 싶으시다면, 본인에게 딱 걸맞는 구체적인 이유와 목표를
설정하시고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제 생각을 적은 것뿐입니다.
적고 보니까 생각이 정리가 돼서 좋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의 비전을 수립해야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