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식으로 친인척이 저지른 잘못을 하기힘든 행동으로 사죄하는것도 나름 괜찮다고 보여지네요
지금도 사회곳곳에 숨어있는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수만에서 수십만명정도라는 가해자의 수족들...
자신들의 그당시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말고 죄를깨닫고
이 이후락의 조카분의 행동을 따르신다면 나름 더 괜찮아질듯...합니다.
[발굴 2] 이후락의 조카, 김대중에 사죄하기 위해 국민회의 입당
15.12.17 17:35l최종 업데이트 15.12.18 10:21l
박정희 유신정권의 몸통 중 한 명인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을 10여 년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조카 이동휘를 만나 숨은 비화를 들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등 유신이 부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은 시점에서 '지피지기'의 관점으로 비화를 연재한다. -기자 말
▲ 울산 울주군 웅촌면 석천길 28-3에 있는 이후락 생가. 조카 이동휘씨는 이곳에 거주한다. 그는 "이후락 생가를 복원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자 과제"라고 했다. 그는 김대중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10여년 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조카 이동휘(이하 등장인물 존칭 생략)는 김대중에게 사죄하기 위해 지난 1995년 그가 총재로 있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지난 1973년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과 연관이 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34년이 지난 2007년 10월 24일 국정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가 3년간의 활동으로 종합보고서를 펴내면서 "1973년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지시에 의해 ○국 공작단이 주일파견관들을 동원해 실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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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조카 이동휘는 1995년 김대중 총재가 만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지역사회를 놀라게 했다. 이동휘는 "당시 국민회의에 입당해 활동하자 '이후락 조카인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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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울산지역 일간지 <경상일보>와 <울산매일> 대표이사를 그만 둔 이동휘는 친구 정천석(전 울산 동구청장)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울산지구당 부지부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그는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의 당선을 위해 뛰었고, 2002년 대선에서는 다시 노무현 당선을 위해 뛰었다.
이동휘는 "사람들은 내가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것은 김대중에게 사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모셨던 분(이후락)은 (김대중 납치사건이) 국가를 위한 애국심의 발로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다"면서 "나는 내 소신대로 김대중에 사죄하고 돕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다음해인 2003년 새천년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 후신)을 탈당한 정치인 등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울산에서도 많은 당원들이 탈당했다. 하지만 이동휘는 탈당하지 않고 그대로 민주당에 남았다. 그는 "사죄에 대한 연장선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동휘와 함께 김대중 당선을 위해 활동한 김의곤 당시 새천년민주당 울주군지부장은 "이동휘는 1997년과 2002년 울산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당선시키기 위해 큰 활약을 했다"며 "지역 일간지 대표이사를 지낸 그의 경력은 울산의 득표율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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