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가. 일제 강점이 남긴 트라우마는 이런 탄식 같은 물음을 내내 남긴다. 18세기를 전후해 온 세상이 급변하던 시대, 한반도 안의 지도층은 과연 밖의 지식과는 단절된 채 성리학의 관념에 빠졌거나, 권력 다툼에만 골몰했던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열고 있는 특별전시회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는 그런 완고한 선입견에 의미있는 균열을 내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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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규장각에는 어떤 자료들이 있나요?
정: 정조 시대 규장각이 만들어질 때 소장하고 있던 책, 한말의 집옥재 도서, 조선이 망하면서 규장각으로 모인 사고(史庫) 소장 도서, 조선의 여러 관청에서 소장하던 책과 자료, 경성제국대학 시절 구입한 책, 일반 고문서 등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경로로 수집한 책과 자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 제목을 ‘규장각 세계 지식을 품다’ 로 내걸었는데요?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에 들어와 있던 세계의 지식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흔히 바깥 세계에 대한 당대의 지식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을 통해 개화파에 의해 유입됐다고만 알고 있을 뿐, 사실상 같은 시기 중국에서 들어온 많은 지식들은 거의 모르거나 잊힌 상태였지요.
그동안 우리가 한국 근대사를 지나치게 조선이라는 국가 단위로만 생각한 나머지, 실제로 조선도 동아시아 차원에서의 중국이라든가 중국에 들어와 있던 서양과 함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런 부분을 잘 인식하지 못했거나 성찰이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가령, 고종의 집옥재에 다양한 과학 서적이 있었는데, 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당시 중국에 와있던 서양 선교사가 전해준 서학 지식이 양무 운동과 연결돼 중국에 활성화돼 있었고, 주변국인 조선에도 상당히 침투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동아시아의 지적 네트워크를 재구성하는 관점에서 관련 자료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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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이 만들어진 18세기말만 해도, 정조가 외부를 보면서 지식과 정보를 담은 자료들을 끌어와 성장과 변화를 이루려 했습니다. 세종 대에도 그랬고 여러 시기에 걸쳐 그런 시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18세기 말이 두드러졌지요. 19세기말 고종 때에 와서도 또 한 차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기 테두리에만 갇혀 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외부와 소통하고 외국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자기를 키워나가고 확장하고 변화하려고 했던 역사의 모습들을 이번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혼천전도(渾天全圖) 서양 천문학의 핵심 내용을 담은 천문도. 지리학자 김정호가 19세기 중엽 ‘여지전도’와 함게 한 쌍으로 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필사본과 목판으로 모두 전해질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됐다. 이 천문도는 전통과 서구 지식의 융합, 혼종을 의미하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별자리 가장자리에는 12궁, 12차, 24절기가 적혀있다. 그림 안에는 적도와 황도, 은하수, 전통 별자리들을 표현했다. 바깥에는 서양천문학 서적에서 두루 인용한 해와 달과 오행성의 형상과 크기, 거리, 공전주기, 일월식의 원리, 프톨레마이오스와 티코 브라헤의 우주모델, 달의 위상변화의 원리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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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고금도서집성인데요. 규장각에서 보관하는 책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책이랄까요, 높이 평가하는 책입니다. 중국 옹정제 때 만들어졌는데, 당시 18세기 전반 중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중요한 서적을 집성해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청나라 강희제 때 편찬을 시작해 옹정제에 완성된 거질의 유서(類書)다. 중국 역대 서적에 수록되어 있던 내용들을 총 6부로 분류 정리했다. 총 1만권, 5022책에 목록만 40권에 이른다. 이 책은 정조 1년인 1777년 북경에 사절로 파견된 서호수가 구입해 온 것으로, 은자(銀子) 2150냥을 지불했다. 규장각은 이 책의 표지 장정을 다시 하고, 별도로 ‘고금도서집성’의 편차를 정리한 책(일종의 색인집)을 만들어 원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게 했다.
모두 만 권인데요. 두 권을 한 책으로 묶어서 오천 책이 됩니다. 여기에 조선국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이런 도장을 찍은 게 많지 않은데 그만큼 가치 있게 봤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들은 중국에서 가져와서 조선식으로 개장하면서 표지를 바꿨습니다. 중국은 책머리를 네 번 꿰매는데, 조선식으로 다섯 번을 꿰맸습니다.
고금도서집성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근대 지식을 담은 책도 있었습니다. 기기도설이 대표적인데, 표지 제목을 기기도설이라고 적어두고, 고금도서집성의 마지막 부분에 실었습니다. 16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기계의 작동 원리를 담은 책입니다. 이걸 중국 사람들은 중국식으로 바꿨습니다. 등장 인물도 중국인으로 바꾸고.
정조가 이걸 보고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 수원화성을 만들 때 정양용에게 이 책을 주지요. 이걸 보고 기중기를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정약용이 이걸 바탕으로 해서 거중기라는 이름의 새 기계를 만들어 화성 축성 때 사용합니다. 고금도서집성이 조선에 들어와서 실제로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지요.
기기도설(奇器圖說) 16세기 유럽에서 고안된 ‘기묘한 기계’들의 제작법 및 작동 원리를 다룬 책. 조선에는 1777년경에 수입되어, 정조 때 수원 화성의 설계 및 건축에 활용됐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수원 화성의 세부 설계 및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여러 이론을 강구할 것을 명하면서 직접 ‘기기도설’을 내려주었다. 정약용은 이를 참고, 응용해, 네 개의 움직도르래와 네 개의 고정도르래가 결합된 복합도르래 양측에 한 쌍의 축바퀴(녹로)가 덧붙여진 형태로 거중기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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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언해(小學諺解) 한국, 일본, 중국의 소학언해. 조선 책은 크기가 크며, 무겁고 질긴 종이를 이용해 견고하게 만들었다. 중국과 일본의 책은 조선 책에 비해 크기가 작고 가볍게 제작돼 대량 판매됐다. 조선 책이 주로 다섯 번 꿰매는 오침안(五針眼)인데 비해, 중국책과 일본책은 사침안(四針眼)인 경우가 많다. 똑같은 사침안이라도 일본은 4개의 구멍이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반면, 중국책은 가운데 두 구멍이 좁게 몰리는 특징이 있으며, 때로 첫 번째와 네 번째 구멍의 위와 아래를 다시 꿰매 육침안(六針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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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그나마 청나라 때에는 출입을 허용해 줬지만, 그 전에는 조선에 대한 경계가 강해서 사신들이 집 밖에도 잘 못 나갔다고 해요.
천하도지도(天下都地圖) 조선 후기에 그려진 서구식 세계 지도. 3책으로 구성된 보물 제 1592호인 ‘여지도’의 첫 번째 책에 들어 있다. 천하도지도는 근대적 측량에 의한 서양식 세계 지도로, 중국에 왔던 서양 선교사 알레니의 ‘직방외기’에 그려져 있는 ‘만국전도’와 형태가 비슷하다.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와 비슷하게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에 배치했다. 동해 해역을 마테오 리치는 일본해라고 적었지만 여기서는 소동해(小東海)로 표기했다. 북극은 푸르게, 남극은 붉게 칠한 것이 이채롭다.
김: 이건 유럽에서 들어온 정보를 가지고 만든 중국 책을 조선에 들여와 다시 개량한 지도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북반구는 추우니까 파란 색, 남반구는 다 더울 거라 생각했는지 붉은 색으로 칠했습니다. 적도 이남으로 내려가면 다시 추워진다는 생각을 못했던 거지요. 정약용의 제자인 황상의 증언에 따르면, 스승이 돌아간 후에도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보고 있었다고 나오는데, 아마 이런 지도가 당시에 유포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 외국에 대한 조선의 지리적 지식도 저런 책들을 통해 나름대로 확보가 된 거죠.
경도신각외국토산인민이수칠십이도전도(京都新刻外國土産人民異獸七十二度全圖) 명나라 때 중국 주변 여러 지역의 주민과 변방에 산다고 알려진 신화 속 이수(異獸) 등을 나타낸 그림.
-이 특이한 그림은 뭐죠?
김: 청나라 때 출판된 세계인물도 같은 겁니다. 중국 밖의 세상 사람들을 보여주는 거죠. 기본적으로 다 야만스럽게 그렸는데, 그래도 인간에 가까운 윗쪽이 일본과 여진이고 아래로 갈수록 심각한 야만인으로 그렸습니다. 기본적으로 ‘산해경서’에 나오는 이미지들이에요.
-삼재도회(三才圖會)도 대단한 책이라면서요?
대단한 책이죠. 처음으로 대량으로 그림을 수록한 책입니다. 널리 읽히고 영향을 줬습니다. 이게 일본으로 가서 화한삼재도회가 나오는데, 그림이 훨씬 섬세해집니다.
김: ‘화한’이라는 것이 일본의 이념인데, 중국의 한과 일본의 화라는 것을 동격이라고 본 거죠. 중국과 일본을 일대일로 붙인 거죠. 제가 다 찾아봤는데 중국 삼재도회에는 나비가 한 점이 있다면 일본에는 네 점, 다섯 점이 있어요. 같은 책을 두고도 아시아 3국의 문화적 차이가 반영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일본 오사카의 의사였던 데라시마 료안이 1712년에 서문을 집필한 뒤 30여 년에 걸쳐 저술한 백과사전. 명나라의 ‘삼재도회’를 기본으로 했지만 일본의 지식과 수많은 삽화를 추가했다. 18세기 중엽에 조선에 수입되어 실학자들의 저작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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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그리스 철학에 대한 비평서인 ‘고대희랍철학고변’을 남긴 유명한 사람으로 경상도에 이인재가 있었는데, 그 책에 앞서 ‘만국공보’ 기사를 보고 대한제국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개혁 방향에 대해서 논한 ‘구경연의’라는 글이 있어요.
칠교도(七巧圖) 중국에서 고안된 놀이. 정사각형을 7개의 삼각형과 사각형, 마름모꼴로 잘라 각종 모양을 맞추는 칠교 놀이, 일명 탱그램(tangram)으로 불린다. 한중일 삼국에 전파됐을 뿐 아니라, 유럽과 아메리카에도 전해졌다. 1814년 엘바 섬으로 유배된 나폴레옹도 탱그램으로 무료함을 달랬다는 일화가 있다. ‘칠교도’는 칠교로 만든 낙타, 산, 나무 등 자연과 동식물의 형태를 다양한 색으로 예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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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해신어 임진왜란 당시 포로가 되어 일본에 체류한 적이 있는 강우성이 1676년에 편찬한 일본어 회화집. 강우성은 일본에서 돌아온 뒤 사역원 역관으로 있으면서 세 차례 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첩해신어’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문헌이다.
김: 이번 전시를 통해 깬 게 뭐가 있을까? 저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여기가 한국학 도서관이지만 동아시아 전체를 가지고 있는 도서관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규장각을 그저 정조의 왕실 도서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체의 10%도 설명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최소한 고종 때 집옥재라든가, 중국 근대 지식의 수입을 빼놓고는 이 기관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그리고 20세기 시기 문제도 있습니다. 즉 경성제국 대학 시절의 것들은 못 다뤘어요. 대한제국이 망하고 총독부가 규장각을 장악했을 때 각 기관의 책과 자료를 모아 만든 것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조명도 아직은 미완의 과제입니다.
정: 그 시기에 대한 조명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어떤 금기 때문이어서라기보다 아직 여력이 미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역사 전체를 정리하고 그에 맞춰 책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복잡하죠. 보통 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그렇고.
식민지를 거치고, 분단이 되고, 전쟁도 나고 하면서 국가의 주요 기관에서 관리하던 오랜 책과 자료, 고문서들이 엉망진창으로 흩어지고 사라지고 뒤섞여 버렸습니다. 다행히도 규장각에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규장각에서는 예전에 해왔던 대로 긴 시간 계획 속에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 자료를 정리하고 또 그 자료를 활용한 한국학 연구를 진행해 나갈 겁니다.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 특별전은 2016년 1월 16일까지 계속된다.
[전병근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366&aid=00003063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