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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의 전문성과 대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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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 2015/12/13 11: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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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의 위기를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글을 검색하다가 "역사학의 전문성과 대중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역게에서도 몇번인가 회자가 된 얘기이기도 해서 너무 오래된 글인가 싶기도 하지만 일부만 발췌했습니다.
전체 원문은 출처 링크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습니다.


역사학의 전문성과 대중성
오 종 록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


"이렇게 양산되고 있는 한국사 대중서의 상당수는 한국사 연구자 또는 연구자 단체가 산출한 성과들이다. 그러나 한국사 전문 연구자가 아닌 필자들의 성과도 수량 면에서 볼 때 적지 않은 비중을 점한다.3) 후자의 경우 타 방면의 전문가 특히 직업적 문필가들에 의한 성과가 적지 않은데, 그 중 일부는 상업성에 치중하여 대중의 역사 지식에 대한 욕구를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전자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상업적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측면이 덜하기는 하나, 역시 대중의 역사 지식에 대한 욕구를 올바로 채워주고 있다고 하기 어려운 성과들이 적지 않다. 그 동안 한국의 역사학과 그 연구자들은 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에 그다지 적극적이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역사 대중화 추세, 좀더 엄격히 말하자면 대중에 대한 역사 지식의 보급이 확대되어 가는 추세 역시 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과 거리가 먼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활동하던 역사학이 폭발적인 대중의 역사 지식에 대한 수요에 의지하여 대중성 쪽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지만, 역사학의 대중성에 대한 인식은 역사지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 이상의 내용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랜 동안 진전시켜 온 전문성이 대중성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진정으로 대중을 위한 역사학으로 봉사하려는 의지를 갖추는 것과 아울러 폭이 좁은 전문성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전문성의 범위를 넓히고 수준을 제고하면서 역사 대중화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여야 전문화된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의 위기도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역사학은 연구 과정에서부터 서술 과정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역사 연구는 사료의 확보로부터 출발한다. 과거 정리된 문헌자료 중심으로 역사 연구가 진행된 시기도 있었으나, 역사 연구의 진전 및 역사인식의 지평 확대와 함께 사료의 종류도 크게 늘어나 과거에 사용했던 생활용품을 비롯한 여러 유물과 유적,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제도와 풍속 및 습관, 언어 등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상의 사료들을 확보하는 데는 연구자의 해박한 역사지식이나 역사적 상상력이 동원되며, 실제 의도한 연구가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사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1차로 확보한 사료를 시대 순으로 또는 주제별로 배열하여 관찰하면서 유추를 통하여 그리고 가설을 통하여 과거에는 사료로 파악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료를 찾아내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현재의 역사학은 출발점에서부터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 역사 연구자가 비전문가의 연구성과를 비판할 때 그 핵심은 대개 사료비판없이 자료를 이용하여 잘못된 역사상을 만들어냈다는 데 두어지게 마련이며, 때로는 중심 자료로 이용한 서적 자체의 허구성을 지적받는 경우도 있다.5) 사료는 그 자체가 과거의 사실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알려주기는 하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으며, 또한 과거의 사실을 극히 단편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수집된 사료들은 그 진위성과 연대, 정확성 등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거쳐야 과거의 사실을 증명하거나 재구성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문헌 자료에 대한 사료비판의 경우에는 사료 작성에 관여하거나 관련된 사람들의 개인적 사고방식과 성향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종교적․민족적․시대적 성향까지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료비판은 역사학의 전문성 가운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사료비판을 통해 얻은 결과도 본래의 역사 사실이 어떠했는가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다만 사료 작성자가 그 당대 또는 이전의 사건에 대해 자신의 시각에 의해 파악한 결과를 나타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이 존재했던 시대가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가능한 한 재구성하는 작업은 사료비판 이후의 과제로 남겨진다."

"사료비판은 사료들 속에 과장되었거나 축소된 것, 왜곡되거나 날조․첨가된 것, 상징 또는 비유된 것들을 제거하거나 판명해내는 작업이다. 이에 이어지는 것이 검증된 사료들을 연대에 의해 또는 상관관계에 따라 정리하여 그 내면의 흐름을 파악하는 작업으로, 이를 사료해석이라 한다. 이제 역사적 사건의 발생과 전개에 작용한 공간․시간․심리적 조건과 여건, 사건의 경과를 주도한 사람들의 개별적․집단적 의지와 이들을 제약하거나 자극하며 영향을 미친 힘 등을 파악하여 ‘역사적’으로 사실을 이해하는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이라 함은 역사상의 사건과 사실이 역사 전체의 흐름에서 그렇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의미하며, 그만큼 사료해석은 사료비판보다도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사료비판과 사료해석을 마친 이후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 역사서술이다. 역사가는 역사서술을 통하여 비로소 대중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근대적 방법론에 의해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 1990년대에 이르는 동안 주로 연구에 치중하였을 뿐, 본격적인 역사서술로까지 이어져 대중과 만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한국 역사학에서의 역사서술은 대부분 전문 연구자를 위한 학술 논문의 형태 또는 논문집의 형태로 외화되어 왔으며, 그런 대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것이 학술논문들을 정리한 수준의 통사․시대사․분야사 등이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주로 역사 연구자로서 활동하였고 역사가로서 활동한 일이 별로 없었다. 그 결과 역사학이 전문성의 영역에만 갇혀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분석틀의 적용으로 역사학이 전문화․세분화되고 역사서술이 난해해진 결과 대중과 점차 유리되기에 이르렀다는 비판은 사실상 한국의 역사학에 적용된다고 하기 어렵다."

"역사서술은 역사학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전문성의 요구는 첫째로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재현하는 일은 본래 불가능한 것이지만 역사 서술의 목적이 가능한 한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데 두어지는 까닭에 발생한다. 사료는 과거를 재구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그 결과 여기저기서 생겨나는 틈새를 역사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의 연속성과 복합성에 맞추어 가능한 한 채워서 사실 그대로 서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사실 그대로의 서술을 넘어서서 역사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대기식으로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만을 기록한다면 사실 그대로를 서술하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으나, 이는 역사서술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어떤 사실이 왜 발생하여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서술은 서술 대상인 민족이나 국가 또는 시대가 이룩했던 바를 이해하면서 민족이나 국가 또는 시대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고 역사를 전개시켜 왔던가를 서술함으로써 역사상을 제시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는다. 세 번째는 객관성의 문제에서 발생한다."

"역사서술에서의 객관성 추구는 역사학이 근대 학문으로 정립한 바탕이지만, 한편으로 엄정한 객관적 서술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19세기 이래 랑케(L. V. Ranke)로 대표되는 실증주의 계열의 학파와 크로체(B. Croce)로부터 이어지는 현재주의 계열의 학파 사이에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된 문제이기도 하다.6) 이 논쟁은 극단적으로는 역사에도 자연과학과 같은 법칙이 존재한다는 인식과 당파성과 주관에 철저할수록 역사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까지 나아간 바 있는데, 현재는 대체로 역사서술에서 주관성과 당파성의 개입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 그 주관성과 당파성의 가치와 정당성을 대중으로부터 검증받는 것을 통해 객관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서술의 객관성 문제는 역사학의 전문성과 대중성이 만나는 접점을 이룬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훌륭한 역사서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문적 전문성과 함께 세계와 인간에 대한 통찰력, 목적한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표현력 등을 포함한 다른 차원에서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역사서술은 과거의 역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어야 가치를 지니는데, 의미는 이론에 의해서만 설득력있게 전달되기 때문에 이같은 전문성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론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이야기는 더욱 더 자극적이 되어 우리의 관심과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역사적 사건에 우리를 관련시킨다. 우리는 송두리째 그 이야기 전체에 말려들게 된다.”7) 이론은 단일하지 않을 뿐더러 층위도 다양하며, 역사가에 따라 그리고 역사서술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역사가가 선택하게 되는 이론들은 각기 상이한 한편 항상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서술에 동원되는 이론은 기존의 역서서술 이론과 역사가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만 형성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서술 대상으로 삼은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하면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이든 시대구분이 필요하며, 원인과 결과 사이의 내적 관련성을 찾아내야 하고, 현재를 포함하여 다른 시대 또는 다른 사회의 역사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일반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수준 있는 역사서술에 동원되는 이론에는 당연히 역사가의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역사관이 담겨지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역사가 발전 또는 진보하는 것인지 아닌지, 역사가 발전해 왔다면 어떤 궤적을 그리며 발전해 왔는지 예컨대 나선형을 그리며 순환하는 듯이 보이면서 발전해 왔는지 또는 계단을 올라가듯이 때로는 정체되기도 하고 때로는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면서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역사 발전의 근본 동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역사가의 견해가 표방되고, 독자도 그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서술은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사회를 지향해야 하며 현재는 어느 지점에 도달했는가를 과거의 역사를 자료로 삼아 설명함으로써 독자를 납득시키는 작업이며, 여기에는 자연히 전문적인 표현력도 요구된다."

"한국의 역사학 특히 한국사학의 경우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역사서술이 부진했을뿐더러 지나치게 객관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좁은 범위의 전문성에 갇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연구자의 노력은 대부분 과거의 역사 사실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작업에 치중되었고, 상대적으로 각 역사 사실들 사이의 내적 연관을 설명해내는 작업은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으며,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대중적 언어를 구사하여 전달하는 작업은 가장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다. 실증주의학파적인 역사연구가 큰 힘을 발휘하면서 전문성은 주로 새로운 사실의 발굴과 사실의 정확한 인식에 적용되어 왔다. 가치 중립 내지는 선입관의 배제를 통하여 객관성을 추구한 결과 역사학이 대중과 만나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고, 아울러 역사의 의미를 파악하여 전달하는 데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유물사관적 경향 아래 한국사를 연구해온 연구자들은 대중과의 접촉에 적극적이었으나, 대중의 판단을 존중하여 그로부터 객관성의 검증을 받는다기보다는 역사적 의미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쪽에 가까웠다. 또한 대중에게 강요하다시피 한 역사의 의미가 자신 스스로의 이론에 의해 파악되고 설명되는 수준에 이른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와 세계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춘 역사의 이해야말로 역사학에서의 최고의 전문성이라 할 것인데, 많은 연구자가 의도적으로 기피한 까닭에 또는 경험과 연륜의 부족으로 미숙한 상태에서 역사서술이 시도된 결과 이러한 광범위하고 수준높은 전문적 영역은 제대로 계발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역사학은 역사적 경험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과거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지점에 도달해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발언해야 하는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채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역사학은 좁은 범위의 전문적 영역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전문성의 범주를 넓히고 수준을 높여야 학문적 위기에서 탈출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역사학의 성과물에 대한 대중의 접근 용이성 문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학은 그 성과물이 대중에게 공개될 것을 요구받는 학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은 대중성이 매우 강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에 이르러서는 역사학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전문화함으로써 대체로 일반 대중이 역사학의 성과에 접근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역사학에서는 이 때문에 역사학이 위기의식을 갖게 된 바 있다. 즉 성과물과 관련해서 역사학의 대중성은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근대적 학문으로 자리잡기 전에도 사회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익혀야 할 교양 학문이었다. 역사 기록은 문자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지배자나 지배층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귀중한 근거였다. 역사적 경험은 그것이 성공한 것이든 실패한 것이든, 올바른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현실 정치의 귀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전근대사회의 지배자와 지배층에게 역사는 반드시 익혀야 할 교양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역사학이 근대적 학문으로 변모한 뒤에도 당분간은 이어져서, 19세기 초엽까지 만 해도 역사는 곧 정치사를 의미하였으며, 여전히 상층 계급의 필수 교양과목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정치적 권리가 신장되고 대중민주주의가 성립 확산되는 상황에서 역사는 대중이 주권자로서의 안목을 갖추는 교양학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지는 못하였다. 사회구조가 복잡다기화하고 학문 분야가 다양해지는 가운데 역사학도 다기한 분야로 세분되면서 전문화를 거듭하였고, 종래에는 오랜 동안 유지해온 교양학문으로서의 성격 자체가 옅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의 성과가 다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지배층 또는 상류층의 교양학문이던 과거로부터 탈피하여 대중의 교양학문으로 자리잡을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학이 대중과 유리되는 현상은 오히려 본격적 역사서술이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한 까닭에 발생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본격적 역사서술의 부진은 근대적 역사 연구의 경륜이 짧고 전문 연구자의 층이 두텁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학문 내적인 문제도 작용을 하였는데, 주로 실증주의학파적인 객관성 추구가 이루어진 것과 관련하여 대중에게 열린 공간에서 연구자의 주관과 당파성이 지니는 공정성을 검증받는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연구자의 주관과 당파성의 개입이 금기시되는 가운데 연구자들 사이에서 문헌사료에 의한 고증과 기존 연구성과와의 관계를 점검받는데에 치중하여 역사학이 대중과 유리되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이상의 이유로 연구자가 역사서술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동안 전문적 문필가들이 대중에게 역사지식을 보급하는 일을 맡고, 역사소설이나 사극이 대중의 역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양상이 전개될 수 있었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역사학의 성과와 대중성 사이의 문제를 살필 때 역사학이 어느 단계의 성과에서 대중과 만날 것인가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역사 연구자가 연구를 통해 얻어낸 중요한 역사 지식을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으로서 임무를 끝낼 것인가, 또는 역사의 의미까지 전달하는 것까지 임무로 삼을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연구자가 파악한 역사상과 의미를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설득하는 시도를 통해 검증받을 것인가의 층위에 따라 대중과 만나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서술의 전통이 미약한 한국 역사학의 현실에서는 모든 역사 연구자가 역사의 의미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삼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연구자마다 지향하는 대중성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서술이 소홀히 여겨지는 것은 큰 문제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우선은 본격적 역사서술을 할 수 있는 연구자의 층을 두텁게 하는 데에 의도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학이 대중의 교양학문으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격적 역사서술의 확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의 언어로 역사서술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질적 변화는 전문적 역사 연구자가 새로운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역사 속의 대중과 민중에 대한 연구의 진전을 위한 노력이며, 또 하나는 대중의 역사 연구와 저술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와 아울러 역사 연구자가 대중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변환이 요구된다. 현재의 대중은 지적 수준에서 전문적인 역사 연구자와 거의 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대부분이 전문적인 영역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가와 대중이 모두 대중인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대중을 계몽시키거나 선도할 대상으로 삼아 역사를 서술하는 시기는 지나간 것이다."

"우리의 경우 비전문가의 역사 연구와 저술은 꽤 활발하다고 할 수 있다. 비전문가로서의 연구와 저술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른바 재야사학자들의 한국 고대사 연구에 편중되어 있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사 전반을 다룬 개설서류에서부터 여러 시대사나 분야사, 향토사 그리고 흥미 중심의 역사 지식 모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11) 일부 참신한 시각이나 역사적 상상력의 발휘로 전문 연구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성과도 없지 않지만, 대개는 새로운 차원의 민주사회에 대한 전망과 무관할 뿐더러, 이에 역행하는 경우마저도 적지 않다. 재야사학자들의 한국 고대사 연구 성과는 종래에 기본 자료의 진위 문제를 놓고 전문 연구자들과 대립한 바 있는데, 더 근원적인 문제점은 역사적 사고능력의 결여와 시각의 편협성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한민족은 순수한 혈통의 단일민족이라는 배타적 민족주의 관점과 고대사회 때의 영화에 대한 강조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인식이 현재로부터 한 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사회경제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한국사회가 일본사회에 비해 뒤쳐져 있다는 역사적 사실과 연결되면 궁극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사관과 같은 내용으로 전락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역사적 사고능력의 결여를 증명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야사학자의 생각과 유사한 인식이 청소년층에도 적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는 점인데, 이는 역사 연구와 저술에서의 대중성 강화를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함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그런데 이 ‘생활세계로서의 역사’는 역사학의 현재성에 대한 학문적․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의 현재성에 대한 합의는 당파성 발현에 대한 폭넓은 인정 즉 폭넓은 학문적 자유의 허용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는 장기간에 걸친 역사학의 현실에 대한 발언과 현실참여에 의해 얻어낸 소득이었다. 한국의 역사학도 한국 사회가 새로운 차원의 민주사회로 진전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대중의 역사 연구와 저술에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나, 이와 동시에 역사학의 현재성에 대한 학문적․사회적 합의를 확립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있는 셈이다. 현재성에 대한 합의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인 동시에 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념 및 그와 관련된 사상은 어떤 것이 미래 사회의 이상적 모습이며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이상과 그 실현을 위한 방법을 담은 이념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을 가장 귀중한 이념으로 표방하여왔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올바른 그리고 이상적인 사회상에 대한 관념과 지향이 매우 취약하며, 이념과 관련된 건전한 논의구조도 정착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는 이같은 양상이 명확한 이념이 표방되고 이를 위한 활발한 논의의 전개가 생명력을 좌우한다고 할 정당에서조차 만연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전개된 책임은 근본적으로 과거의 정치권력에 있지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권위를 갖고 이념과 관련된 논의를 선도해야 할 역사학이 그 임무를 방기해온 데에도 중요한 책임이 있다. 결국 역사 연구와 저술 등의 측면에서 대중성을 제고하는 것이 사회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할 때, 이를 위해서 역사학은 우선 학문적으로 현재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논의를 전개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선도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현재에 이르는 동안 한국의 역사학이 대중성을 띠기 어려웠던 이유 내지 원인은 사실 식민지시기 때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정치권력의 폭력적 통제를 받아 역사학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대단히 좁았던 데에 있었다. 당파성과 이념의 배제를 통한 객관성 추구는 따라서 역사학의 자기보호 수단일 수도 있었으나, 그 결과 사회적 전망과 이를 이루어나가는 방법에 대한 제안 및 역사적인 사고체계의 전파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대중 개개인이 주권 소유자라는 점에서 볼 때, 역사학이 대중성을 띠어야 하는 명제가 이념의 배제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된다면 이는 반역사적인 현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이미 역사 연구자도 대중의 일원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보면 역사학의 전문성과 대중성이 대립하거나 충돌할 여지는 별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역사 지식의 대중에 대한 보급의 측면에서 보자면, 연구 분야의 세분화와 전문성의 심화가 초래한 대중성에 대한 제약은 서구 역사학의 경험으로부터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인식론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추세 속에 한쪽에서는 역사와 문학의 벽을 허물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실재로서의 역사를 가능한 한 생생하게 추체험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자연현상과는 구별되는 인류사회의 현상으로서 일반화하여 내적 법칙성을 파악하도록 하는 것의 양자를 한계로 하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룰 수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역사서술이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측면에서의 대중성 문제 역시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하나 전문성과 굳이 충돌할 문제는 아니다. 이 측면의 대중성 제고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역사 연구자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연구와 서술에서 대중성이 커질수록 전문 연구자의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한국 역사학의 현실에서는 연구자 스스로가 현재성 문제에 대한 합의라든가 현실참여 활동의 확대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서 이것이 장애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역사 속의 대중과 민중에 대한 연구의 측면은 전문성의 강화가 곧 대중성의 강화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미시사적 연구 방법도 밑으로부터의 역사나 민중과 대중 중심의 심성사 또는 문화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는데,15) 사료 이용으로부터 역사서술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방법론 도입과 개발을 통한 전문성의 강화가 매우 중요한 것이 이 부문이다."

출처 http://book.aks.ac.kr/section/book/search_list.asp?search=&searchs=%BF%C0%C1%BE%B7%CF&x=0&y=0
정신문화연구 1999 여름호 제22권 제2호(통권 75호) pp. 7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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