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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필론과 돼지] 다시 읽기-part01-개요.
게시물ID : comics_244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상훈
추천 : 0
조회수 : 124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11/02 14: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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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유머 회원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지금은 베트남의 한 IB국제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서상훈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오랜 동안 준비해 온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본격적인 만화는 다음 회부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회에서는 관련지식을 먼저 설명할까 합니다.)


제가 지난번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후 <우일영>)에 대해 분석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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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엄석대는 전두환에 대한 은유이고, <우일영>은 '6월항쟁'을 평가한 것이라고 분석했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megadoll/220570737708


이번에 다룰 작품은 이문열 씨가 1980년에 발표한 <필론과 돼지>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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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과 돼지>는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에 발표되었고, <우일영>은 1987년의 '6월항쟁' 직후에 발표되었습니다. 즉, 하나는 전두환 정권이 출발하던 즈음에, 다른 하나는 끝날 즈음에 발표되었습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11/2016041100114.html

http://www.us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100735


여기서 제가 특히 주목한 것은 '전두환 군사독재'에 대한 작가의 인식의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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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과 돼지>의 '검은 각반'과 <우일영>의 '엄석대'는 모두 전두환 씨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필론과 돼지>에서 검은 각반은 속된 말로 '양아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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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일영>에서 엄석대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비범한 인물'입니다. 비록 그가 후반부에 갑작스레 몰락하기는 하지만, 한병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가 지배하던 질서를 간절히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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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7년 동안 전두환 군사독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또한 이 소설은 이문열 씨가 왜 민주주의를 혐오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줍니다. 이문열 씨의 작품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가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1996년작인 <선택>이라는 소설을 보면 아래와 같은 언급이 나옵니다.

개인이 비대해져 개인의 평안, 개인의 행복 위에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가 되면
제도는 비웃음 속에 소멸될 수밖에 없다. (p.71)

라마인(로마인)들은 가장 먼저 민주주의의 맛을 본 사람들이지만 치욕스런 제정(帝政)으로 끝장을 보고 말았다. (p.78)

두 문장을 종합해 보면, 이문열 씨는 민주주의란 결국 왕정이나 독재에 의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열등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문열 씨의 인식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필론과 돼지>의 초반부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독재에 맞서지 않고 침묵했다는 이문열 씨의 부끄러움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해소하려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 부끄러움은 민주주의가 선이고 군사독재가 악이라는 전제 때문에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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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만약 민주주의가 악이고 군사독재가 선이라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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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문열 씨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악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인 '그'는 초반부에는 군사독재를 혐오하지만, 후반부에서 제대병들의 광기를 보고 나서는 민주주의를 더 혐오하게 됩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집중적으로 설명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작품의 '시점'과 '홍동덕'이라는 조연의 존재입니다.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흔히 사용되는 시점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검은 각반들과 제대병들이 충돌합니다. 이것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은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찰자이자 주인공인 '그'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를 관찰하는 전지적 시점의 '화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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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도 '화자'도 결국 이문열 씨의 대리인입니다.
즉, 이 작품에는 이문열 씨가 두 명 등장합니다. 이건 매우 이상합니다.
왜 '그'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사용하거나, '그'를 생략하고 전지적 시점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작품을 훨씬 간결하게 만들었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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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홍동덕이란 조연은 왜 등장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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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덕 역시 주인공인 그와 마찬가지로 사건에 전혀 개입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인공의 옆에서 끊임없이 그의 부끄러움을 자극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두 가지 설정은 모두 작가인 이문열 씨가 당시에 느꼈던 '부끄러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음 회부터 이 이야기를 본격적인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문학 작품들에 대한 분석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https://blog.naver.com/megadoll/220570737708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https://blog.naver.com/megadoll/220733681139
 -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https://blog.naver.com/megadoll/221043232092
 -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https://blog.naver.com/megadoll/221523644579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https://blog.naver.com/megadoll/222073408405
 - 윤동주 시 14편: https://blog.naver.com/megadoll/220862624137
출처 https://blog.naver.com/megad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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