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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카이로선언 이승만 공헌은 역사왜곡…대미로비 못해”
게시물ID : history_243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sert_Fox
추천 : 5
조회수 : 64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11/26 12:21:50
http://news.donga.com/3/07/20151125/75008505/1

 

재미한국역사가인 김태환 하버드대 남가주한인동창회장은 24일 뉴시스에 그간 발굴한 문헌들을 처음 공개하며 "카이로선언에 이승만박사가 공헌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미외교에서 이승만박사의 로비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김태환 회장은 "김구 측 공적을 내세우는 편에서는 장제스 총통과 김구 주석, 김원봉 등 임정 간부의 회동을 비롯한 임시정부 기록과 장제스의 일기장, 장의 비서장인 왕충후이의 회담 자료를 증거로 제시한 반면, 이승만의 로비설을 주장하는 측은 아무런 물증도 없이 이 박사가 감리 교인이고, 또한 홉킨스도 감리 교인이었기 때문에 서로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당치도 않는 추측 밖에는 내세운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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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도 카이로 선언에서 장개석이 한국 독립 조항 넣도록 영향을 준 인물이 김구, 김원봉이라 봅니다.

 

김구야 다들 아시지만(대만 중정기념당 카이로 회담 사진 바로 앞에 장개석 일기장 있습니다. 쑨원, 김구와 함께 조선 독립에 대한 약속을 했다는 이야기가 몇차례에 걸쳐 언급됩니다.), 김원봉 경우는 황포군관학교 출신(그와 견줄 정도급의 중국인 동기생으로는 린뱌오 정도. 둘다 황포군관학교 4기 동기생입니다. 적어도 '장군'으로 불릴만한급의 인물이죠.)으로 국민당군 장교로 북벌전쟁 가담한 전력있어서 장개석의 직계로 분류할 수 있고 실제 장개석이 '황포 군관학교 출신'이란점에서 굉장히 지원해줬어요.(그래서 국민당이 최초로 한국인 출신 독자적 독립부대를 승인,창설했던게 조선의용대.)-추가로, 장개석은 자신의 호칭에 대해 '교장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매우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황포군관학교 교장 시절을 굉장히 애착이 강했다는것이죠. 이승만 '박사'이런 호칭처럼요.- 이런 배경들이 있었기 때문에 장개석이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 독립'조항을 넣도록 할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당시 국민정부에서 한국인 출신으로 인정받고 국민당 정부로부터 지원받을수 있던 인물이 딱 2명뿐이었는데 김구와 김원봉 뿐이었어요. 만주에서 '호랑이'로 날아다녔던 그 지청천 장군 경우만해도 중국 관내에 들어가면 작아졌던 정도였지요.(실제 지청천 장군이 만주->중국관내로 들어갔을때, 자금이 부족해서 김구, 김원봉 둘다 찾아가곤 했던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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